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300원대 환율이 이어지는데요. 유독 한국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 또 그렇네요?
“작년엔 일본 엔화가 가장 약했고, 신흥국 중에선 우리나라 원화가 유독 약했는데요. 올해 들어서는 (통화가치 약세 순위가)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다음이 한국입니다. 유독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많이 약하죠.”
-작년부터 이어지는 무역수지 적자 탓일까요.
“일차적이고 표면적인 이유는 무역수지 적자 개선이 너무 안 된다는 거죠. 왜냐하면 무역수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게 중국인데, 중국 경기에 대한 눈높이가 내려온 상황이거든요. 저희 리서치센터도 10월 정도 돼야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할 걸로 보고 있어요.
사실 올해 1월 무역수지 적자가 역대 최대였는데도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말 1440원에서 올 2월 1220원까지 갔습니다. 그 이유를 따져보자면 작년 12월 7일부터 중국이 리오프닝을 세게 하니까 갑자기 원·달러 환율이 1220원으로 간 겁니다. 중국 리오프닝 효과로 무역수지가 빨리 개선될 거라는 기대가 환율을 움직인 거죠.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까 ‘별거 없는 리오프닝’이다 보니 눈높이가 다시 올라갔고요. 그 결과 환율이 1300원대에 안착하는 그림입니다.” -실제로 무역수지가 개선되진 않더라도 개선될 거란 기대감만 있어도 환율은 민감하게 움직이는군요. 또 기대감이 꺾이면 그 역시 바로 반영되고요. 그런데 중국으로의 수출이 기대만큼 좋지 않은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미국이나 대만도 중국 수출 많이 하는데, 왜 유독 원화만 더 약세일까요.
“사실 올해 실리콘밸리뱅크 파산 이후 달러화가 약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초 이후 각국 통화 가치 변동률을 순위를 매기면 멕시코, 브라질, 인도네시아가 1, 2, 3등이에요. 미국 달러화는 가운데에 있고요. 그리고 꼴등이 누군지 보면 아까 말씀드린 러시아, 남아공, 한국이고요.
사실 작년에는 ‘킹 달러’로 다 설명됐죠. ‘달러가 강해서 원화 포함 다 약하다’라는 게 우리가 알고 있던 컨셉트였는데요. 그런데 왜 지금은 달러가 약한데 왜 어떤 신흥국은 통화가치가 강하고, 어떤 신흥국은 약할까요. 제가 보기엔 ‘각자도생’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멕시코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인접국가로 생산기지 이전)’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이고요. 브라질은 코로나 이후 재정수지가 가장 좋아진 국가입니다. 인도네시아는 10년 만에 경상수지 흑자국이 됐죠.
꼴찌그룹도 각자 이유가 다 있어요. 러시아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소화하고 있고요. 남아공은 ‘너네 러시아에 무기 공급했지’라는 의혹을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데다 성장 전망도 약하고요. 그다음이 한국인데요.
한국의 경우엔 미·중 패권 싸움으로 위안화가 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원화가 강세로 가는 게 많이 막혀 있습니다. 한국과 함께 ‘위안화 블록(Yuan Bloc, 위안화 가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통화)’을 형성하는 국가들을 보면, 중국이나 대만은 ‘관리변동 환율제도’라서 환율의 위, 아래가 막혀있어요. 우리처럼 (환율 상, 하단이) 다 열려있지 않고요. 그래서 원화가 (중국이나 대만보다) 유독 하루에도 변동폭이 엄청나죠.”
달러,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다
-최근 보고서에서 좀 길게 보면 원화가 약세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있다고 지적해주셨는데요. 일단 글로벌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이 2017년을 정점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요?
“2016~2017년 한국 수출이 정말 좋았고 그때 원화도 강했는데요. 그때가 글로벌 수출 안에서 우리나라 수출이 차지하는 금액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입니다. 그런데 이게 떨어지고 있죠. 이유는 생산기지가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그래서 글로벌 수출시장에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올라오고 한국은 떨어진 거죠.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나서 봤더니 이번엔 수출시장 비중에서 일본과 유럽 같은 자원 수입국이 떨어져요. 그리고 신흥국에선 패권 싸움 중인 러시아와 중국이 떨어지고요. (자원 수입국이면서 위안화 블록인) 한국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런 걸 볼 때 수출 점유율 하락은 좀 긴 그림일 수 있겠다고 보고요. 설사 한국의 수출이 다시 늘어나더라도 2016~2017년 같은 영광을 되찾긴 어려울 것 같아요.” -국내 개인과 기관의 해외투자가 많이 늘어난 것도 원화 약세를 초래하는 요인이라고요?
“제 주변에도 해외주식 투자하는 친구들 너무 많고, 국민연금의 중장기 기금운용계획을 봐도 해외주식과 해외 채권을 계속 늘리는 방향이거든요. 계속해서 달러가 필요하단 뜻이죠. 정해진 외환시장에서 계속 환전하려는 수요가 있는 거고 달러가 귀해지는 거니까, 다시 말하자면 원화가 약해집니다.
이제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한 것보다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더 많아요. 이걸 GDP(국내총생산) 대비 순대외자산(들어온 것-나간 것) 규모로 말씀드리자면, 2014년엔 GDP의 6%였는데 2021년엔 GDP의 40% 가까이로 올라왔어요. 우리가 바깥에 들고 있는 금융자산이 엄청나게 많은 거죠.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이는데요.”
-우리나라가 되게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군요.
“이제 IMF 외환위기 같은 일이 벌어질 일은 없죠. 만약 국내 외환시장에 돈이 없으면 ‘다 들어와’라고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외환시장에선 달러가 그만큼 필요한 겁니다. 해외주식 테슬라 1주를 사려고 해도 환전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환율의 밴드(움직이는 범위)는 2014년 이후로 우상향해왔습니다.”
-그런데 해외투자가 원화 약세를 초래하는 것도 있지만, 거꾸로 원화가 더 약세로 갈 것 같으니까 달러 자산에 투자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문제이긴 한데요. 개인 투자자만 보면 ‘우리나라 주식 먹을 거 없네’라며 해외 주식에 투자하려고 환전하게 되는 게 맞을 수 있는데요. 기업과 연기금, 보험사로 보면 해외투자로 가는 게 방향성입니다. 저성장인 한국보다 좀 더 먹을 게 많은 국가로 투자처를 다변화하는 거죠. 국내 자산시장이 좋아질 때 개인들이야 해외에 있는 돈을 다 회수해서 우리나라에 다시 투자할 수도 있겠지만, 연기금이나 보험사는 계속 나갈 겁니다.
수출이 줄어드니까 달러 공급은 줄고, 해외투자 느니까 달러 수요는 늘고. 그로 생긴 결과를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2005년의 환율 1300원과 지금의 1300원의 느낌이 너무 다른 겁니다.”
달러를 빌려올 일도 없네
-달러 공급과 수요 모두 다 원화 약세를 가리키고 있으니 환율의 범위가 과거보다 우상향 되는 게 맞겠군요. 보고서를 보니 예전처럼 단기외채로 달러를 꿔오기도 어렵다고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4~2007년 경상수지 성장이 둔화했는데도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로 내려갔어요. 그래서 ‘경상 수급이 꼭 환율을 결정하진 않네’라고 했는데요. 그 부족한 달러를 어디서 받아와서 갑자기 원화가 강해졌을까요. 그게 은행권 단기외채였습니다.
당시 단기외채 차입금이 급증했는데요. 내용을 봤더니 조선사와 자산운용사들이 환율 위험(자기들이 해외에서 벌어온 달러화 가치가 원화강세로 떨어질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선물환 매도를 걸었고, 외국은행은 포지션을 0으로 맞추기 위해 달러를 차입해왔습니다. 그게 단기외채 증가로 잡혔는데요.
지금은 이런 경로가 줄었어요. 예전에 기업들이 환헤지를 열심히 했던 게 원화가 강해질까봐 그런 거였는데요. 지금은 원화가 강세로 갈 거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선사들도 예전엔 달러로 받은 걸 얼른 환헤지했지만, 지금은 환헤지 없이 달러로 계속 들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환경 자체가 바뀌면서 단기외채 차입금 자체가 많이 줄었어요.
즉, 과거엔 경상수지가 악화돼서 달러가 귀해져도 열심히 단기외채로 달러를 빌려와서 이를 메웠기 때문에 원화가 약세로 가지 않을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이게 없다 보니까 (경상수지가 악화되면) 오롯이 원화가 약세를 맞는 거죠. 갑자기 변동성이 커지고요.”
-요즘 ‘왜 이렇게 환율이 막 널을 뛰나’라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그런 게 맞군요.
“과거 환율 900원대 시절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이 그거(단기외채 차입금)더라고요.”
환율 1200원대로 돌아가긴 하지만
-이제 환율 900원대까지는 바랄 수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1300원대는 너무 심한 원화 약세가 아닌가 싶은데요. 하반기엔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니까 단기적으로는 나아지겠죠?
“네. 저도 하반기엔 환율이 1200원대로 내려올 걸로 전망합니다. 이제 미국 연준도 긴축을 끝냈고, 그럼 글로벌 유동성에서 달러 조달 환경이 개선된 겁니다. 또 한국 수출은 더디지만 좋아지는 방향성이고요. 중국 경기가 아무리 회복이 더디다고 해도 조금은 개선될 테니까요. 그래서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 초중반까지 내려올 수도 있다고 보고요. 이번에 발표한 하반기 전망에서 하단은 1230원, 상단은 상징적으로 1390원으로 잡았습니다.
올해 4분기에 환율이 1200원대 초중반이라면, 충분히 달러를 괜찮게 매수하실 수 있는 레벨이라고 저는 봅니다. 내년도 환율 레벨을 생각해보면 그냥 1300원대에 있을 것 같아요. 공식 전망은 아니지만 내년 상반기 평균이 1330원 정도로 봐야 할 겁니다.”
-4분기에 좀 잘 풀려서 환율이 1200원대 초중반으로 내려간다고 하셨는데, 내년엔 왜 다시 올라가는 건가요?
“‘달러 약세-원화 강세’가 추세적으로 가려면 미국경제가 괜찮으면서도 미국 이외 지역이 좀 더 좋아야 합니다. 환율은 상대적인 거니까요. 2016년과 2017년이 그랬고요. 코로나 직후 신흥국 수출이 잘 될 때도 그랬죠.
그런데 올해 좋은 건 중국인데, 그건 반짝입니다. 지난해 3% 성장했던 중국이 올해 5.5% 성장하겠지만, 그렇다고 내년에 중국이 7% 성장하느냐. 그건 아니고 다시 내려올 거거든요. 그럼 성장률 모멘텀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물론 지금 미국에서 경기침체 얘기는 나오지만 누가 그렇게 미국을 안 좋게 볼까요? 사실 고용, 물가, 임금 다 괜찮죠.
연준조차 ‘완만한 경기침체’ 얘기를 합니다. 경기침체의 폭이 중요한데, 코로나 또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연준이 금리를 미친 듯이 낮춰줄까요? 만약 그렇게 하면 달러 약세로 갈 텐데요. 지금은 물가가 여전히 높죠.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도 연준이 미친 듯이 금리를 인하할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미국 이외 지역의 경기는 계속 소강상태일 것 같고요. 그럼 ‘역시 미국 말고는 없네’라며 상대적으로 미국 경기가 다시 한번 올라가는 그림이 될 겁니다.”
-그래서 4분기에 달러가 1200원 초중반대일 때 사는 게 낫다고 보신 거군요. 내년에 다시 그 수준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코로나 직후에 미국이 돈을 엄청나게 풀었을 때 환율이 1080원이었거든요. 내년이나 내후년에 우리나라 경제가 좋아진다고 해도 과연 다시 1080원을 볼 수 있을까요.”
-환율을 분석하니까 당연히 여러 나라를 같이 보실 텐데요. 올해 들어서 멕시코, 브라질, 인도네시아 통화가 가장 강세라고 얘기하셨죠. 하반기와 내년을 생각하면 특히 어느 나라 통화가 강할 걸로 보시나요.
“브라질을 좀 좋게 보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연내 금리인하 얘기가 나오고는 있는데, 아마 브라질은 주요국 중 가장 빨리 올해 하반기에 금리 인하에 나설 겁니다. 브라질은 매우 빨리 금리인상을 시작해서 이미 물가가 잡혔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때 모든 국가에서 다 문제가 됐던 게 재정인데요. 신흥국 중에서는 재정수치가 가장 빠르게 올라오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제 브라질 쪽으로 돈이 많이 몰려요.”
-잊고 있었던 브라질 채권 투자에도 다시 한번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겠네요.
“브라질도 중국이 최대 수출국, 한국도 중국이 최대 수출국이니까 예전 2000년대 중후반엔 중국이 한번 승기를 잡으면 모든 신흥국이 다 같이 좋았는데요. 지금은 중국의 성장률이 그때의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거든요(2007년 14.2%→2022년 3.0%). 그럼 이머징은 이제 각자도생해야죠.” By.딥다이브
투자하는 사람도, 해외여행 가는 사람도 다들 ‘환율 언제까지 이렇게 높을까’를 궁금해합니다. 환율은 여러 국가 통화가치를 비교해 매긴 상대적인 가격이라 따져볼 변수가 참 많습니다. 그만큼 전망도 쉽지 않죠. 대신 환율을 공부하다 보면 시야가 한층 넓어질 수 있는데요. 인터뷰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중국 리오프닝 기대로 올해 초 반짝 강세였던 원화가 다시 약세를 띠고 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위안화 약세의 영향입니다. -중장기적으로도 원화는 약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수출 점유율이 줄면서 달러 공급은 감소하는데, 내국인 해외투자가 늘면서 달러 수요는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기업의 환헤지 수요도 많지 않기 때문에 단기외채로 달러를 꿔오는 것도 줄었습니다. -일단 올 하반기엔 다시 1200원대 초중반의 환율로 돌아오긴 할 겁니다. 하지만 내년엔 다시 ‘그래도 믿을 건 미국 경제뿐’이란 시각이 커지면서 달러 강세-원화 약세가 재연될 전망입니다. 달러에 투자한다면 4분기를 노릴 만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