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위기를 거치면서 글로벌 경제에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각종 정책들의 수혜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 결과 경제활동을 둘러싼 높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짧은 침체 이후 빠른 회복을 나타냈고, 각종 경제지표들은 기존 추세를 뛰어넘는 수준까지 반등했다. 주식을 비롯한 주요 자산가격 역시 “거의 모든 것의 랠리”라는 대세에 동참했다.
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진정되면서 역설적으로 경제와 자산시장은 빠른 변화에 직면했다. 공격적인 돈 풀기와 정책적인 지원들이 정상적인 과정으로 되돌아가며 불확실성은 낮아졌으나 오히려 시장은 더 큰 변동성과 하강 압력에 직면했다. 모든 것의 랠리가 이제 반대로 “거의 모든 것의 조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2023년에 들어서면서 금융시장에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 이전의 시장이 철저히 매크로 변수에 따라 다 같이 영향을 받는 모습이었다면, 이제 조금씩 산업이나 기업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2023년 하반기에는 이러한 모습이 좀 더 뚜렷하게 진행되면서 시장의 성격 변화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팬데믹 이후 경제 및 사회 구조의 변화, 국가별-지역별 차별화 역시 과거와 같은 매크로 변수를 통한 자산시장 전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울러 산업별 디지털의 집약 수준 등에 따라 생산성의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변화를 능동적으로 반영한 국가 혹은 산업, 기업 간에 ‘옥석 가리기’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 및 중장기 전망에 있어서 과거와 같은 매크로 혹은 톱다운(top-down) 접근에 비해 보텀업(bottom-up) 분석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주식시장 역시 매크로 변수의 영향력이 제한되는 가운데 상승폭과 하락폭이 모두 한정된 박스권 등락을 예상한다. 하반기 코스피 지수의 범위를 2,380∼2,780으로 제시하는 등 현 지수대와 비교 시 큰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경기 회복과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3분기까지는 차별적 반등을 예상하나, 연말로 갈수록 선진국발(發) 경기 둔화 우려로 주식시장 상단이 제한되는 박스권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2023년 하반기에는 철저히 펀더멘털과 이익 체력이 견고한 산업과 장기적으로 성장이 담보된 업종 및 종목으로 투자를 압축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산업으로 당사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그리고 2차전지 산업을 꼽는다.
반도체는 2023년 비트그로스(bit Growth·비트당 출하량 증가율)는 제한적이나 상반기 중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사이클상 저점을 확인하고,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자동차는 높아진 제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MS) 상승과 전기차·SUV 판매량 증가에 따른 믹스 개선 및 평균 판매가(ASP) 상승이 실적 개선을 이끌 것으로 판단한다. 조선은 3년 이상의 수주잔액을 바탕으로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가 예상된다. 2023년 하반기부터 고선가 선박 매출 인식 확대에 따른 실적 턴어라운드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차전지는 2023년 상반기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이며 밸류에이션 부담이 높아진 기업들이 상존하여 투자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일부 종목은 투자 기회가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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