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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접을거면 우리 이혼해!" 전업주부였던 김도영 대표가 역전회관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폐점하려던 남편과 매일 부부싸움할 정도로 간절했다. 그 집념을 발판삼아 바싹불고기의 원조집을 100여 년 역사의 노포로 일궈냈다. 마포역 인근의 4층짜리 외관만 봐도 7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빕구르망 맛집에 선정되고 서울미래유산에도 등재됐다는 아우라가 풍긴다.
역전회관의 성공은 여느 노포처럼 유구한 맛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묵혀진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노포임에도 과감히 브랜딩에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3대 김도영 대표와 4대 신유정 이사가 들려주는 역전회관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STEP 1: 만학도를 자처한 왕초보 사장님
'어련히 잘 하겠지.' 김 대표는 장남으로서 역전회관을 물려받은 남편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새벽 장 보기, 고기 떼오기, 취객 응대 등 밑바닥부터 배우던 모습이 속상했지만 누구보다 잘 해낼 거라 믿었다. 단골들에게 남편이 인정받았을 때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던 이유다.
고생 끝 행복이 찾아오나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용산 일대의 재개발이 확정되며 하루 아침에 철거 예정 통보문이 날라왔기 때문. 단골들이 진정서를 보내준 덕분에 2년 가까이 버텼지만 지쳐있던 김 대표의 남편은 폐점을 결심하고 만다. 이어받고 싶다는 아들의 회유조차 통하지 않을 정도로 확고했다. "대학 졸업도 못했는데 벌써 대가 끊기면 어떡하냐"는 아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김 대표는 발만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준비될 때까지 임시로 매장을 맡겠다고 나섰지만 남편의 반대는 더욱 거셌다. 결국 김 대표가 이혼 얘기까지 꺼낼 정도로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초강수가 통했던 걸까? 2008년 끝내 그는 역전회관의 사장님으로 인생의 제 2막을 여는 데 성공한다.
외식업의 '외'자도 모르는 왕초보. 김 대표가 기억하는 출근 첫날의 모습이다.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하루아침에 전업주부에서 맛집 사장님이 되자 실로 부담스러울 따름이었다. 출근길에 '연세대학교 외식업 최고위자 과정' 모집 공고를 보고 즉시 지원한 까닭이다. 상권 분석, 판매가 계산법 등 기초 지식을 쌓았고 강의가 끝나면 맛집들을 방문하며 메뉴 구성과 서빙 노하우 등을 분석하기 바빴다.
상권을 분석할 땐 스마트폰을 끄세요
"집안을 망하게 할 작정이냐?" 김 대표가 2대 사장인 시부모에게 매장 이전을 제안하자 돌아온 답이었다. 괜히 일을 키워서 저축금마저 탕진할 셈이냐고 몹시 혼이 난 것. 매장을 지키려면 재개발이 확정된 용산을 떠나야 했기에 그 역시 굽힐 수 없었다.
어렵사리 매장 이전을 허락받은 후, 상권 탐방에 대한 계획부터 세웠다. 가장 먼저 용산점 손님들의 지역별 유입량을 분석했다. 일주일 넘게 매장 내 손님들에게 일일이 물어본 끝에 최종 후보 상권을 마포구, 광화문, 강남역 일대로 추려낼 수 있었다. 탐방할 곳이 정해졌으니 이제는 발로 뛸 차례. 각 상권 내에서 주요 골목들을 방문하며 인근 식당들의 메뉴와 시간대별 손님이 붐비는 정도, 특히 식당에게 핵심 수익원이라 할 수 있는 저녁 시간대의 유동 인구 수를 꼼꼼히 파악했다.
보증금이 부담스러운 강남권과 단골들에게 먼 분당, 재개발 대상지로 꼽히던 광화문을 제외한 것처럼 현실적인 요건 또한 간과하지 않았다. 최종 후보로 남은 마포구를 3일간 탐방한 결과, 용산역과 인접하고 평일과 주말의 객 수 편차가 적은 마포역 주변을 선정한다.
약점이 된 최신식 시설
총대를 메고서 오픈한 마포점. 하지만 1년간 적자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막대한 적자 폭을 상쇄하기 위해 2년 동안 1700만 원의 월 임대료를 부담하며 용산점과 병행해야만 했다.
본점과 다른 맛이 결정적인 패착 요인이었다. 애써 찾아준 단골들마저 바싹불고기의 맛이 변했다며 혹평하기 일쑤였다. 최신식 시설에서 똑같은 레시피로 조리하는 데 맛이 다르니 미칠 노릇이었다. 용산점에서 준비한 재료와 불고기용 소스를 직배송 받아서 요리하는 등 온갖 실험을 거듭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며 마포점에서 준비한 재료를 용산점에서 구웠는데 놀랍게도 본래의 맛이 났다. '시설 간 온도 차이'가 원인임을 깨달은 순간이다. 마포점의 화력이 노후화된 용산점보다 강력해 바싹불고기의 육즙을 과하게 날렸고, 신형 숙성고의 온도 역시 용산점보다 낮았던 것. 이 2가지를 조정하고 나서야 원조 바싹불고기의 맛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작은 차이 하나에도 맛이 변질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경험한 1년이었다.
치밀하게 설계된 무한리필의 효과
김 대표는 명성을 되찾은 바싹불고기와 함께 여러 신메뉴로 승부수를 띄웠다. 상권의 핵심 고객인 직장인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고려한 묘수였다. 기존 음식과 어울리는 신메뉴를 기획하는 것이 그의 원칙이며 식재료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다른 메뉴들과 재료가 중복되게끔 설계할 때도 있다. 메뉴를 정식 출시하기 전에는 반드시 테스트 기간을 거친다. 판매 기간 동안 손님들의 반응, 주방에 부담되는 정도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해야 최종 출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서다.
그렇게 보쌈, 낙지볶음 등 여러 신메뉴를 도입한 후 세트 메뉴까지 개발했다. 직장인들은 주로 단체로 방문하고, 인원이 많을수록 메뉴를 오래 고민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바싹불고기와 메인 요리 2가지를 더한 3~4인분 구성으로 현재 주문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다. 특히 술국 무한리필 서비스가 유인책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솥단지에서 대량으로 끓이기 때문에 추가 조리하기 용이하고, 국물 요리로서 주류 판매량을 늘리는 데 일조할 거라는 김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세트 주문으로 인한 객단가 증대 폭이 무한 리필로 인한 서비스 비용을 상쇄하기 때문에 마냥 손해 보는 장사라고 할 수 없다.
STEP 2: 오래된 업력, 브랜딩의 재료가 되다
지금부턴 4대 신유정 이사에게 귀 기울여 보자. 해오던 것을 유지하되, 하지 않던 것에 도전하기. 신 이사와 그의 남동생 신상호 셰프가 경영진에 합류하며 역전회관에 생긴 변화다. 특히 세계 3대 디자인 학교인 런던의 세인트마틴을 졸업한 신 이사가 브랜딩에 돌입하면서 역전회관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마주한다.
편견에 맞서야 했던 1인 TF팀
업력있는 노포의 이미지가 장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정체성이 신 이사의 발목을 잡았다. 직원들에게 브랜딩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것조차 녹록지 않았기 때문. 일부 직원들이 '눈만 높아서 브랜딩같은 단어만 중시한다'며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젊은 층의 유입을 늘리려면 브랜딩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맛집의 경쟁 범위가 전국구로 확대되는 요즘, 단골에게만 의존할 경우 머지않아 존폐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먼저 매장의 내외부를 다듬는 데 힘을 쏟았다. 첫 번째 타깃은 밋밋하기 그지없던 로고! 오랜 업력에 어울리게끔 힘 있는 폰트를 구현하고자 참이슬과 화요의 로고를 기획한 강병인 캘리그라퍼와 협업했다. 리뉴얼 이후 인스타그램, 홈페이지, 메뉴판 등 곳곳에 반영하며 로고의 범용성을 높였다.
다음 타깃은 연예인 사인 액자들로 빼곡했던 벽면. 이를 허물고 브랜드 역사를 보여주는 코너를 만들겠다고 하자 일각에서는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연예인 사인이 곧 맛집의 증표인데 왜 없애냐고 반박했지만 신 이사가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다른 맛집에 가도 즐비한 사인들을 보여줄 바엔 매장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브랜드를 기억시키는 데 주효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완성된 통유리 코너에는 동묘 시장에서 수급한 기와집 문과 친할머니에게 받았던 빛바랜 구형 지폐 등이 자리한다. 대기 손님들 사이에서는 역전회관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창구이자 포토존으로 쓰인다.
"엄마, 왜 우리는 소주랑 맥주만 팔아?"
역전회관에는 식사 메뉴 외에 또 다른 비책이 숨어있다. 수제 막걸리 '역전주'가 바로 그 주인공. 2019년 출시 후 2년이 채 안 돼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막걸리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된 한 잔이다.
우연히 전통주에 빠진 신 이사가 역전회관만의 술을 만들자며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반면에 김 대표는 4000원 대 소주를 마시는 손님들에게 1만 원이 훌쩍 넘는 전통주가 용인되겠냐며 인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다. 신 이사 또한 확신이 서지 않아 매일 고민했지만 어느날 1대 사장님이 수제 막걸리를 판매했다는 기록을 접한 후 그 상징성을 잇겠다고 결심한다.
무턱대고 신사업에 투자할 순 없었기에 먼저 타사 전통주를 식당에서 판매하며 가능성을 살폈다. 매장 곳곳에 각 전통주의 특징과 제조 과정을 그린 포스터를 부착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를 피력했다. 걱정과 달리 포스터를 본 손님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사전 물량이 빠르게 완판되는 것을 본 신 이사는 전통주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레시피 연구 기간만 무려 2년. 역전회관의 한식과 어울리는 술을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바싹불고기와 낙지볶음처럼 불맛이 강한 메뉴들과 페어링되려면 향이 세지 않고 목넘김이 부드러워야 했다. 매일 식당 지하 1층에서 삼광쌀과 누룩, 물로만 배합해 숱하게 테스트한 결과 100일간 저온숙성하면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목넘김을 구현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한식에 어울리게끔 자연스런 단 맛을 내고자 감미료 대신 쌀의 함량을 늘린 것 역시 비결이다. 실제로 바싹불고기와 역전주의 '단짠 조합'이 훌륭하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역전주를 정식으로 출시하기 전, 신 이사는 또 한 번 어려운 설득에 나섰다. 매장 1층의 30여 석을 없애는 대신 양조장을 마련하자고 말이다. 테이블을 줄이면 매출 손실로 직결되는데다 매장 1층은 장사가 가장 잘 되는 구역이다 보니 내부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제조 과정을 직접 봐야 수제 막걸리의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신 이사의 고집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양조장을 통해 역전주의 판매량이 늘면 30여 석을 없앤 기회비용을 메꿀 수 있다고 당당하게 외치며 직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통 유리창과 따뜻한 조명을 더하는 등 제조 과정이 잘 보이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실제로 이곳은 역전주 홍보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한다. 1병(600ml)에 만 원을 호가함에도 생산량이 겨우 따라갈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고, 역전주 판매량이 30여 석의 평균 매출을 상쇄하며 직원들의 우려마저 불식시켰다.
매장 밖에서는 더 실험적으로
매장에서만 시그니처 메뉴를 판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기도 했다. 유통 채널에 따라 바싹불고기의 형태를 최적화하며 여건상 매장 방문이 어려운 손님들에게도 역전회관을 알린 것이다. 예컨대 캠핑 박람회, 골프 리그 등 야외 행사에서는 바싹불고기와 밥, 무생채, 샐러드로 구성된 도시락을 테스트했다. 야외 부스의 조리 시설이 열악한 점을 감안해 고기 두께와 굽는 방식까지 달리했고, 부스 안에서 화려한 직화 퍼포먼스로 이목을 끌었다. 휴일까지 반납하며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야외 행사장에서 역전회관의 메뉴를 맛본 후 매장을 찾는 손님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들어 홈쇼핑에서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바싹불고기, 낙지볶음, 갈비탕 등을 잇달아 완판시키며 2022년 7월 CJ온스타일 음식 부문 명예의 전당에 등극한 바 있다. 홈쇼핑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을 거란 오해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전체 매출에서의 비중은 극히 낮다. 오히려 영업이익보단 전국구 타깃에게 브랜드를 알리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홈쇼핑 진출을 결심하기까지 1년이 넘게 소요됐다. 판매 가격이 저렴해야 하는 홈쇼핑 상품의 특성상 자칫 브랜드 업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 같은 이유로 최근 홈쇼핑 상품을 기획할 때도 레시피 연구, 패키지 디자인 등 모든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바싹불고기의 경우 6개월간 10번의 레시피 수정을 거치며 소스 비율 등의 미세한 부분을 보완했다.
신 이사는 홈쇼핑 생방송에 필요한 전략으로 '스토리텔링'을 꼽는다. 경영진이 직접 매장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석쇠에 굽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여야 손님들에게 오롯이 그 진심이 전달된다는 것. 실제로 경영진이 출연할 때의 판매량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다.
역전회관은 100년 노포가 된 비결로 '전통을 계승하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자세'를 강조한다. 선대의 레시피를 유지함과 동시에 메뉴 개발, 매장 내 볼거리 강화, 유통망 다각화 등 새로움에 도전한 것이 생존력을 높였다는 입장이다.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을 지키며,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것. 국내 식당들의 평균 생존율이 낮은 오늘날 역전회관이 시사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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