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K-드라마, K-게임, K-애니.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하는 한국 콘텐츠들을 가리킬 때 흔히 앞에 ‘K’를 붙이는데요. 이 콘텐츠만은 K를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웹툰인데요. 세로로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보는 디지털 만화형식과 ‘웹툰(Webtoon)’이란 용어의 원산지가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유명 웹툰 작가들이 돈을 많이 번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대박이 났다, 한국 웹툰 플랫폼들이 북미와 일본시장에서도 엄청 인기를 끌고 있다 등등. 웹툰산업의 성장 스토리를 아마 들어보셨을 텐데요. 하지만 아직 글로벌 웹툰시장은 이제 막 본격적인 성장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남수 키움증권 연구위원과 웹툰의 글로벌 성장전략을 주제로 인터뷰했습니다.
-먼저 국내 웹툰 시장부터 살펴볼까요. 저는 만화도 다른 콘텐츠처럼 디지털화가 상당히 진전됐을줄 알았는데요. 생각보다는 디지털화 비중이 그렇게까지 높진 않더라고요.
“2021년 기준으로 보면 국내 온라인과 오프라인(만화 출판업+도소매업) 만화 시장 매출이 각각 1조원 정도로 1대 1 비중입니다. 아마 2022년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조금 압도했을 겁니다.”
-웹툰은 보통 ‘기다리면 무료’잖아요. 빨리 보고 싶으면 돈을 내겠지만, 무료로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그럼 돈을 많이 벌긴 어렵지 않나요?
“ ‘기다리면 무료’가 우리나라 플랫폼 회사들이 마케팅을 위해 만든 좋은 전략인데요. 2022년 기준으로 웹툰을 읽는 사람이 일주일에 평균 10편을 보거든요. 한달 결제금액은 보통 1만원 이하이고요. 한 편이 300~500원이니까 한달에 절반은 유료, 절반은 무료로 보는 거죠. 그렇다 보니 웹툰 산업이 매출액을 크게 올리기엔 아직은 좀 어려운 상황입니다.” -글로벌 만화 시장 중에서는 일본이 단연 최대 시장인데요. 출판만화 아닌 디지털만화 쪽도 큰가요?
“네이버와 카카오가 웹툰시장에 진출하면서 일본 전자만화 시장이 크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이미 디지털 만화 점유율이 출판만화를 추월해 61%에 달할 정도인데요.
일본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중장년층이 만화를 즐긴다는 거죠. 일본에서 가장 큰 덕후 시장이 바로 만화입니다. 그렇다 보니 (덕후들은 지갑을 잘 열기 때문에) 일본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도 성과가 굉장히 좋습니다.”
아마존과 애플이 넘본다
-최근 아마존과 애플이 일본에서 웹툰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웹툰 플랫폼 시장에 진출한 게 큰 화제였죠. 한국식 웹툰 시장이 해외에서 빠르게 커가자, 아마존과 애플 같은 빅테크까지 눈독을 들이는 걸로 보이는데요. 지금이 어떤 흐름이라고 보면 될까요?
“플랫폼 시장을 공부하려면 따져볼 용어가 있습니다. ‘CPND’입니다.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 웹툰 시장은 디바이스가 만화책에서 휴대폰으로 넘어오면서 부흥 발전했고, 그러면서 플랫폼이 생긴 건데요. (맨 앞단의) 콘텐츠는 전 세계적으로 부족합니다.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들이 웹툰 플랫폼에 진출하면 콘텐츠 측면에서 또 한 번 부흥기가 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웹툰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 측면에서는 거대 경쟁자가 생기지만, 콘텐츠 창작자 입장에서는 또 다른 기회가 열리는 겁니다. 마치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처럼요.”
-마치 글로벌 OTT들이 잇따라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에 기회가 열린 것과 좀 비슷한 상황이군요. 그동안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웹툰 플랫폼이 해외 진출을 열심히 해왔는데, 얼마나 잘하고 있나요.
“미국이나 일본 MZ 세대 기준으로 볼 때 웹툰의 침투율은 상당히 좋은 상황입니다. 앱 다운로드 숫자로도 봤을 때 한국 웹툰 플랫폼들이 가장 강력합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잘 만든 웹툰을 번역해서 서비스를 해왔는데, 이제는 현지에서 직접 그 나라 웹툰을 만드는 시도를 더 많이 하고 있어요. 네이버는 캔버스 시스템이라고 해서 신인과 아마추어 작가들을 등단을 시키고 있구요. 카카오는 일본에서 ‘웹툰 공작소’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현지에 있는 출판사들하고 협업을 하면서 원천 IP(지식재산권)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웹툰을 가지고도 서비스가 잘 됐는데, 현지에서 직접 개발한 콘텐츠들이 나온다면 웹툰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절대 다른 콘텐츠에 비해서 꿀리지 않을 영역이라고 봅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콘텐츠 창작 분야에 있어서는 다방면으로 인정 받지만, 콘텐츠 플랫폼 쪽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나가는 한국 기업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인데요. 웹툰 플랫폼은 글로벌 플랫폼으로 커갈 가능성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맞아요. K-팝이 한국만 갖고 있는 노래를 가지고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고 있잖아요. 웹툰 시스템이라는 게 기존 출판만화하고는 좀 결이 다른데요. 이 한국의 웹툰 창작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작가들이 늘어난다고 하면 우리 웹툰 플랫폼이 해외를 공략할 때 매우 유리해질 거라고 봅니다.”
창작자에 대한 투자가 시작되다
-웹툰이 글로벌로 뻗어나가서 커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초입부에 있다는 느낌인데요. 그럼 K-팝이나 한국드라마처럼 만화 창작자들의 시장도 산업화되고 커질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려면 뭐가 좀더 필요할까요.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려면 콘텐츠가 드리븐해줘야 합니다. 콘텐츠 창작량이 많지 않으면 플랫폼이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하더라도 성장하기 힘들어요.
앞서 말씀드린 OTT(드라마)나 스트리밍서비스(대중음악)와 비교하면 웹툰 콘텐츠 양이 풍부하다고 하긴 아직 어렵습니다. 전 세계 웹툰 콘텐츠의 성숙도가 얼마나 올라왔는지를 스트리밍서비스와 비교해 보면, 현재는 과거 2010~2012년 당시의 음악시장(앨범 판매는 줄고 스트리밍 매출은 늘면서 전체 시장규모는 정체돼있던 시기) 레벨이라고 보고 있어요. 지금은 아무도 앨범을 사지 않는데 전체 음악산업 사이즈는 커지고 있죠. 이게 바로 스트리밍서비스가 끌어나가고 있는 음악산업인데요.
이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점에서 살펴볼 때 도서출판 시장은 다른 영역과는 좀 다르게 대체 보완시장 성격이 좀 큽니다(디지털로 읽고 종이책을 또 사진 않음). 그렇다 보니까 OTT나 음악처럼 DT(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가 오면서 시장의 파이가 급격히 커지는 모양새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 웹툰이 처음에 읽혀지게 된 게 스마트폰이란 디바이스가 나왔기 때문이잖아요. 앞으로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XR(확장현실) 등 신기술이 개발되고 디바이스가 변화한다면 웹툰 콘텐츠도 더 다양해질 겁니다.
웹툰이 이런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창작자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웹툰 플랫폼의 독점화(특정 플랫폼이 작품을 독점 런칭) 경향이 상당히 심해지고 있습니다. OTT로 얘기하면 오리지널 시리즈인 셈인데, 그 비중이 2021년 기준 64%까지 올라왔어요.
플랫폼을 키우려면 웹툰 작가들을 영입해 플랫폼 안에 내재화하는 작업을 해줘야 하고요. 이와 함께 신인, 아마추어 작가 개발에도 힘써야 합니다. 플랫폼 측면에서는 CAPEX(자본적 지출)라고 하는 투자 비용이 좀 들어가야 되는 상황인 거죠.
웹툰 플랫폼들이 최근 5년 정도 잘 성장하며 장을 마련해놨고요. 여기에 CAPEX 투자금액이 더 투입된다면 다시 한번 진일보할 수 있을 겁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스타 드라마 작가들을 거액을 주고 끌어오듯이, 웹툰 플랫폼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유명 작가들한테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끌어모아야 하겠군요.
“맞습니다. 웹툰이란 장르가 사실 15년 정도 된 거고요. 작품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 지는 5~10년밖에 안 됐습니다. 그래서 스타 작가들이 여러 분 있지만, 그들의 작품 숫자가 다양하진 못합니다. 기존 소설이나 만화와 비교하면요.
그런데 플랫폼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지표가 트래픽이고요. 그 트래픽은 재미있는 작품에서 나옵니다. 그러려면 스타 작가가 필요한 거죠.”
-잘 된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한국에선 많은데요. 앞으로도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지겠지요?
“그건 반드시 필요하고 반드시 가야할 길입니다. 웹툰은 소재 측면에서 다양한 이야기거리들을 콘텐츠 시장에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데요.
일본 만화산업이 가진 ‘제작위원회’라는 시스템이 있는데요. IP 기획 개발 초기부터 맨 끝의 머천다이즈 산업까지 일사불란하게 수직계열로 움직입니다(잡지 연재→인기작 단행본→TV&극장판 애니→캐릭터 상품화). 한국 웹툰도 결국 기획 개발부터 머천다이즈 시장까지 한꺼번에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에 협업할 수 있는 회사들이 있다면 그 기업을 (투자자들이) 좀 주목해야 하고요.”
-그러고 보면 웹툰이 잘 돼서 드라마나 영화로 대박이 나더라도, 그게 굿즈까지 연결되거나 하는 정도로 간 경우는 없는 듯하네요.
“일단 드라마나 영화까진 손을 뻗치지만 그 다음 영역은 손을 대고 있진 못한데요. 우리도 이제 종합적인 시스템으로 일원화하는 게 필요하죠. 장기적으로 흥행하는 콘텐츠, 흔히 말하는 ‘롱테일’을 만드는 게 플랫폼 회사와 콘텐츠 회사의 가장 중요한 수익원이거든요. 피카츄나 미키마우스 같은 IP들이 대표적인 예이고요. 또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개발해야지만 투자자들을 모으기도 쉽습니다.”
‘제2의 K-팝’ 될 날 머지않았다
-한국 웹툰의 잠재력은 충분해보이고, 빅테크까지 웹툰 플랫폼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커보이긴 합니다. 만약 관련해서 투자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요.
“아마 30년 후에는 우리가 만화책으로 만화를 읽는 것보다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만화를 보는 게 더 익숙할 거예요. 대다수의 분들이 그렇게 할 겁니다. 게임산업과 비교해봐도 결국 중장년층 소비 인구가 많아질 때 산업이 레벨업 되거든요. 그렇게 보면 웹툰도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거고 유망한데요.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투자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다 보니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들은 투자 대비 수익을 끌어내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CP사들 위주로 봐야 합니다.
CP사들도 웹툰만 한다고 하면 현재 과금 구조(기다리면 무료)가 그렇게 우호적이진 않습니다. 따라서 애니메이션 시장과 접목해야 합니다. 향후 2025년까지 디지털 콘텐츠 중 가장 성장할 걸로 보는 시장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입니다. OTT에서 투자가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디지털 애니메이션 시장이 커질 거거든요. 국내를 봤을 땐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미르라는 회사가 있고요. 애니메이션 OTT 플랫폼을 들고 있는 애니플러스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웹툰의 산업 성장의 측면에서 볼 때 꼭 필요한 기능을 들고 있는 회사여서 저는 좋게 봅니다.”
-웹툰이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져야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고, 마침 OTT들이 애니메이션 투자를 늘리고 있는 거군요. 그런데 왜 글로벌 OTT는 애니메이션 투자를 늘릴까요?
“최근 3년을 보면 넷플릭스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많이 올라와있는데요. 중장년층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기존에 작업 해놨던 작품이기 때문에 리마스터링을 통해서 작품을 올리기가 편합니다.
OTT들이 콘텐츠를 다양화하려면 작품 숫자가 많이 필요한데요. 드라마나 영화를 찍어내는 데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립니다. 드라마 한 편 찍는데 1년 반 정도 걸리니까요. 그래서 그것도 하지만 작품 다양성 확보를 위해 애니메이션 카테고리를 늘려가고 있는 거죠.” -웹툰 원작이 있으니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흥행할지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이유 아닐까요?
“원작이 흥행한 건 선순환이 매우 좋습니다. 우리나라 작품 중 ‘신의 탑’과 ‘나 혼자만 레벨업’ 같은 좋은 작품들이 해외에서 애니메이션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재벌집 막내 아들’처럼 웹 소설-웹툰-TV드라마의 선순환 구조를 보여준 경우도 있고요. 히트 칠 비율을 어렵지만 추정해볼 수 있는 거죠.”
-플랫폼들이 투자를 하고, 아마존과 애플 같은 빅테크가 시장에 뛰어들고, 여기에 글로벌 OTT의 애니메이션 투자까지 겹치면 어느 순간엔 K-팝처럼 빵 터질 수 있으려나요. 지금도 인기 웹툰 작가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가 많은데 K-팝과 비교하면 아직은 옛날 SES와 HOT가 활약하던 수준에 불과한 게 아닐까요. 웹툰의 글로벌 산업화는 덜 된 듯합니다.
“글로벌 산업화가 되면 당연히 창작자들의 무대는 넓어지게 됩니다. 지금 K-팝이 그걸 증명하고 있죠. 예전엔 한국에서 음악을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했었는데, 이제는 리얼타임으로 외국에서 동시에 보다보니까 K-팝이 이렇게 잘 나가고 있거든요. 웹툰도 그렇게 될 시점이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웹툰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 또는 웹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웹툰 시장 전망에 대해 좀 희망적인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웹툰 시장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장입니다. 수출과 수입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수출 산업으로서도 육성을 해야 될 분야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창작에 있어서 구조화되지 못한 면들이 있기 때문에 웹툰 창작자분들이 홀로 외롭게 분투하고 있는 모습들을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데요. 글로벌로 조금씩 더 뻗어나가면서 해외 유저들이 늘어난다면 충분한 보상이 있을 거라 보고요. 우리나라 플랫폼이 글로벌 시장에서 깃발을 꼽을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거든요. 웹툰이 그렇게 될 거라 믿습니다.” By.딥다이브
웹툰 시장의 성장이 이미 한참 이뤄진 줄 알았는데, 아직 10여 년 전 스트리밍서비스 시장 수준이라니. 갈 길이 멀지만 동시에 희망도 보이는 듯합니다. 인터뷰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한국 플랫폼들이 주름잡고 있던 글로벌 웹툰 시장에 빅테크인 아마존과 애플이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웹툰 시장의 글로벌 성장이 본격화되는 모습입니다.
-플랫폼이 늘어나지만 콘텐츠는 많이 부족합니다. 창작자들에겐 기회가 열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스타작가를 영입하고, 신인 작가를 발굴하려는 플랫폼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겁니다.
-글로벌 OTT의 애니메이션 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웹툰 산업에 긍정적 요인입니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당분간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에서 웹툰 플랫폼은 수익성이 크게 좋아지기 어려운 구간입니다. 오히려 CP사 쪽에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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