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3375명 신청… 작년의 46%
향후 연체 예상한 신속조정 폭증
최근 2년 은행권 지연배상금 460억
고신용자 배상 급증… 부실 심화 우려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인 A 씨(62)는 2016년 영어교재를 제작,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 거래처인 학원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경영 사정이 악화됐고 결국 2년 전 폐업했다. 이후 A 씨는 번역으로 생계를 이어오다 올해 2월 개인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사업 실패로 떠안은 1억7000만 원의 채무를 갚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와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한계 채무자’가 늘어나고 있다. 올 1분기(1∼3월)에 채무조정을 신청한 대출자만 전년도의 절반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신용자의 연체율이 높아지는 조짐도 보이고 있어 가계 부채에 적신호가 커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1일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1분기 채무조정 신청자 수는 총 6만3375명이었다. 지난해 전체 신청자(13만8344명)의 45.8%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석 달 만에 전년도의 절반에 육박하는 채무조정 신청이 접수된 것이다.
채무조정은 빚이 많아 정상적인 상환이 어려운 사람의 재기를 지원하는 제도로 연체 기간에 따라 신속채무조정,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 등으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신속채무조정을 신청한 인원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2020년 한 해 동안 신속채무조정 신청자는 7166명에 불과했지만 올 1분기 신청자만 1만4465명이었다. 신속채무조정은 정상적으로 채무를 갚고 있으나 연체가 우려되는 사람과 1개월 미만 단기 연체자의 채무 상환을 유예하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는 것이다. 윤 의원은 “상환 금액을 감당하지 못해 향후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대출자가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은행권에서도 대출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1∼2022년 고객이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의 연체로 5대 시중은행(신한, KB국민, 우리, 하나, NH농협)과 3대 인터넷은행(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에 낸 지연배상금은 460억 원이었다. 지연배상금은 대출자가 매달 납부해야 할 이자를 내지 못했을 때 은행이 연체 상황에 따라 고객에게 부과하는 배상금이다. 통상 은행은 대출 금리에 3%포인트를 더한 이자율과 15% 중에서 낮은 금리를 적용해 부과한다.
문제는 최근 고신용자들이 내는 신용대출 지연배상금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중저신용자 지연배상금이 2021년 57억5000만 원에서 지난해 61억7900만 원으로 약 7.5%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고신용자의 배상금 납부액은 13억7000만 원에서 18억9800만 원으로 약 38.5% 늘었다. 코로나19로 유동성이 풍부한 시기에 대출 규모를 늘렸던 고신용자들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은행 중에서는 인터넷은행의 지연배상금이 크게 늘었다. 3대 인터넷은행의 1개월 미만 지연배상금은 2021년 1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7억7000만 원으로 6배가량 증가했다. 최 의원은 “고신용자 및 인터넷은행의 단기 연체에 따른 지연배상금이 급등한 것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중저신용자뿐 아니라 고신용자들도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앞으로 경기가 보다 악화되면 대출 부실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금리로 대출받은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고 이에 대한 부실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올해 하반기까지는 부실이 계속해서 증가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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