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8조 증발한 초유의 주가 폭락 사태… 사상 최대 금융사건 檢 수사 막 올라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5월 6일 10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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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덕연 대표 주가조작 주도 의혹, 기업 회장들이 폭락 전 거액 현금화한 경위 의문점

라덕연 H투자컨설팅 업체 대표(왼쪽)와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 [동아DB]
라덕연 H투자컨설팅 업체 대표(왼쪽)와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 [동아DB]


“작전 세력이 들어오면 해당 기업은 대개 눈치를 챈다. 호재도 없는데 자기 회사 주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번에 주가가 폭락한 한 기업의 회장이 한 달 전쯤 보자고 해서 만났다. 자기네 회사 주가가 이유 없이 올라 주가조작 세력이 들어온 거 같은데 신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더라. 주주들이야 주가가 올랐으니 좋아하긴 하는데 나중에 주가조작이 있었다고 하면 회사 이미지에 안 좋은 거 아닌가 걱정하면서 말이다.”

금융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한 변호사가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가 있기 전 이상한 조짐을 감지한 주가 폭락 연루 기업인의 당시 움직임에 대해 전한 말이다. 4월 24일 삼천리 등 8개 종목이 대폭락하기 전 이미 물밑에서는 해당 기업의 대주주를 중심으로 어떤 세력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인식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폭락 직전 각각 605억 원, 477억 원 상당의 보유 지분을 정리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과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이 하필이면 왜 그 시점에 주식을 대거 처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것도 이런 상황과 맞닿아 있다.

단 나흘 만에 시가총액 8조 원이 증발한 이번 사태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국내 금융사건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피해 액수가 엄청나고 완전히 새로운 수법의 신종금융 사건이라서 검찰 금융조사부를 모두 투입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그렇게 되면 올해 검찰은 다른 사건 수사는 거의 못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주가 폭락 사태의 원인인 주가조작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라덕연 H투자컨설팅 업체 대표에게 과거 돈을 맡긴 적이 있다는 중소기업 대표 이 씨. 그는 “2020년 지인 소개로 라 대표가 운영하는 업체에 투자했다가 개인적인 문제로 같은 해 투자금을 회수했다”며 “당시 라 대표의 전화번호가 바뀌면서 연락이 끊겼고 투자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씨는 “지인이 먼저 투자 중이었고 라 대표도 순수해 보여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며 “당시 라 대표가 ‘이러이러한 주식이 있는데 수익 구조가 좋을 것 같으니 믿고 맡겨봐달라’고 했는데 최근 뉴스에서 ‘조 단위’로 돈을 굴렸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가수 임창정 씨, [동아DB]
가수 임창정 씨, [동아DB]


“키움증권 나를 저격” vs “라덕연 사실 왜곡”

초유의 주가 폭락 사태로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이 씨처럼 ‘한 끗 차이’로 피해를 비켜 간 사람도 있지만 반대매매가 연달아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은 투자자도 적잖다. H투자컨설팅 업체와 무관하게 관련 기업에 투자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개인투자자도 부지기수다. 라 대표는 “나는 가치투자를 했을 뿐”이라며 “김익래 회장의 혐의를 먼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와 관련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라 대표는 5월 2일 기자와 통화에서 “그 사람들이 나를 저격한 것”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주가 폭락 배후에 김익래 회장과 키움증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과 관련해 김 회장이 600억 원을 진짜 받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 측이 ‘공매도 세력’에 보유 주식을 빌려줘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렸을 수 있다는 의혹 제기다. 김 회장 등 일부 대주주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것이 라 대표의 입장이다.

김 회장과 키움증권은 라 대표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키움증권 측은 “주식 가격을 하락시키려고 키움증권이 인위적으로 반대매매를 실행했다는 취지의 라덕연 발언은 실시간으로 자동 실행되는 차액결제거래(CFD) 반대매매의 구조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해외 투자은행(IB) 바이어와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잡하게 얽힌 이번 폭락 사태는 4월 24일 삼천리 등 8개 종목이 동시에 하한가(30% 하락)를 맞으며 촉발됐다. 외국계 증권사인 SG증권 창구를 통해 대량의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급락한 것이다. 해당 종목들이 연속으로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8개 종목은 나흘간 42~76% 급락했다. 연쇄 하한가 사태의 진원지로는 CFD 계좌가 꼽힌다.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대량의 반대매매가 체결됐기 때문이다.

H투자컨설팅 업체는 기존 투자자가 지인에게 사업을 소개하는 등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객 명의로 200여 개 휴대전화를 개통해 모바일 계좌를 만들고, 매매를 대신하며 주가를 띄운 것으로 알려졌다. 개개인 명의로 매매가 이뤄지면서 상당 기간 금융당국의 감시도 피할 수 있었다. 라 대표는 투자자 1000여 명으로부터 1조 원가량을 투자받았는데 이를 CJ, 다올투자증권 등 9개 종목에 집중 투자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전 CJ파워캐스트 대표와 함께 펀드(어센트바이오펀드)를 만들어 바이오기업 ‘싸이토젠’ 주식을 매수하기도 했다. 라 대표는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된 2019년 정치권 인사들과 ‘아리투어’라는 북한 전문 관광 여행사를 설립했고, 이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가 그에게 수십억 원을 투자한 일도 있었다.



이번에 주가 폭락을 맞은 종목들은 대주주 지분(최대주주 및 특별관계자)이 높고 유동 주식 물량이 적다는 공통점이 있다(표 참조). 라 대표도 △지주회사 △적은 유통 주식 △상속 이슈 등 세 가지 조건을 중점적으로 고려해 종목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금융정보 전문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5월 2일 기준 이들 주식은 유동 주식 비율이 통상적인 회사들에 비해 낮았다. 국민 주식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이 같은 특징은 두드러진다. 삼성전자의 대주주 지분은 20.73%고, 유동 주식 비율은 75.82%다. 반면 이번에 주가가 폭락한 8개 종목의 경우 대주주 지분이 최대 72.74%에 달했고, 유동 주식 비율이 20%대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었다.

“재미없는 종목인데…”

통상적으로 투자업계에서는 이런 종목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유동 주식 비율이 낮다는 것은 시장에 물량이 적게 풀렸다는 의미인데, 이 경우 거래량이 적고 계약 체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주식들은 투자자 사이에서 ‘재미없는 종목’이라는 시각이 많고 선호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세조종’을 노리는 집단에서 이 같은 단점은 장점으로 둔갑한다. 거래 체결이 어려워 적은 거래량에도 주가가 크게 움직이다 보니 시세조종이 상대적으로 쉬워지는 것이다. 시장에 풀린 물량이 적은 만큼 적은 자금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대주주 지분이 높고 유동 주식 비율이 낮은 점은 이번 폭락 사태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물량(주식)만 주어진다면 ‘매도 세력’ 역시 주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주주의 블록딜 체결과 함께 매도 물량이 쏟아지자 주가가 급락한 배경에도 앞선 특징이 영향을 미쳤다. 김익래 회장과 김영민 회장이 폭락 직전 각각 605억 원, 477억 원 상당의 보유 지분을 현금화했는데, 지배주주의 보유 지분 정리 역시 시장에서 악재로 받아들여졌을 공산이 크다.

더 나아가 라 대표 측이 CFD를 통해 주가를 부양한 점 역시 주가 하락세에 기름을 부었다. CFD의 경우 주가가 폭락할 때 ‘강제 청산’이 연달아 일어나며 하락을 부채질하는 경우가 많다(Tip 참조).



법조계는 이번 주가 폭락 사태로 인한 피해액이 적게는 1000억 원대에서 많게는 조 단위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H투자컨설팅 업체를 통해 투자한 이들은 물론, 라 대표마저 주가 폭락으로 450억 원 가까이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이번 주가 폭락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개인투자자다. 일반 투자자들이 입은 전체 피해 규모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NH투자증권을 이용하는 개인투자자의 경우 8개 종목의 주주 대부분이 이번 주가 폭락 사태로 손실을 입었다(그래프 참조). 그중 5월 2일 대성홀딩스 주주들의 평균 수익률(-63.62%)이 가장 낮았고 손실 투자자 비율(97.37%)도 가장 높았다. 주가가 폭락한 이후 수많은 개인투자자가 ‘하따’(하한가 따라잡기)에 나선 것이 통계에 반영된 만큼, 실제로 피해자들이 입은 손실분은 더 클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은 5월 3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과 합동수사팀을 구성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라 대표를 입건하고, 통정거래에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200여 대 역시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투자자들이 H투자컨설팅 업체에 휴대전화와 증권계좌 등을 넘긴 경위도 이 과정에서 함께 조사할 예정이다. H투자컨설팅 업체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이번 주가 폭락 사태로 손실을 봤다며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주가조작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질 경우 공범으로 분류될 수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일임매매 사건이라는 점에서 김건희 여사가 얽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연상케 해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당국 책임론 부상

사법당국은 ‘시세조종 여부’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라 대표의 경우 검찰이 수사 중인 상황이라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면서 “보통의 경우 매수자와 매도자의 거래 빈도, 거래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정거래 여부를 가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라 대표는 “통정거래 여부는 법정에서 따질 일”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자신이 통정거래를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역시 이번 폭락 사태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정부가 CFD 규제를 완화하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CFD 거래 자격을 완화했다. 금융 투자상품 잔고 요건을 ‘5억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낮춘 것이다. 그 결과 CFD 거래를 할 수 있는 개인 전문 투자자 등록은 2019년 3330건에서 2021년 2만4365건으로 급증했다.

주가 폭락 부채질한 CFD
차액결제거래(CFD)는 현물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분에 대해서만 결제하는 장외 파생상품이다. 증거금의 40%만 있으면 최대 2.5배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가능하다. 정해진 증거금률을 유지하지 못하면 반대매매를 통해 강제 청산된다는 리스크가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상품인 셈이다. 거래 구조상 투자 주체가 노출되지 않아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활용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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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38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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