부동산 사기 제대로 알고 대응하는 법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4월 22일 14시 48분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한 아파트. 동아DB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한 아파트. 동아DB
“도둑 한 놈에 지키는 사람 열이 못 당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펴도 한 사람의 나쁜 짓을 막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최근 잇따라 터진 전세사기 사건과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떠오른 말이다.

현 정부는 출범 후 전세사기 피해 방지 대책을 중요 국정 과제로 삼고 대책을 쏟아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올해 들어 4월 17일까지 전세사기와 관련해 쏟아낸 보도자료와 참고자료가 47건이다. 거의 이틀에 1개꼴이다. 내용도 ‘(범정부 차원의)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2월 2일) 같은 종합대책부터 ‘전세사기로부터 청년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함께할 것’(3월 23일자)이라는 감성적인 제목의 장관 동정 자료까지 다양하다. 그사이 범정부적인 긴급 대책 회의도 두 차례나 열렸다.

1월부터는 전세보증금 손실 피해 관리와 지원체계 구축 같은 업무를 집중적으로 처리할 ‘전세피해지원단 주택임차인보호과’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3월부터는 “전월세 거래 경험이 적어 전세사기 위험에 더 노출되고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청년층을 지원하겠다”며 ‘원테이크(One-Take) 온라인 주거상담소’도 운영 중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사망 잇따라


2월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겠다”며 서울 강서구와 인천 부평구 등에 피해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안심전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신축 빌라 시세와 악성 임대인 정보 등을 공개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 가구당 최고 2억4000만 원까지 시중은행에서 연 1∼2%대 저리로 대출하는 상품을 만들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주택 200채를 확보해 당장 살 집을 잃은 피해 가구에 우선 공급하는 대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건축왕’으로 알려진 남 모 씨(61)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4월 17일에는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 살던 박 모 씨(31)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뒀다. 이에 앞서 4월 14일 임 모 씨(26)가 오피스텔에서, 2월 28일에는 박 모 씨(39)가 연립주택에서 각각 주검으로 발견됐다. 2월 발견된 박 씨는 휴대전화에 메모 형태로 남긴 유서에서 “(전세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며 “나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미추홀구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월에만 전국에서 1121건, 2542억 원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접수됐을 정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보듯이, 전세사기 등 각종 부동산 사기는 정부 대책이나 구제 절차가 피해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또 구제 과정에서 심리적·물질적 고통도 적잖게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이를 감지하고 사전에 피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다.

국토부 등 정부 부처와 국회입법조사처 등은 그동안 다양한 부동산 사기 유형을 분석 정리하고, 대응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를 정확히 숙지해 사기를 식별하는 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우선 국토부가 올해 초 내놓은 ‘전세계약 핵심 체크리스트’를 잘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계약 전→계약 체결 시(당일)→계약 체결 후→잔금 및 이사 후’ 등 전세계약 단계별로 확인해야 할 사항들을 꼼꼼히 소개해놓았다.

다만 ‘빌라왕’이나 ‘건축왕’ 등으로 불리는 영세 주택건설사업자와 분양대행업자가 공모해 벌이는 사기는 복잡한 단계를 거치기에 체크리스트만으로는 감지하기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회입법조사처가 1월(‘이슈와 논점-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공인중개사 책임 강화 입법의 모색’)과 2월(‘이슈와 논점-부동산 분양대행제도 개선을 위한 쟁점과 과제’) 잇따라 발표한 보고서가 좋은 참고가 된다.








전세계약 단계별로 꼼꼼한 확인 필수


보고서에서 국회입법조사처는 전세사기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우선 임대차계약 체결 후 임차인에게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이 발생하기 전 임대인이 임대차 목적물에 다시 저당권을 설정하는 유형이다. 즉 전세계약을 맺은 후 집주인이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기 전 해당 임대주택을 담보로 은행 대출 등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두 번째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대항력이 발생하기 전 임대인이 임대차 목적물을 매도하는 유형이다. 즉 집주인이 임대계약 직후 제3자에게 집을 팔아치우는 경우다. 세 번째는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을 이중으로 체결하는 유형이다. 집 한 채에 2명 이상 임차인과 계약을 맺는 경우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빌라왕 사건은 기존 3가지 유형과는 조금 다르다. 변제능력이 없는 ‘바지임대인’이 수백 채에 달하는 빌라 등을 임대했다가 사망 또는 파산하면서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번 전세사기를 일부 영세 분양대행업자가 중저가 빌라 등 다세대주택 분양 과정에서 건축주나 무자본 갭투자자 등과 공모해 임대보증금을 분양가와 같은 금액으로 받아 임차인(세입자)을 모집한 뒤 임대보증금을 건축주에게 분양대금으로 지급하고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요약했다.

그 과정은 4단계로 복잡하게 진행된다. 우선 1단계에서 건축주는 건물(빌라)을 짓고 분양하면서 분양가와 동일하거나 더 비싸게 전세매물로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분양대행업자가 개입한다. 2단계에서는 (전세금이 과도하게 책정된 사실을 모르는) 세입자가 건축주와 전세계약을 맺고, 건축주는 전세금을 받은 뒤 ‘바지임대인(무자본 갭투자자)’으로 집주인을 변경한다. 이 바지임대인이 ‘빌라왕’으로 언론에 알려진 인물로, 자기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집에 대한 소유권을 확보한다. 3단계서는 분양대행업자나 중개업소, 빌라왕 등이 건축주로부터 분양가의 약 10%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받는다. 마지막 4단계에서 중개업소는 이 돈의 일부를 임차인에게 전세대출 이자와 이사비 지원금이라는 명목의 ‘미끼자금’으로 사용한다.

이 같은 전세사기를 피하려면 무엇보다 입주하려는 주택과 집주인(임대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 파악이 필요하다. 즉 해당 부동산의 적정 시세와 선순위 권리관계, 임대인의 세금 체납 사실 등을 공인중개사 등을 통해 확인하고, 안전성 유무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우선 2월 출시된 정부의 안심전세 앱을 활용해 정확한 시세를 파악해야 한다. 안심전세 앱에는 연립, 다세대, 50채 미만 아파트 등 규모별 매매시세와 지역 평균 전세가율, 경매낙찰가율, 보증사고 현황 등이 소개돼 있다. 또 임대인의 보증사고 이력이나 보증금지 여부 같은 개인정보도 조회해야 한다. 등록임대주택과 임대보증 가입 정보도 확인하는 게 좋다. 이 밖에 선순위 채권, 근저당 등 주택에 설정된 권리관계도 열람해야 한다.

안심전세 앱으로 정확한 시세 파악 가능


임대인의 세금 체납 관계는 이달부터 전국 모든 세무서나 시군구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직장인이라면 평일 사무실 주변 세무서나 구청 등을 찾아가 임차할 집 주인의 국세 체납 여부를 열람하고 싶다고 요청하면 된다.

한편 주택 매매 과정에서도 집값을 높이려는 ‘작전세력’에 의한 시세 교란 행위도 적잖아 주의가 필요하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해 4월 12일 경찰청, 국세청, 한국부동산원,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등과 공동으로 대책 회의를 갖기도 했다.

이날 대책회의에서 공개된 시세 교란 행위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실거래가 띄우기다. 높은 가격에 거래된 것처럼 허위로 신고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해당 거래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이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중개사 E 씨는 처제의 아파트를 자녀 이름으로 2차례에 걸쳐 매수한 것처럼 꾸며 신고가(新高價)로 신고한 후 상승한 가격으로 제3자에게 중개했다. 일종의 ‘자전거래’인 셈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변에 2억4000만 원에 실거래된 곳이 있는데도 해당 아파트는 1억 원 이상 비싼 3억5000만 원에 최종 거래됐다.

집값 담합도 있다. 집값 담합을 유도하는 안내문 또는 현수막을 게시하거나, 온라인 카페 등에서 특정 가격 이하로 중개를 의뢰하지 말도록 게시글을 남기는 식이다. 예컨대 “XX아파트 33평형은 ??억 원 이하로 내놓지 마세요”라고 글을 쓰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우선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기 여부를 표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매매하고자 하는 주택의 경우 부동산 관련 포털에서 실거래를 확인할 때 실제 거래가 이뤄졌는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볼 수 있다.

실거래 허위신고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현재 3000만 원 이하 과태료인 처벌 조항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높아진다. 또 한국부동산원에 설치된 시세 교란 행위 신고센터의 신고 대상 및 처리 업무가 집값 담합 외에 공인중개사법,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불법 거래 신고로 확대된다. 다만 이 조치들의 시행 시기는 하반기로 예고됐을 뿐, 정확한 일정은 아직 미정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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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성 동아일보 기자 jsonhng@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8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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