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 이후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높아졌는데요.
상업용 부동산 중에서도 오피스 빌딩만 보면 이런 위기론이 과장이 아닙니다. 실제 미국 대도시 도심의 사무실이 텅텅 비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의 종말’이란 말이 나올 정도인데요. 팬데믹도 끝났는데 왜 그럴까요. 미국에서 유독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왜일까요. 오피스빌딩의 종말, 그 이후엔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까요. 오늘은 미국의 사무실 부동산 위기론을 들여다봅니다.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부동산∙인프라 투자회사로 유명하죠. 한국에선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를 소유한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엔 이걸로 많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사무실 담보대출 채무 불이행’.
브룩필드자산운용은 지난 2월 LA 대형 오피스빌딩 2개를 담보로 받았던 대출금(7억8400만 달러)을 갚지 못하면서 상업용 부동산 업계에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달 들어 또다시 워싱턴DC 사무실 12곳을 담보로 한 대출(1억6140만 달러) 상환에 실패했습니다.
브룩필드만이 아닙니다. 퍼시픽인베트스먼트와 핌코(PIMCO)도 사무실 담보대출에 대해 줄줄이 디폴트를 선언했습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 있는 멀쩡한 대형 오피스빌딩들이 잇따라 대출금 상환에 실패한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줄이어 생길까요. 한가지 이유는 금리인상입니다. 미국도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엔 변동금리 대출이 더 많은데요. 치솟은 대출금리를 감당할 길 없게 되면서 제때 갚지 못하는 겁니다. 핌코의 경우엔 2021년 12월 3% 수준이던 대출금리가 6%로 뛰면서 채무 불이행에 빠졌다고 하죠. 하지만 진짜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도심 사무실이 텅텅 비고 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올 임차인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무디스가 집계한 올해 1분기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19.0%에 달했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감이 안 잡힐 텐데요. 사무실 공실률이 5분기 연속 증가했을 뿐 아니라,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 수준입니다. 코로나 정점이던 때(18.5%)보다 높은 건 당연하고요. 역사적 최정점이던 1991년 19.3%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1991년은 저축은행 수백곳이 파산한 S&L(저축대부조합) 위기 당시였죠. 미국 저축은행들이 고위험을 좇아 상업용 부동산 투자를 늘렸다가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줄줄이 망했던 그때입니다. 보통 심각한 수치가 아닌 겁니다.
사무실은 공실이 발생하면 임대료에 크게 타격을 입으니 그 가치가 뚝뚝 떨어지죠. 부동산 분석회사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미국 사무실 자산의 가치는 지난해 3월보다 25% 하락한 걸로 추정됩니다. ‘공실 증가→가치 하락→대출 만기연장 불발(또는 연장 되더라도 대출금이 깎임)’이란 악순환에 빠질 수 있는 겁니다.
원격근무로 사무실이 비었다
오피스 공실률이 늘어난다는 건 기업들이 전보다 사무실을 덜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이겠죠. 직원 수를 줄이거나(정리해고), 아니면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일하거나(원격근무).
지난해부터 엄청난 규모의 정리해고를 진행한 빅테크들은 사무실을 줄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맨해튼 일부 사무실 계약 연장을 포기했고요. 세일즈포스도 샌프란시스코의 약 3000평짜리 사무실 계약을 해지했죠. 구글은 신규 캠퍼스를 짓는다는 계획을 중단했고요.
하지만 사무실의 위기를 일부 빅테크 정리해고 탓으로만 돌리긴 어려워 보입니다. 사무실이 비어가는 현상이 미국 전역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어서인데요.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사무실 점유율입니다. 사무실 점유율이란 직원들의 출입증 데이터를 통해 ‘실제 직원이 얼마나 사무실로 출근했느냐’를 집계한 수치인데요. 캐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10대 도시의 평균 점유율은 46.3%에 그쳤습니다. 사무실 자리의 절반 넘게 비어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팬데믹 이전엔 이 수치가 95%에 달했죠. 아니, 그 많던 직원들이 다 어디 간 거죠?
아마도 집에 있을 겁니다. 부동산펀드회사 더라이스너그룹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직장인의 약 10%는 완전히 원격근무를 합니다. 주 5일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원은 9%에 불과하고요. 나머지는? 아마 일주일에 이틀, 또는 사흘만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중이겠죠.
그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2021년 때 이야기 아니냐고요? 미국에서 원격근무 확산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에 대해 보통 ‘고용시장이 너무 뜨겁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업이 ‘출근 안하면 해고할 거야!’라고 할 처지가 아니게 된 겁니다.
유럽과 아시아 등 대부분 지역에선 원격근무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특이한데요. 이를 두고 미국 주거환경의 특수성 때문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다른 나라보다 미국인들은 집이 큰 편입니다(1인당 평균 생활면적 85.5㎡). 독일의 1.8배, 일본의 2.7배 수준이죠. 이는 재택근무를 하기에 상당히 편한 주거여건이란 뜻입니다.
미국에서도 다시 주5일 출근 시대가 돌아오긴 할까요? 대부분 전문가들은 회의적인데요. 앞으로도 사무실 점유율은 55~60% 정도가 될 거란 관측입니다. 주3일 정도만 사무실로 나오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뉴노멀’이 된다고 보는 거죠. 당연히 사무실 공실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적 변화인데요. 실제 “최근 로펌들이 임대기간이 끝나면 공간을 약 30% 줄이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베스티안글로벌워크플레이스서비스의 마이클 실버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사무실은 많이 비어있을 거고, 도심은 예전만큼 북적거리진 않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도심이 비면 생기는 일
사무실이 텅텅 비는 건 여러모로 경제엔 마이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장 염려되는 건 은행, 특히 중소형은행이 덩달아 부실해질 수 있다는 거죠. SVB 파산사태로 이런 걱정은 더 커졌는데요.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부채 4조5000억 달러 중 거의 3분의 1이 2025년 말 이전에 만기가 돌아옵니다. 특히 이 중 오피스빌딩 대출의 경우 4분의 1이 올해 안에 대출 만기가 도래한다고 하죠(미국 모기지은행 협회). 이들 대출의 현재 금리는 대부분 3%대이지만, 만기 연장을 한다면 당연히 금리는 크게 뛸 수밖에 없죠. 지금처럼 공실률이 높아지고 임차인 찾기가 어렵다면 사무실 투자자들이 줄줄이 대출 연장을 포기할 가능성(채무불이행 선언과 은행의 부동산 압류)이 작지 않아 보이는데요. 특히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는 소규모 지역은행이 보유하기 때문에 걱정이 더 큽니다.
곳곳에서 경고음이 나옵니다. 최근 IMF는 금융안정성 보고서에서 “높은 금리와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구조적 수요 감소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광범위하게 조정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죠. 최근 실적을 발표한 미국 은행 스테이트스트리트의 론 오핸리 CEO는 “상업용 부동산, 특히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가장 큰 우려사항”이라고 말했고요.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CEO는 지난주 투자메모에서 “부동산 담보대출 채무불이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상업용 부동산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지적했습니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까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 위험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트윗.
다만 그 정도로(소규모 은행이 줄줄이 망해서 금융위기급 충격을 몰고 올 정도로) 심각하게 가진 않을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흔히 ‘상업용 부동산’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이 중 실제 큰일 난 건 사무실 부동산뿐이기 때문인데요. 사무실과 달리 쇼핑몰이나 창고 같은 상업용 부동산은 공실률도 전혀 높지 않고 괜찮다고 합니다. 호텔의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요금을 올리면서 오히려 기록적인 수익을 올린다는군요.
하지만 설사 은행에 큰 타격이 없다고 해도 사무실이 비는 건 꽤 심각한 일입니다. 사무실이 비면 그만큼 유동인구와 통행량이 줄어들고 상권이 위축되면서 결국 자영업자와 소기업들이 피해를 볼 테니까요. 사무실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지자체는 재산세 수입까지 줄어들 겁니다. 지난해 말 미국 시애틀 시장이 “모든 사람이 시내에서 일하던 좋은 시절은 앞으로 결코 없을 것”이라며 세수 감소를 우려했던 것도 이런 이유이죠.
‘도심 사무실의 종말’이 대세인데 뭐 어쩌겠냐고요? 네, 이 흐름 자체를 돌리긴 어려워 보입니다. 대신 텅 비어있는 사무실을 바꿔야겠죠. 뭘로? 주거공간으로요!
아파트로 변신? 할 수 있을까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둔화하는데도 미국 주택시장은 꽤 잘 버티고 있다고 하죠. 서부 지역에서는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선 오히려 집값이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도심의 빈 사무실 건물을 아파트로 개발하자는 겁니다. 낮에만 바글바글하고 밤에는 텅 비는 상업지구가 아니라 사무실과 주택, 쇼핑센터, 호텔 등이 다 모여있는 도심으로 바꾸자는 거죠.
부동산 회사 라이스너그룹의 레미 라이스너 CEO는 포브스 기고문에서 “오래된 오피스 타워는 더 이상 쓸모가 없고 용도변경이 필요하다”며 “중산층을 위한 주택으로 전환해, 오피스 밀집지역을 주거지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거주지와 직장, 쇼핑공간이 모여있는 ‘15분 도시’라는 개념을 주장했죠.
지난해 말 비즈니스인사이더 칼럼도 비슷한 주장인데요. “빈 사무실이 아파트가 되면 주택 부족을 완화하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을 도심으로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물론 1990년대 또는 그 이전에 세워진 노후한 오피스빌딩을 아파트로 바꾼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일단 금리인상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비용이 만만찮죠. 규제도 까다롭습니다. 오피스 건물은 창문이 적고 환기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건축법상 그대로 아파트로 이용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새 건물을 짓는 것 못지 않게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지원(세금 공제, 규제 완화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원격근무와 사무실의 종말 끝에 ‘도심의 화려한 부활’이란 반전의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겠습니다. By.딥다이브
도심 사무실이 텅 비다니. 미국의 사무실 부동산 상황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데요(한국은 공실률 하락세). 사무실이 비면 부동산 투자회사와 은행만 곤란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 경제적 여파가 생각보다 크다고 하니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국의 사무실 부동산 관련한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유명 투자회사들의 오피스빌딩 담보대출 채무불이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실이 늘어 부동산 가치가 하락한 데다 대출금리까지 오르면서 제때 대출을 갚지 못하는 겁니다.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3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원격근무 확산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10대 도시의 사무실 점유율은 47%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많이 들고 있는 소형 지역은행이 위기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유동인구가 줄고 상권이 활력을 잃게 되면 소매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자체 재산세 세수 감소가 우려됩니다. -비어 있는 도심 사무실을 아파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용도변경을 위해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든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과제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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