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 지난해 노르웨이 신차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한 비중입니다. 불과 10년 전 3%였던 전기차 비중이 엄청나게 치솟았죠. 지난해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은 테슬라 모델Y. 한해 동안 1만7356대가 팔렸는데요. 노르웨이 역사상 연간 최다판매 차량 기록을 무려 53년 만에 깼습니다(이전 기록은 1969년 폭스바겐 비틀의 1만6706대).
노르웨이의 2022년 베스트셀링카 톱 10은 모두 전기차입니다. 테슬라 모델Y에 이어 폭스바겐 ID.4와 스코다 엔야크, BMW iX가 경합 중이죠. 참고로 현대 아이오닉5는 6위(5044대)에 랭크.
노르웨이의 이런 전기차 열풍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습니다. 이웃 나라 덴마크만 해도 지난해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이 20.8%밖에 안 됩니다. 전기차 대국이라는 중국도 이 비율이 25.6%에 그쳤고요. 노르웨이만 이상할 정도로 전기차 인기가 아주 뜨거운데요.
노르웨이 사람들이 특별히 더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은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전기차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매우 실용적인 이유들이 작용한 결과인데요. 가장 큰 건 이겁니다. 세금.
면세에 할인, 버스전용차로까지
아주 오랫동안 노르웨이에서 전기차는 구매할 때 붙는 세금이 모두 면제됐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이냐면 구매세(취∙등록세)는 1990년부터, 부가가치세는 2001년부터 면제됐죠. 노르웨이가 높은 세율로 악명 높은 나라인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혜택인데요. 이 나라에서 휘발유∙경유 차량을 새로 구입할 때 붙는 부가가치세율은 무려 25%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금 다 내고 내연기관차 사느니, 그 돈으로 차값이 25% 더 비싼 전기차를 살 수 있는 거죠. (참고로 2023년부터는 전기차 가격 중 50만 크로네 초과분에 한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걸로 바뀌었습니다. 50만 크로네는 우리 돈으로 약 6200만원.)
세금만이 아닙니다. 전기차는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고, 페리 요금을 할인받습니다. 유료도로 통행료도 할인해주고요. 실질적인 혜택이 엄청난데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노르웨이 정부는 왜 이런 파격적인 전기차 혜택을 일찌감치 내놨을까요. 이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게 테슬라 같은 해외기업인데 말이죠.
이걸 이해하려면 노르웨이 전기차의 슬픈 역사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노르웨이에도 한때 테슬라 뺨칠 뻔한 전기차 스타트업이 있었답니다. 1991년 설립된 이 기업 이름은 ‘싱크 글로벌(Think Global)’. 나트륨 배터리를 이용한 도시형 전기차를 만들었는데요(나중엔 리튬이온전지도 채택). 노르웨이 정부는 자국 최초의 자동차 기업인 싱크를 키우기 위해 전기차 관련 세제혜택 정책을 잇달아 내놨죠.
이후 싱크는 미국 포드에 인수되고 미국에서 차량을 출시하면서 질주하는 듯했습니다. 2003년 포드사가 “배터리(전기차)는 갈 길이 아니다”라며 싱크를 매각하기 전까진 말이죠. 이후 심각한 자금난을 겪은 싱크는 소형 전기차 ‘싱크 시티’ 생산을 이어갔지만 성능은 기대에 못 미쳤고(완전 충전 시 160㎞ 주행), 가격은 비쌌습니다(미국 기준 3만6000달러). 결국 총 3500대라는 초라한 양산 실적을 남긴 채 2012년 최종 파산했습니다. 2006년 테슬라 공동창업자 마틴 에버하드가 싱크를 찾아와 포괄적 협력을 제안했지만 싱크 측이 거절했던 얘기는 유명하죠. 이제 싱크 차량에 대한 정보는 릴레함메르에 있는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싱크의 전기차 모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노르웨이의 전기차 정책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들어서야 뒤늦게 그 효과를 드러냅니다. 가격이 적당하고 성능이 쓸만한 전기차들이 잇따라 나오자, 면세에 각종 할인 혜택까지 몰아주는 전기차를 안 살 이유가 없게 된 겁니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환경을 지키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던 시점이었습니다. 이에 2017년 노르웨이 의회는 ‘2025년까지 판매되는 모든 신차(승용차와 경형 밴)는 탄소배출이 제로가 돼야 한다’는 국가목표를 정했습니다. 2025년부터는 전기차 또는 수소차만 판매한다는 매우 공격적인 계획인데요. 처음엔 ‘아니, 그게 가능해?’라는 반응이었지만 이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올해 1분기 노르웨이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지난해보다 높은 84.5%로 올라갔습니다.
오슬로 공기가 깨끗해졌다
전기차를 빠르게 늘리는 데는 환경 의식보다는 돈(실질적 혜택)이 효과적입니다. 노르웨이 사례가 증명한 사실이죠. 그리고 전기차가 많아져서 환경에 주는 이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2009년부터 202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6%나 줄였다고 하죠. 공기가 빠르게 깨끗해지고 있는 겁니다.
이쯤에서 이렇게 반문할 분도 있을 겁니다. ‘전기를 만드는 데 화석연료를 쓰니까 전기차라고 탄소배출이 없는 건 아니잖아?’라고요. 그런데 노르웨이는 거의 모든 전기를 수력발전으로 생산합니다. 수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 땐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죠. 석유와 가스 생산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나라이면서도(지난해 1800억 달러어치 수출) 정작 자기네 나라 안에선 수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충전해서 차량을 운행합니다. 아이러니한데요.
그래서 탄소배출 없는 전기차 덕분에 환경도 지키고 국민도 행복해진 해피엔딩 스토리이냐고요? 그러면 좋겠지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노르웨이엔 전기차와 관련한 수많은 논쟁거리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노르웨이가 전기차 시대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이유이죠.
전기차 인센티브는 차별? 여전한 논란
“2022년 노르웨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는 테슬라 모델Y이고, 그 가격은 55만~70만 크로네(약 6900만~8800만원)입니다. 현 정부가 말하는 ‘보통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올해 초 노르웨이 언론이 소개한 전기차 정책 비판론 중 일부입니다. ‘전기차에 인센티브를 주는 환경 정책은 부자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은 노르웨이에서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내연기관 차량보다 전기차가 대체로 더 비싸기 때문이죠. 비싼 전기차를 사는 부자가 값싼 경유차를 사는 서민층보다 더 많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부자들은 세컨드카로 전기차를 사서 부가가치세를 면제받고, 혼잡한 출근길에 버스전용 차로를 달리고, 유료도로 통행료를 할인받을 수도 있죠. 휘발유∙경유차는 장거리 여행용으로 쓰려고 차고에 둔 채 말이죠.
차값뿐만 아니라 충전 면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불리합니다. 노르웨이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EU 회원국 중 최저 수준. 차고가 딸린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가정용 충전기를 이용해 쉽고 싸게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슬로 같은 대도시에 사는 서민들에게 차고까지 갖춘 단독주택은 언감생심이죠.
집이 아닌 공공충전소를 이용할 순 있겠지만 편의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충전 비용이 3배로 불어납니다. “휘발유∙경유차 사용에 적대적인 환경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형벌과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실제 전기차 판매 대수가 급증하면서 노르웨이의 가장 큰 이슈는 충전입니다. ‘얼마나 쉽고 편리하고 싸게 충전할 수 있느냐’가 모두의 관심사로 떠올랐죠.
노르웨이엔 지난해 말 기준 5612개의 공공충전소가 깔려있는데요. 정부 목표대로 전기차가 늘어나려면 2025년 약 9000개로 충전소가 늘어나야 합니다. 정부는 충전소 건설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충전소를 지으려면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표준화되지 않은 충전방식도 문제입니다. 노르웨이엔 충전기 업체가 수십 곳에 달하는데요. 업체마다 이용 방법이 제각각입니다. 보통 자기네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아 회원 가입을 해야 충전할 수 있게 하는 식이죠. 급하게 충전하러 갔는데 해당 충전소 앱이 없으면 새로 내려받아야 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용자 친화성 면에서 꽝인데요. 그동안 ‘제발 주유소에서 기름 넣듯이 앱이 아닌 일반 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용자들 불만이 빗발쳤습니다. 결국 노르웨이 정부가 나서서 며칠 전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죠.
아시다시피 충전은 주유보다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급속충전기라고 해도 완전충전에 3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데요. 만약 충전소를 찾았는데 충전할 자리가 없다면, 대기시간까지 더해야겠죠.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가 인터뷰한 노르웨이 서클K 직원 말이 인상적인데요. 충전소의 긴 대기줄에 좌절한 고객들이 많다 보니 “때때로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커피를 줘야 한다”고 합니다. 동시에 충전이 지루한 고객들이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먹는 경우가 많아서 식품 판매엔 도움이 된다는군요.
충전으로 인한 좌절감은 겨울이면 더 커집니다. 배터리팩은 차가워지면 이론적으로 가능한 전력보다 더 적은 양만 충전할 수 있는데요. 보통 겨울엔 주행거리가 여름의 70%로 줄어든다고 하죠. 겨울이 길고 혹독한 노르웨이에선 매우 치명적인 전기차의 단점입니다.
올해 초 노르웨이 언론이 제설 차량 운전자들의 고충을 보도한 적 있는데요. 정부 시책에 따라 전기 제설차를 구매했더니, 제설하는 시간보다 충전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겁니다. 한 전기 휠로더 운전자는 이렇게 말했죠. “겨울엔 전기 휠로더가 (한번 충전에) 1시간 30분 정도 운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급속충전기가 구석구석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반 충전기로) 4~5시간을 충전해야 합니다.”
앞서 노르웨이 정부는 2025년에 모든 승용차와 경형 밴 신차는 무공해 차량(전기차+수소차)만 허용하는 급진적 정책을 펼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오슬로시 계획은 훨씬 더 과격합니다. 2030년에 세계 최초로 배출가스가 없는 도시가 되겠다는 청사진인데요. 오슬로 시내에선 내연기관차가 아예 사라지고, 전기차 또는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오슬로시는 모든 시내버스를 연말까지 전기버스로 바꾸고, 전기 트램을 수십 대 구입하고, 새로운 지하철 노선을 건설 중인데요. ‘탄소 배출 제로 도시’라는 오래 전부터 나돌던 구호가 실제 현실이 되는 걸 몇 년 뒤 볼 수 있을까요. 노르웨이가 그동안 보여준 놀라운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보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물론 수많은 토론과 논쟁이 뒤따르겠지만요. 인구 550만의 노르웨이가 전기차 미래에 대한 ‘로드맵’이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By. 딥다이브
노르웨이와 전기차, 제가 좋아하는 두 주제의 만남이어서 신나게 파헤치기 시작했는데요. 막상 들여다보니 최근 수년간 노르웨이 전기차 정책이 워낙 빠르게 변화해와서, 생각보다 정리하기가 만만찮았습니다. 어느 나라도 가본 적 없는 전기차 시대를 열어가다 보니 다양한 시도와 함께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건데요. 언젠가는 딥다이브가 오슬로 현지 취재를 갈 날을 기약하며, 주요 내용을 정리하자면
-노르웨이가 놀라운 속도로 전기차의 나라로 변신 중입니다. 1분기 판매된 신차 중 84.5%가 전기차일 정도. 202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중단이라는 목표가 눈 앞에 보입니다.
-노르웨이는 자국 전기차 스타트업 ‘싱크’ 육성을 위해 일찌감치 전기차에 대한 면세 혜택을 부여했습니다. 비록 싱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전기차 인센티브는 남아서 노르웨이에 전기차 열풍을 불러왔습니다.
-전기차가 늘면서 오슬로 공기는 깨끗해졌지만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옵니다. 전기차 인센티브가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입니다.
-복잡하고 불편한 전기차 충전은 해결해야할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추우면 주행거리가 짧아지는 전기차 약점도 노르웨이엔 치명적이고요. 노르웨이는 전기차 미래를 열어줄 로드맵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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