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은행업의 구조조정은 향후 20년간 지속될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 현재 은행의 절반 정도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 은행 위기에서 생존하려면 금융사와 규제당국 모두 변해야 한다.”
미국 인터넷은행 ‘모벤’의 창업자이자 ‘뱅크 4.0’의 저자인 브렛 킹(55)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 국면에서 은행들이 소멸과 매각 등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은행 위기가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단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퍼진 공포심리로 파산한 사례를 거론하며 금융회사와 규제당국의 인식이 모두 바뀌어야 다음 은행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2011년 모바일 스타트업 뱅크 ‘모벤’을 설립한 킹은 현재 핀테크 및 은행산업 전문가이자 미래학자, 작가로 활동 중이다. ‘뱅크 4.0’ ‘핀테크 전쟁’ ‘테크노소셜리즘’ 등 여러 저서를 통해 은행산업 및 미래 기술의 향방을 제시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핀테크 전략에 대해 자문에 응하기도 했다. 그는 이달 3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해 ‘금융의 새로운 미래와 뱅크 4.0’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 유럽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했는데 이런 상황을 예측했나.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금융산업 전반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20년 동안 은행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일어났고, 현재 미국 은행 수는 2000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디지털 전환에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도입되면서 지점 위주로 사업을 펼쳐온 은행 간 이합집산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형 금융사도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은 얼마나 오래 진행될까.
“개별 은행의 파산, 은행 간 통폐합이 향후 20년 동안 계속 진행될 것이다. 향후 현재 은행의 절반만 살아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전환에 미진한 금융사가 많아 구조조정이 단기간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시기다.”
―‘제2의 SVB 사태’를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금융회사와 규제당국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우선, 금융사는 소비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 SNS 여론만으로 중소형 은행이 파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고객 접근 및 관리 방식을 바꾸지 않는 금융사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소셜미디어와 대중의 의견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한다.”
―규제당국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디지털 은행에 적합한 새로운 유동성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유동성 개념 및 지표가 디지털 은행에 그대로 적용되긴 어렵다. 은행이 적정 자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도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성공적인 디지털 은행 사례를 꼽는다면….
“모바일 플랫폼으로 시작한 기업 중에선 중국 알리페이와 위뱅크, 남미 최대 핀테크 은행 누뱅크(nubank) 등이 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금융회사다. 이들은 고객의 돈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데만 그쳤던 은행의 개념과 역할을 바꾸고 있다. 플랫폼 안에서 고객 경험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성 은행 가운데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 10곳 남짓밖에 안 된다.”
―한국 금융이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규제당국이 현재의 보수적인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쉼 없이 바뀌는 금융 생태계에 대처하려면 기술, 규제에 대한 생각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중국의 핀테크 시장이 미국보다 10년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데, 이는 중국 규제당국이 디지털 은행과 가상화폐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덕분이다.”
―은행 점포 축소에 대한 생각은….
“정부 차원에서 은행 간 통합 지점 설립을 유도해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 점포를 축소하는 건 비용 절감을 위해 당연하다. 고령층의 모바일 접근성을 단기간에 개선하기 힘드니 정부가 이런 식으로 조율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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