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반도체 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DS)부문과 SK하이닉스 등 두 곳의 재고자산만 5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DS부문의 3월 말 기준 재고자산은 31조9481억 원이다. 지난해 말의 29조576억 원보다 2조8905억 원(9.9%) 증가했다. 2021년 말(16조4551억 원)과 비교하면 1년 3개월 만에 두 배가 됐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재고자산이 17조1822억 원이라고 공시했다. 지난해 말(15조6647억 원)보다 1조5175억 원(9.7%) 늘었다. SK하이닉스 역시 2021년 말(8조9500억 원) 대비 재고자산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올해 1∼3월 삼성전자 DS부문과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 증가분을 합하면 4조4080억 원에 달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반도체 수요는 줄었지만 반도체 공장은 365일 24시간 가동되며 반도체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10∼12월)부터, 삼성전자는 올 1분기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줄이는 등 메모리 반도체 감산에 들어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감산 대열에 합류했고 고객사에 쌓인 반도체 재고가 줄어들며 2분기부터 두 회사의 반도체 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고자산 증가로 몸이 무거워진 것은 반도체 산업뿐만이 아니다. 국내 매출 30대 기업의 3월 말 기준 총재고자산은 235조2619억 원으로 지난해 말(225조2937억 원)보다 9조9682억 원(4.4%) 증가했다. 삼성과 SK 반도체를 빼더라도 5조5602억 원의 재고자산이 늘어난 것이다.
“반도체업계 전체가 재고와의 전쟁”… 하반기 수요-가격 반등 전망
삼성-SK 보고서 16차례 ‘재고 우려’ “고객사들 재고 소진 끝내야 정상화” 유화업계도 재고 늘며 회전율 급락 “하반기부터 감산 효과 나타날 것”
“계절적 비수기와 함께 고객들의 재고 조정이 이어지며 D램과 낸드 출하량이 전 분기 대비 감소했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보고서에 반도체 재고를 설명하며 등장한 표현이다. SK하이닉스가 올해 공시한 보고서에는 ‘재고’를 다룬 표현이 12차례 나온다. 지난해 1분기 3차례에서 부쩍 강조된 것이다. 삼성전자의 1분기 보고서도 지난해는 고객사 재고에 대한 표현이 한 번도 없었으나 올해는 4번 언급된다. 그만큼 경영활동상 중요한 선결과제가 됐다는 의미다.
● 재고 급증하면서 기업 활력 떨어져
삼성전자는 2000년대 들어 두 차례 벌어진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에서도 감산 없이 버텨 점유율 1위의 왕좌를 지켰다. 그런 삼성전자가 3월 감산을 선언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고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재고 문제는 메모리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를 가리지 않고 있다. 메모리의 경우 대형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고객사들이 재고 조정에 나서며 주문량이 줄었고, 비메모리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 모바일 시장 정체에 직격탄을 맞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SK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 전체가 ‘재고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특히 고객사들이 먼저 재고 소진을 끝내야 주문량을 정상화할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 기업들은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외에 대표적 중간재 중 하나인 석유화학 업계도 재고자산이 크게 늘었다. 롯데케미칼의 1분기 재고자산은 2조8989억 원으로 지난해 말 2조5487억 원보다 3502억 원 늘었다. LG화학의 재고자산도 900억 원가량 증가했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건설, 가전 등 글로벌 전방사업 수요가 회복되지 않아 석유화학 제품도 판매가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재고자산이 쌓이자 기업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30대 기업 중 재고자산 회전율을 공시한 28개 기업의 평균 재고자산 회전율은 지난해 9.36회에서 올해 1분기 7.99회로 낮아졌다. 매출을 재고자산으로 나눈 재고자산 회전율은 ‘식당의 회전율’과 유사한 개념이다. 회전율이 좋으면 그만큼 경영활동이 활발하다는 뜻이다.
● 2분기 바닥, 하반기 반등 기대
재계에서는 2분기(4∼6월)를 지나는 동안 경기 반등에 따른 재고 감소가 서서히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산업도 2분기 중 바닥을 찍고, 하반기(7∼12월) 수요와 가격 모두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세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지만 속도가 다소 둔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거래 중인 메모리 가격은 기업 간 거래에 사용하는 ‘고정 가격’이 아닌 ‘현물 가격’이어서 감산 등의 영향이 반영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삼성 등 기업들의 감산 효과는 하반기부터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16일 “현재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위축된 분위기가 2분기에 다소 완화돼, 3분기부터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과 관련해 “하반기부터 주요국 긴축 완화 등 수요 진작과 공급망 정상화에 따른 점진적 시장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4분기(10∼12월)와 올해 1분기에 연이어 적자를 낸 LG화학 석유화학 사업부문이 2분기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