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지난 5월 10일 오전 10시, 백만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규모의 스니커즈 커뮤니티 ‘나이키매니아’가 들썩였다. 이날 나이키가 멕시코 음료 브랜드 ‘하리토스(Jarritos)’와 함께 선보인 나이키 SB 덩크 로우의 추첨 때문. 커뮤니티에는 10시부터 ‘응완(응모 완료)’이라는 제목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일부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판매된 이 한정판은 발매 당일 리셀 플랫폼 크림에서 40만 원에 거래됐다. 발매 가격은 15만 9000원이라는 점에서 당첨만으로 2배 이상 남는 장사였다.
스니커즈 리셀 시장에서 이 정도 수익률은 크게 놀라운 수준도 아니다. 한정판 제작에 참여한 브랜드에 따라 리셀 가격은 더 오르기도 하기 때문. 지난 3월, 50만 원대 가격으로 출시된 나이키와 티파니의 컬래버레이션은 크림에서 3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 적이 있다. 지난해 발매된 루이비통과 나이키가 함께 만든 스니커즈는 크림에서 1800만 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발매 가격보다 약 5배 정도 높은 금액이다. 스니커즈 리셀 시장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이처럼 스니커즈가 당첨만 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건 스니커즈 수집광들 덕분이다. 그들에게 소장욕은 식욕만큼이나 강하다.
신발 한 켤레에 1000만 원 이상을 태운 적이 있는 고영대 씨(a.k.a. 와디)도 지금까지 수집한 스니커즈가 500켤레가 넘는 스니커즈 덕후다. 그는 유튜브 채널 ‘와디의 신발장’으로 유명한 콘텐츠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운동화를 신고 모으고 팔고 교환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는 그의 채널엔 약 8년 전부터 올리기 시작한 영상이 2000 개가량 된다. 구독자는 25만 명이 넘는다. 스니커즈가 주된 콘텐츠인 채널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다.
더불어 그는 ‘스니커 하우스’라는 네이버 카페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2019년 개설된 이 카페는 7만 명이 넘는 이들이 스니커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공간이다. 2020년부턴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설립한 MCN 기업 ‘오리지널 랩’의 대표로도 활동하며 패션 인플루언서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오리지널 랩은 지난해 이태원에 ‘애글릿 스토어’를 오픈했는데, 이곳은 와디가 엄선한 스니커즈를 모아둔 편집숍이다.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스니커즈에 미혹돼 산다.
브랜더쿠) 요즘 전시 준비로 바쁘다고 들었다.
Wadi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Sneakers Unboxed Seoul) 전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총괄 디렉터로 전시 기획부터 참여해왔다. 신발을 하나의 오브제로 조명하고 스니커즈 문화의 탄생과 번영을 짚어보는 전시다.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스니커즈 이벤트이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최초의 스트리트 패션 관련 전시다. 스니커즈 언박스드는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전시인데 네덜란드와 대만을 거쳐 한국까지 오게 됐다. 그래서 한국 전시만의 차별성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이키 에어 조던의 풀 컬렉션처럼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여러 스니커즈도 선보일 계획이다.
스니커즈는 본래 운동선수를 위해 만들어진 신발의 한 종류로 알고 있다. 언제부터 경기장 밖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을까?
콤플렉스(뉴욕에 기반한 유스 컬처 전문 매거진)는 현대적인 스니커즈가 1985년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나이키가 에어 조던 1(Air Jordan 1)을 선보이면서 스니커즈에 대한 개념이 재정립됐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스니커즈는 존재했고 특정 운동 선수의 이름 딴 라인도 있었지만, 에어 조던 1만큼 경기장 안팎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신발은 없었던 것 같다. 물 흐르듯 유려한 형태와 레드 컬러가 강조된 에어 조던 1엔 에어 쿠션 기술도 적용됐다. 무엇보다 에어 조던 1은 마이클 조던과 팬들을 연결하는 매개체였다. 에어 조던 1의 대박 이후 많은 브랜드들이 스포츠 스타 후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에 따라 미디어 노출도 많아지면서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불멸의 고전, 나이키 에어 조던1
콤플렉스는 1985년 출시된 나이키 에어 조던 1을 두고 ‘현대 스니커즈 문화의 개막’을 알린 모델로 소개한다. 에어 조던 1을 기점으로 운동화는 스포츠를 넘어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 운동선수가 신은 신발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인 적은 없었다. 나이키는 에어 조던 출시 후 두 달 만에 100만 켤레를 팔았다고 한다. 나이키가 아디다스와 같은 경쟁사를 제치고 업계 선두로 나설 수 있었던 건 에어 조던 1의 공이 크다. 에어 조던 1을 시작으로 에어 조던 37까지 이어진 에어 조던 시리즈는 현재까지 다양한 컬러로 출시되고 있다. 에어 조던 시리즈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신발 중 하나이며, 특히 에어 조던 1은 시간을 초월하는 클래식으로 평가받는다.
스니커즈 역사와 문화 속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 제품을 하나 꼽자면?
나이키 SB 덩크 로우 스테이플 NYC 피죤(Nike SB Dunk Low Staple NYC Pigeon)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2005년 나이키가 스케이트 브랜드 스테이플과 함께 선보인 한정판인데, 브랜드의 상징인 비둘기의 색조합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당시 150켤레만 발매됐다. 소량으로 발매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걸 사기 위해 가게 밖에 줄을 섰다. 그 과정에서 경찰들이 출동했고 구매자를 집까지 에스코트하기도 했다. 뉴욕포스트는 이러한 현상을 신문 1면에 실으며 두고 ‘스니커 폭동(Sneaker Riot)’이라고 표현했다. 나이키가 소량 발매로 마케팅 효과를 누린 첫 제품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싱가폴에서 이 스니커즈를 만든 제프 스테이플을 만났다. 그는 스니커 신에 남다른 족적을 남겨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정판을 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나이키도 언론에서 폭동으로 묘사된 것에 매우 언짢아해서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한다.
가격 상승만 봐도 기념비적인 제품이다. 당시 발매 가격은 200달러(약 26만 원)였지만, 현재는 크림에서 7000만 원에 거래된다.
스니커즈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마이클 조던 때문이었다. 중학교를 영국에서 다녔다. 남들보다 좀 빨리 신체적으로 성장했던 나는 당시 학교에서 키가 큰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축구보단 농구가 더 잘 맞았다. 농구를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서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웃음) 그 때 NBA도 즐겨 봤는데, 1990년대는 시카고 불스 왕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마이클 조던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NBA도 당대 최고의 스타를 활용한 마케팅에 적극적이었고 그건 나이키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마이클 조던은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 되었고 그가 신었던 신발들도 위시 리스트 최상단에 위치하게 됐다.
가장 아끼는 스니커즈는 에어 조던 시리즈인가?
어떻게 보면 맞고 또 한편으로 아니기도 하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과 나이키의 협업 제품인 에어 디올(Jordan 1 x Dior High)을 1100만 원 정도 주고 구매했다. 이걸 사기 위해 가지고 있던 신발 30켤레 정도는 팔았던 것 같다. 발매 가격이 300만 원이었으니 거의 4배 가까이 더 지불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것만 아끼는 건 아니다. 컬렉션 중엔 사인 슈들도 있다. NBA에서 활약했던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나 한국인 최초로 나이키와 협업한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이규범의 사인이 있는 신발들. 코비 브라이언트는 아니지만, 내가 직접 사인을 받은 것들도 있다. 그 사람과 나의 만남을 기념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가격을 떠나 이런 신발들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소장품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니커즈는?
어려운 질문이다. 가치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블루보틀 텀블러는 여기저기 상처가 많아 물건으로서 가치는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텀블러는 블루보틀이 각광받기 전 내가 직접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샀기 때문에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장품 중 가치 있는 신발은 에어 맥스 97 실버 불릿(Air Max 97 Silver Bullet)이다. 비싸게 거래되는 신발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모델이다. 처음으로 리셀로 구매한 신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런웨이부터 점령한 러닝화, 에어 맥스 97
나이키가 1997년 선보인 에어 맥스 97은 당대 최고 육상 선수로 평가받던 칼 루이스와 마이클 존슨이 모델이었던 기능성 운동화다. 바닥 전체에 깔린 에어 유닛은 당시 나이키의 최신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신발은 트랙이 아닌 런웨이에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패션 디자이너 리카리도 티시는 에어 맥스 97를 극찬했으며,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돌체앤가바나는 이 운동화를 패션쇼 무대에 올렸다. 스포츠 브랜드와 명품 패션 브랜드의 교류가 지금 같지 않던 1990년대엔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에어 맥스 97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유럽, 특히 이탈리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에어 맥스 97 디자인의 핵심은 위에서 봤을 때 반복되는 곡선인데, 이 운동화를 디자인한 크리스찬 트레서는 물방울이 떨어져 생기는 파동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무실 입구에 스니커즈가 전시되어 있던데.
일부만 꺼내 두었다. 나머지는 따로 보관 중이다. 이 자리를 빌려 밝히자면 나는 엄청난 소장품을 보유한 사람은 아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대단한 컬렉터들이 많다.
스니커즈 수집에도 급이 있다는 뜻인가?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컬렉션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컬렉션은 다른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의 공감과 환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한창 스니커즈를 모을 땐 수집의 기준은 오로지 나의 관심사였다. 나이키 에어 모어 업템포(Air More Uptempo)나 아디다스 이지 부스트(Yeezy Boost)처럼 좋아하는 선수 그리고 가수와 연관된 신발 혹은 나이키 에어맥스 97 실버 불렛과 같이 오랜 시간 가지고 싶었던 제품이 우선 수집 대상이었다. 개인적 만족은 컸지만 컬렉션은 깔끔하지 못했다. 공통점이 없는 것들을 무질서하게 펼쳐 놓은 것처럼.
나이키 에어 조던 시리즈를 번호별로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에어 조던 1만 하더라도 다양한 컬러 베리에이션이 있고 발매 가격에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에어 조던 2나 에어 조던 4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테마가 뚜렷하면서 수량도 많은 컬렉션을 보유한 이들에 비하면 나는 대단한 컬렉터가 아닐 수 있다. 물론 수집할 때 컬렉션의 주제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컬렉터의 만족이니까.
스타일 아이콘의 신발, 아디다스 이지 부스트
2000년 대 스타일 아이콘을 꼽는다면 카니예 웨스트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20년간 남성 솔로 가수로 가장 많은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한 그가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만큼 패션 신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신발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2009년 출시된 나이키 에어 이지 1(Air Yeezy 1)가 그중 하나다. 이 신발은 나이키가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과 협업한 첫 결과물이다.
2013년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 후, 카니예 웨스트는 아디다스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리고 그는 이지 부스트 750(Yeezy Boost 750)을 시작으로 이지 부스트 350(Yeezy Boost 350), 이지 500(Yeezy 500), 이지 450(Yeezy 450) 등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두드러지는 파격적인 제품들을 선보였다. 지난해 아디다스는 카니예 웨스트의 기행에 따른 논란으로 파트너십을 해지했다. 포브스는 이지 재고 처리와 관련해 아디다스의 손실이 6억 달러(약 7900억 원)에 이른다고 전한 바 있다.
다른 사람의 소장품을 소개하기도 하던데 기억에 남는 남의 신발장이 있다면?
모두 다 기억에 남는다. 다들 환자라고 생각될 정도로 스니커즈에 대한 애정이 컸다. 구독자들은 가수들의 신발장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나이키 에어 조던 1에 대한 찐 사랑을 입증했던 챈슬러, 엄청난 규모의 컬렉션을 보여주었던 션(가수 지누션의 멤버), 다신 나올 수 없는 에어 이지를 갖고 있던 개코(가수 다이나믹 듀오의 멤버)의 신발장 영상 조회 수가 높았다. 특히 개코의 신발장에 대한 반응이 좋았는데, 에어 이지의 가치를 모르고 있던 개코의 모습이나 방치되어 있던 좋은 신발들을 발견하는 장면들이 재미있게 그려진 것 같다.
언제부터 스니커즈를 모으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스니커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부터다. 문득 다시 살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나이키 SB 덩크 로우 슬램 시티(Nike SB Dunk Low Slam City)였던 것 같다. 이 제품은 영국 스케이트 멀티 브랜드숍 슬램시티 스케이트와 나이키가 함께 선보인 한정판이었다. 신다 헤지면 다시 사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만약 매물이 있다 하더라도 발매 가격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할 테니 자연스럽게 아끼게 됐다. 지금 사는 신발을 나중에 다시 살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스니커즈다.
평소 스니커즈 관리는 어떻게 하나?
철저하게 관리하진 않는다.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봤겠지만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 보관함에 넣어두고 변색을 막는 정도다. 2년 전 삼성전자에서 비스포크 슈드레서를 출시했을 때 며칠 사용해 본 경험이 있다. 신발 냄새를 없애고 젖은 신발을 빠르게 건조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신발 관리가 한층 편해지는 건 사실이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할 때 이 제품 개발 관련 담당자들과 회의했던 경험이 있어 실물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은 스니커즈를 평생 간직할 생각인가?
아니다.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어느 정도 처분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신발들은 간직하겠지만 일부는 필요하다면 기꺼이 시장에 내놓을 생각이다. 사고 싶어도 매물이 없어서 구하지 못했던 것들이나 눈에 띄는 신상이 나온다면 말이다.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 신발을 사기 위해 무리하진 않을 것이다.
주로 어디서 스니커즈를 구매하는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은 솔드아웃이나 크림과 같은 리셀 플랫폼이다. 무신사와 함께 일한다고 해서 솔드아웃만 이용하진 않는다. 가격 비교해서 더 저렴한 곳에서 구매한다. 지인들과 개인 거래도 종종 한다.
리셀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
거부감이 없다기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미 리셀과 관련된 여러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그리고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신발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선 효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3년 전쯤 에메랄드 메탈 포스(Air Force 1 Mid Emeral Metal)를 중고 거래로 산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사서 열심히 신었던 스니커즈다. 어린 시절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제품이라 꼭 다시 사고 싶었는데 매장에선 불가능했다. 더 이상 팔지 않으니까.
스니커즈 리셀로 수익을 본 경우가 있나?
리셀 거래로 20만 원 이상 수익을 본 적이 없다. 20만 원 이상의 가격 상승을 보여주는 신발은 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매물로 내놓는다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스니커즈는 있다. 바로 에어 조던 오프화이트 시카고(Air Jordan 1 x Off-White Chicago Retro High). 약 100만 원에 샀는데 시세는 8배 이상 오르기도 했다.
구매한 가격에 비해 시세가 크게 떨어진 스니커즈도 있는지.
에어 조던 1 트로피 룸(Air Jordan 1 x Trophy Room Retro High)이 그렇다. 에어 조던 1의 상징적인 컬러와 빈티지한 디자인에 반해 약 300만 원에 구매했는데, 현재 100만 원 중반에 거래되고 있다. 팔 생각으로 구매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가격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
스니커즈 리셀은 미래 먹거리? 지난해 한국을 찾은 스콧 커틀러 스탁엑스 대표는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규모는 2030년 300억 달러(약 39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스탁엑스는 서울을 포함한 전 세계 13곳에서 검수 센터를 운영하는 글로벌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이다. 또한 그는 특정 인기 제품의 수요는 공급을 상회하기 때문에 리셀 플랫폼은 다른 이커머스 분야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여러 기업들이 리셀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롯데백화점은 잠실 롯데월드몰에 중고 거래 플랫폼 크림의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했고, 현대백화점도 신촌점 유플렉스에 중고품 전용관을 리뉴얼 오픈했다. 올해 초 한화솔루션은 리셀 플랫폼(에어스택)을 론칭하기도 했다. 국내 리셀 시장은 오는 2025년까지 2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발매가보다 높은 리셀 가격을 두고 일각에선 스니커즈 시장의 과열이라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스니커즈는 출시 시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단언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시세가 작년에 비해 올해는 떨어진 것 같다. 그러나 스니커즈 시장이 과열 여부를 과연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발매 가격보다 높은 리셀 가격을 보고 과열된 시장이라고 표현할 순 있겠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시장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기보단 이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슈테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스니커즈를 투자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투자 가치가 있는 스니커즈가 있을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제품일수록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수요가 많다고 해서 꼭 투자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범고래로 유명한 나이키 덩크 로우(Dunk Low)의 특정 모델의 리셀 가격은 발매가의 3배 가까이 비싸게 형성되었지만 희소성이 없어지면서 가격도 덩달아 떨어졌다. 한정판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하락하기도 한다. 발매 당시 최소 천만 원부터 시작하던 에어 디올의 현재 시세는 9백만 원 선이다. 웃돈까지 지불하면서 구매한 스니커즈의 시세가 항상 상승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스니커즈는 패션의 일부고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극소량으로 판매된 일부 한정판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가격 변화 폭이 크다. 이런 것에 투자하면 스트레스가 크지 않을까? 그래도 투자 하고 싶다면 국내와 해외 사이트를 가리지 말고 응모부터 해라. 단,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추천할 만한 스니커즈 매장이 있다면?
규모로 본다면 카시나, 웍스아웃, 케이스스터디와 같은 셀렉숍. 일반 매장에서 접하기 힘든 제품들도 만날 수 있다. 카시나의 경우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숍으로는 처음으로 나이키와 협업한 곳이기도 하다. 몇 해 전 출시된 컬래버레이션 제품, 나이키 덩크 카시나가 공개되기 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제품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는 자리였는데, 관계자를 제외하곤 협업 제품을 본 첫 외부인이었다. 앞선 매장들보다 규모는 작지만 종로에 있는 로종도 신발 덕후라면 가볼만한 곳이다. 커피도 파는 스니커즈 카페다. 이태원에 있는 애글릿도 추천한다.(웃음)
와디의 신발장 채널엔 해외 매장을 방문하는 영상들도 많다. 해외에서 가 볼만한 매장을 추천해달라.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이트 클럽(Flight Club). 미국 스니커즈 리셀 스토어인데 매장은 뉴욕, LA, 마이애미에 있다. 플라이트 클럽 뉴욕 매장은 뉴욕에서 가장 큰 리셀 스토어로 기억한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신발들이 있다. 솔스테이지(SOLESTAGE)와 같은 밀도 있는 스니커즈 매장들이 많은 LA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해외에 가면 키스(KITH)는 꼭 들른다. 옷, 신발, 액세서리 등 여러 가지를 파는 편집숍인데 셀렉이 탁월하다. 뉴욕과 LA뿐만 아니라 파리와 도쿄에도 매장이 있다. 일정이 빠듯해도 꼭 방문하길 추천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빈티지를 찾기에는 해외가 좋을 순 있지만 가격 메리트가 있진 않다. 스탁엑스 등장 이후 가격 편차가 줄어들었고 이제는 한국보다 싼 곳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평균 시세, 특히 스탁엑스보다 싸게 파는 곳이 있다면 가품 의심부터 해보길 바란다.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 브랜드 별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을까?
특정 브랜드를 편애하지 않지만 나이키는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현대 스니커즈 문화의 시작을 알린 브랜드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나이키는 세대, 성별, 지위를 떠나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브랜드다. 마케팅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아디다스는 전통을 고수할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 삼바나 슈퍼스타처럼. 나이키나 아디다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푸마는 묵직한 한 방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다. 일상용은 아니지만 축구화 킹(King)이 그렇다. 뉴발란스는 편안함과 트렌드를 모두 챙긴다. 세대를 넘어 두루두루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993이 대표적이다. 아식스는 저렴하면서도 기능과 멋에 충실하다. 최근 패션 신에서 주목받는 힙한 신발 브랜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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