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역사가 이제 50년이 됐습니다. 저희는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지만 과거를 정리하고 알면서 다시 미래를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방향성도 잡을 수 있습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열린 현대차 리유니온 행사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49년만에 복원된 포니 쿠페 콘셉트 모델을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기차 열풍이 부는 글로벌 시장에서 ‘과거 유산(헤리티지)’을 반영한 새로운 미래 모빌리티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공개된 포니 쿠페는 현대차가 1975년 출시한 첫 독자 모델이자,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로 기록된 포니1보다 앞서 개발된 차종이다. 정주영 선대 회장 시절인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데뷔해 이른바 ‘꽁지 빠진 닭’ 모양의 디자인으로 주목 받았다.
현대차에 따르면 당시 모터쇼에는 16개국 65개 제조사가 245대 차량을 출품했다. 이 중 포니 쿠페는 1차 석유 파동에 따른 소형 선호 트렌드와 한국 최초의 양산형 모델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현지 언론인 라스탐파(현 스탐파)는 포니 쿠페에 대해 “한국이 자동차 공업국 대열에 끼어들었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니 쿠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79년 2차 석유 파동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양산까지 이르지 못하고, 호우로 도면과 차량마저 유실됐다. 그렇게 ‘비운의 차’가 됐던 포니 쿠페는 현대차그룹을 만든 과거를 되새겨야 한다는 정의선 회장 뜻에 따라 반세기 만에 재탄생했다.
정 회장은 행사에서 “우리 내부에서도 노력했었다는 좋은 기억들이 필요한 것 같다”며 “정주영 선대 회장님, 정세영 회장님, 정몽구 명예회장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지금의 현대차그룹이 있듯 과거의 좋은 기억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새롭게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의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적용된 첫 전기차 아이오닉5는 포니 쿠페 디자인을 기초로 했고, 고성능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랩 ‘N비전 74’도 포니 쿠페 콘셉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지난해에는 포니2 픽업트럭을 고성능차로 개조해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현대차는 영화 제작 단계부터 넷플릭스와 협업해 그랜저, 쏘나타, 스텔라, 코티나 등 80년대를 풍미했던 차량들을 등장시키고, 현대차 구 원효료 서비스센터 부지를 촬영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다.
6년 만에 선보인 7세대 그랜저는 일명 ‘각 그랜저’로 불린 1세대 디자인을 계승해 새로운 디자인 정체성을 만들었다. 여기에 올 3분기 출시를 앞둔 중형 SUV 싼타페 5세대는 과거 갤로퍼의 각진 디자인 요소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지난 1월 열린 그룹 신년회에서 과거 유산을 부활시키는 프로젝트 계획에 “헤리티지는 저희 활동의 일환”이라며 “과거를 통해 영감을 얻어 미래에 대한 도전과 변화를 어떻게 도모할지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룹의 정통성과 과거 유산 구축이 브랜드 가치 제고로 이어지는 만큼 다양한 헤리지티지 활동을 통해 영감을 얻고 미래 모빌리티 산업 전환에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포드, 제너럴모터스의 100년 역사는 말 그대로 강력한 힘”이라며 “글로벌 완성차업체로서 현대차그룹 또한 그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한 준비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유산을 복원하는 헤리티지 전략은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포드는 1996년 단종된 브롱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뉴 포드 브롱코’를 지난해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1세대 브롱코의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하되 첨단 운전 보조·안전 장치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폭스바겐은 1950년대 판매된 소형 버스 마이크로버스 T1를 오마주한 전기 미니밴 ID.버즈를 선보였다. GM은 2010년 단종된 내연기관차 하머의 전기차 버전 하머를, 포르쉐는 브랜드 최초의 스포츠카 ‘포르쉐 345’를 오마주한 콘셉트카 ‘비전 357’를 지난 3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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