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 사업장 위험요인 꼼꼼히 살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3일 03시 00분


中企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 현장… 내년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50인 미만 제조-건설업 집중 점검… 기업 스스로 안전 문제 개선 유도
올해부터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 미인증 위험기계 교체 사업 지속

10일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오른쪽)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인쇄업체 작업실에서 종이 재단기에 종이를 넣는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이 작업을 시연하는 근로자는 2년 전 종이 재단 작업 중 부속품에 왼쪽 엄지손가락이 끼어 창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10일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오른쪽)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인쇄업체 작업실에서 종이 재단기에 종이를 넣는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이 작업을 시연하는 근로자는 2년 전 종이 재단 작업 중 부속품에 왼쪽 엄지손가락이 끼어 창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손가락이 끼었을 당시 어떻게 작업했는지 볼 수 있을까요?”

10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직원 수 50인 미만의 한 중소 인쇄업체 작업실.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들이 30대 남성 근로자에게 질문했다. 이 근로자는 2년 전 이 업체에서 일하다 종이를 자르는 재단기 부속품에 왼쪽 엄지손가락이 끼어 깊게 베이는 창상(創傷) 사고를 당했다. 김종호 산재예방지도과장은 “업체 방문 전 이런 산업재해 기록을 확인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이후 그는 업체 임원과 안전관리 담당자에게 “사고 이후 작업을 어떻게 개선했느냐”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사이 또 다른 감독관은 재단기에 붙은 안전검사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2년에 한 번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증명서에 적힌 검사 시기는 12년 전이었다.

“이 기계의 문제가 뭘까요? 안전점검 2년에 한 번씩 꼭 받으셔야 해요.” “전기설비 앞에 종이 더미가 쌓여 있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김 과장과 감독관들은 작업장 구석구석 위험 요인을 짚어주며 인쇄업체 임원 및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 산재 78.3%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정부는 올해부터 산업안전보건감독 시 단순히 사업장을 적발, 규제하는 게 아니라 사업장 전반의 위험성을 평가해 기업이 문제를 인지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스스로 구조적 문제를 고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일명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이다.

특히 올해는 중소 규모 제조·건설업 점검에 집중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128명으로 전년 동기 147명 대비 12.9% 줄었다. 하지만 50인 미만 작은 기업에서의 사망자 수는 79명으로 전년과 같았다.


최근 4년간 산업재해 승인 통계를 살펴봐도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4410명 중 3496명이 50인 미만 중소 근로자였다. 전체 사망자의 79.3%다. 사망자를 포함한 산업재해자 수 역시 전체 48만6754명 중 38만887명(78.3%)이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이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과 건설업 종사자가 24만8519명(51.1%)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이다.

정부가 올해 예방체계 구축에 특별히 힘쓰는 이유는 당장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면 50인 미만 기업에서 관련 조사와 처벌이 줄을 이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뿐 아니라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도 부담이 큰 상황이다.

기업들은 법 적용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영세한 업체들의 경우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다. 법이 요구하는 안전관리 조건을 채우기 어렵다. 10일 근로감독 현장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이어졌다. 인쇄업체 임원 A 씨는 “끼임 사고를 막기 위해 인쇄 기계는 롤 방식이 아닌 평판 방식으로 바꿨고, 다른 기계도 밖으로 노출된 채 돌아가는 벨트나 롤러가 없는 내장형 기계를 쓰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인력이 부족하고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한 사람이 이 일 저 일 하느라 뛰어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사고가 나게 마련”이라고 털어놨다.

이런 중소 사업장들의 상황을 감안할 때 단속을 강화해봐야 처벌만 늘 뿐 실제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는 큰 효력이 없을 거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근로감독이 실제 근로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처벌에 앞서 이런 작은 기업들의 안전 역량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현장에 고령·외국인 인력도 늘면서 사고 발생 가능성도 갈수록 커질 전망이라 정부는 단속의 기조를 규제와 처벌에서 자율점검과 예방으로 점차 전환해 나갈 계획이다.

● 노사가 함께 위험요인 발굴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핵심은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위험 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10일 감독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감독관들은 곧장 현장 실사에 나서는 게 아니라 그전에 약 1시간을 할애해 회사 임원진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산업재해 현황과 주요 발생 요인, 예방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업장의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질문했다. “근로자들이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허리를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게차에 사람을 인지하는 센서를 부착해야 하지 않을까” 등 마치 기업 내부의 회의 같은 모습이었다. 현장 감독에 나가서도 감독관과 기업 관계자 간 질문과 대화가 이어졌다.

고용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과 더불어 안전관리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에 취약하지만 안전 설비나 인력 도입에 어려움이 있는 중소 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 안전장비를 지원하는 사업도 올해 시작했다. 스마트 안전장비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센서 기술 등을 활용한 안전장비다. 50인 미만 중소사업장 등이 이런 장비를 도입한 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 신청을 하면 소요 비용의 80%, 최대 30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202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안전투자 혁신사업’도 계속해 올해 총 3200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안전투자 혁신사업이란 중소 사업장을 대상으로 미인증 이동식 크레인 등 위험 기계를 교체하고 노후·위험공정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소요 비용의 50%, 최대 7000만 원(위험 기계)에서 1억 원(위험공정)까지 지원한다.

#자기규율 예방체계#중대재해처벌법#처벌보다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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