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말 것. 베스트셀러『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의 저자이자 컨설팅 에이전시 '브랜드보이'를 운영하는 안성은 대표가 브랜드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하늘 아래 완전한 차별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
'모방하는 것이 정답이냐'고 반문하는 창업가들에게 안 대표는 믹스(Mix)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대학 시절 300여 개의 단어를 조합해 250건의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나영석 PD가 시골 생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과 삼시세끼를 연출했듯 이질적인 요소들을 섞으라고 말이다.
안 대표에 따르면 믹스는 가장 효과적인 차별화 전략으로 귀결된다. 경쟁사보다 '나은'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을 기획할 수 있기 때문. 실제로 그의 신간 도서『믹스 MIX』에는 차별화 포인트로 이어질 수 있는 섞기의 정수가 담겨있다. 안 대표에게 브랜딩에 필요한 섞기의 비법을 물었다.
브랜더쿠) 신생 브랜드 즉, 다윗의 입장이라면 골리앗*과 반대되는 특성을 섞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브랜드들과 다른 방향을 걷는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무의미한 차별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Check Point - 골리앗과 다윗의 법칙? : 자신만의 무기인 물맷돌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처럼 시장의 거대 브랜드들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전략
안성은 대표) 골리앗을 명확히 정의하면 된다. 여기서 골리앗이란 업계 1위 브랜드 또는 해당 업체로부터 충족되지 않은 고객 니즈가 될 수 있다. 대표 사례를 꼽자면 '애플'이 있다. 창업 초반 애플은 혁신하지 않던 경쟁사들의 안일함을 꼬집었다. 예컨대 슈퍼컴퓨터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IBM을 개인 컴퓨터 시대의 도래를 저지하는 세력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 다음 공격 대상은 마이크로소프트 PC였다. 'Mac'이란 이름의 트렌디한 청년이 'PC'라고 불리는 아저씨를 조롱하는 광고였는데, 당시 소프트웨어 시장의 강자임에도 디자인에서 뒤처지는 마이크로소프트 PC의 단점을 비꼰 내용이다.
국내 사례로는 '토스'가 적절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 서비스의 실태를 골리앗으로 정의한 후, 정체됐던 금융앱 시장에서 가장 편리함 송금 서비스를 구현하겠다는 사명감을 알렸으니 말이다. 애플과 토스처럼 맞서 싸우려는 골리앗이 분명하고, 소비자들도 그 싸움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이에 적절한 무기를 내세운다면 무의미한 차별화에 빠지진 않을거다.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알리는 것도 브랜딩 전략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토스가 해마다 사명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이 쉬워진다'부터 '금융부터 바꾼다, 모든 것을 바꿀 때까지' 등 고리타분했던 업계를 변화시키겠다는 프레임을 유지한 것. 사명감에 어울리는 편리한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광고 효과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시장을 양분하는 '이분법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저쪽 편에서 우리의 문제를 방치하잖아, 그 문제 해결에 앞장설 건데 같이 할 사람?"이라고 설득하는 방식이다. 시장 점유율 1, 2위의 강자들 사이에서 신생 브랜드란 약점을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제격이다.
믹스 전략이 수익 모델을 계획할 때도 효과적일지?
제대로 믹스했다면 수익 모델까지 연결될 수 있다. 믹스는 결국 차별화를 위한 아이디어로서, 매력적인 요소들을 섞은 후 꾸준히 그에 상응하는 활동을 전개하면 자사만의 '다움'이 갖춰진다. 이 과정에서 팬이 모일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브랜드마다 수익 모델은 상이하겠지만 일단 팬덤이 쌓이면 폭넓게 수익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타일러 브륄레가 창업한 매거진 '모노클'만 봐도 그렇다. 모노클의 창립 시기인 2007년은 아이폰의 등장으로 인해 콘텐츠 소비 방식이 모바일로 재편됐던 때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일러 브륄레는 완성도 높은 종이 잡지에 승부를 건다. 매체의 종류보단 콘텐츠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어느 날 공항에서 비즈니스 이슈를 다루는 '이코노미스트'와 패션 잡지 'GQ'를 동시에 읽는 사람을 목격한 그는 두 잡지를 섞은 콘셉트를 구상한다. 비즈니스·정치·문화 이슈를 감각적인 템플릿에 구성하는 모노클의 정체성이 완성된 순간이다. 표지가 패셔너블한데다 비즈니스 피플이 읽어야 하는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다 보니 모노클을 읽으면 트렌디한 직장인처럼 인식됐다.
전 세계 모노클의 독자 수가 약 10만 명, 그중 대부분이 상위 1%의 부유층이다. 구찌, 프라다, 롤렉스 같은 럭셔리 브랜드가 모노클에 광고하는 현상이 이해가 된다. 평판이 좋지 않은 브랜드의 경우 막대한 비용을 제시한다 해도 모노클은 기재하지 않는다.
믹스로 인한 차별화를 인지시키는 기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간의 성공을 바라선 안될 것 같다.
브랜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을 경계해야 한다. 급격히 성장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 예기치 못하게 주목받았을 때 매출을 늘리는 데 급급해서 망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 유혹을 견뎌야 성장할 수 있다.
2013년 '젠틀몬스터'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PPL로 화제가 된 당시, 전지현이 픽한 선글라스로 입소문 나며 중국 관광객들의 구매 문의가 쇄도했지만 젠틀몬스터는 매장 수를 늘리지 않고 기다렸다. 오히려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기획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심지어 매장 1층에선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자사의 디자인 철학과 어울리는 오브제들을 전시했다. 안경을 판매하기보단 디자인 철학을 알리겠다는 젠틀몬스터의 자세가 투영된 부분이다. 이러한 고집스러움 덕분에 국내 아이웨어 시장에서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철저히 차별화 포인트를 설계한다 해도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결승점에 도달하려면 멀리 보고 꾸준히 달려야 한다.
요즘엔 신생 브랜드 사이에서도 컬래버레이션이 대세다. 이색적인 조합이 기본값이 된 시대에 눈길을 끄는 컬래버레이션을 기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 브랜드의 자기다움이 뚜렷해야 한다. 개성 있는 자들의 만남은 무조건 새로울 수밖에 없는데, 최근 화제가 된 나이키와 티파니의 에어포스 1 로우 '레전더리 페어' 컬렉션이 한 예다. 나이키는 스우시 로고, 티파니는 민트 컬러 등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상징적인 이미지도 갖췄기에 이들의 만남이 바이럴되는 건 당연했다.
반면에 차별화 요소가 미흡한 주자끼리의 만남은 전혀 새롭지가 않다. 우리 브랜드의 유니크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파격적인 결과물만 고집하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다. 운 좋게 유명 브랜드와 협업한다 해도 상대편에게 잠식당할 가능성이 높다. 분명 공동 기획인데 한 개 브랜드의 상품으로만 인식되는 셈이다.
일정 기간 동안 소비자가 식상해하지 않도록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주효하다. 대표 사례가 '곰표'다. 개인적으로 곰표가 처음 패딩을 출시했을 때 '60년 이상 된 브랜드가 단기간의 화제성을 노린다'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곰표의 레트로한 순백 이미지를 차용해 3년 동안 핸드크림, 화장품 쿠션, 주방세제 등 20개가 넘는 상품을 출시하며 올드함을 쇄신했다. 심지어 곰표 밀맥주는 CU에서 카스와 하이네켄을 제치고 전체 맥주 판매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확고한 정체성을 다양하고 새롭게 가공하는 것. 곰표 컬래버레이션이 성공한 비결이다.
소비자에게 즐거운 놀이공원을 선물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어떤 의미인가?
"이제 브랜드는 놀이공원이다. 상품은 놀다가 사 가는 기념품이다." 미국의 유명 광고 전문가 '제프 굿비*'의 명언으로, 요즘 시대에는 제품부터 들이밀기보단 재밌어할 만한 놀이공원을 만들고 그 안에 고객을 유입시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창 즐거워할 때 제품을 슬쩍 어필하면 구매 가능성이 높아지는 원리다.
*제프 굿비: 세계 1위 광고 에이전시 '옴니컴 그룹' 계열인 '굿비, 실버스타인&파트너스'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다.
웃음이 빵빵 터지는 즐거움뿐 아니라 유익함을 전하는 것 역시 방법이다. 예를 들어 무신사에 접속하면 옷의 상세 정보를 비롯해 온갖 패션 팁이 가득하다. 패션 트렌드를 파악하러 접속했다가 자연스레 쇼핑까지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직접 운영 중인 브랜드보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채널 역시 같은 맥락이다. 통틀어서 구독자 수가 약 15만 명이다 보니 나를 브랜드 컨설턴트가 아닌 유튜버로 알고 있는 구독자도 많다. 본업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는 잠재적인 클라이언트들을 채널에서 놀게 만들기 위함이다. 브랜드 전략을 다루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브랜딩에 관심 있는 구독자들에게 유익할 거고, 나아가 이들이 클라이언트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브랜드보이 채널을 통해 주기적으로 의뢰가 들어오는 편이다.
브랜드가 차별화를 꾀할 때 참고할 만한 팁이 있다면?
쌓고, 정리하고, 섞는 공식을 추천하고 싶다. 우선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레퍼런스를 쌓는 것이 첫 번째다. 의류 디자이너라면 패션 사진을, 셰프라면 유명 맛집의 음식들을 수집하는 듯 말이다. 동시에 언제든지 꺼낼 수 있도록 정리해야 한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섞는다면 새로움을 만드는 데 이로울 것이다.
이번에 『믹스 MIX』를 집필할 때도 활용했던 원리다. 지난 5년 동안 하루에 15개 신문을 읽으면서 브랜드 관련 뉴스를 SNS에 아카이빙했고, 주제별로 분류해서 온라인 메모장에 정리해뒀다. 이후 책을 쓸 때 해당 자료들을 가져와 섞었다. 이제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멈추길 바란다. 책상 앞에서 하염없이 고민하기보단 평소에 쌓고 정리한 것들을 섞는다면 새로움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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