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發 주가폭락 사태]
전모 드러나는 ‘SG發 주가폭락’
라덕연, 유통량 적은 ‘품절주’ 선택
다단계 사기방식으로 투자자 모집… 하루 1%씩 2, 3년 올려 감시 피해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한 불공정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4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회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회장과 키움증권 이사회 의장직을 사퇴하고 다우데이타 주식 매각 대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주가 폭락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달 20일 김 회장이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로 다우데이타 주식 140만 주(3.65%·605억4300만 원 규모)를 매도한 것과 관련해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매도 과정에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번 사태로 모든 분들께 상실감을 드린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사당국은 또 이번 사태와 관련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시세조종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전에 인지했다면 주가조작 공범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사당국이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SG 사태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 다단계식 투자자 모집
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는 “저평가된 주식을 검토해 안전하게 투자하는 방식으로 돈을 모을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그러면서 투자 종목과 방법 등을 묻는 투자자들에게는 “소문이 나면 안 되니 종목 등에 대해서는 묻지 말고 전적으로 맡기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 대표는 점조직을 꾸리고 투자자들을 데려오면 추가 수익금을 배분하는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 방식을 활용했다.
투자자 수익의 절반을 수수료로 챙긴 라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남은 수익에 추가로 투자금을 보태 재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또 투자자들의 개인정보와 휴대전화를 이용해 추가로 차액거래결제(CFD) 계좌를 만들고 투자자의 동의 없이 임의로 거래를 반복했다. 투자자들끼리 주식을 서로 사고파는 형태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CFD는 투자자가 실제 주식을 매수하지 않고도 증거금 40%만 있으면 최대 2.5배까지 투자할 수 있는 일종의 ‘빚투’(빚내서 투자)다.
● 2, 3년에 걸친 시세조종
라 대표는 단기간에 주가를 부양하는 과거 방식과 달리 2, 3년에 걸쳐 하루에 주가를 0.5∼1.0%씩 올리는 방식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했다. 선택한 종목은 대성홀딩스, 서울가스, 선광, 삼천리, 세방, 다우데이타, 하림지주, 다올투자증권, CJ 등 9개였다. 해당 종목의 공통점은 대주주 지분이 높고 유통 주식이 적은 이른바 ‘품절주’라는 것이다.
유통 주식 수가 적을수록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매수자와 매도자가 짜고 치는 ‘통정매매’를 통해 시세를 조종하기 더 쉬웠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또 해당 종목 대부분은 고령인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다올투자증권을 제외한 8개 기업 총수는 모두 60세 이상이다. 폭락 전 주식을 대량 매도해 불공정거래 의혹이 불거진 김익래 회장(73)과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78)은 모두 70대다.
라 대표는 본보를 포함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등록 투자자문업을 펼친 것만 잘못을 인정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사당국 관계자는 “금융당국에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고 투자자문업을 한 것은 분명한 불법이고, 주식을 서로 사고팔면서 주가를 올리는 통정매매를 한 것도 자본시장법상 처벌 대상”이라고 말했다.
● 주가조작단 매도로 ‘무더기 하한가’
끝없이 오를 것만 같았던 9개 종목의 주가는 지난달 24일 폭락하기 시작했다. SG증권을 통한 매물이 갑자기 쏟아진 것이다. 주가조작과 관련해 언론 취재와 금융당국의 조사가 시작돼 주가조작단들이 대량 매도에 나섰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부분의 CFD 거래는 SG증권 같은 외국계 증권사를 끼고 하기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돼 주가조작 세력이 악용할 여지가 크다.
주가가 하락해 증권사는 CFD 계좌 투자자에게 추가 증거금을 요구했지만 라 대표가 추가 증거금을 납부하지 못해 반대매매 역시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무더기 하한가’ 사태는 나흘간 지속됐다.
수사당국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시세조종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다만 인지한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가 섞여 있어 기준점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사태로 CFD 계좌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빚을 진 투자자들은 4일 “주가조작 사기로 인해 벌어진 하한가 사태인 만큼 채권 추심을 유예해 달라”는 진정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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