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기업의 기술 유출 범죄를 ‘솜방망이’ 처벌로 다루는 데 대한 업계의 우려 목소리다. 국내 반도체기업 관계자는 “걸려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벌금형에 그치다 보니 주변에서 잘못된 유혹에 시달릴까 걱정된다”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은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범죄이고 개인의 일탈로 구성원 전체에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라고 했다.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기술을 지키기 위한 국가 보호망은 더 촘촘해지고 엄격해지는 반면 이를 현실에 반영하는 법원 시스템은 6년간 멈춰 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관련 법들이 개정되고 새로 생기면서 처벌 수위는 강화됐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 지침인 양형기준은 기술 유출 범죄와 관련해 2017년 수정된 게 마지막이다. 권고 형량을 보면 법정형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기술 유출 사범들에게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8년간 기술 유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들의 평균 형량은 12개월이었다. 이 중에서도 80%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실패해도 해볼 만한 범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걸렸을 때 잃을 건 별로 없지만 성공하면 일확천금할 수 있는 범죄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셈이다. 한 형사법 전문 교수는 이를 두고 “법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려 실효성 없는 제도가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이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로 바뀌었지만 실제 법을 다루는 법원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사람들이 다른 예측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8일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의견서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산업의 기술 유출은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위협하는데 실제 처벌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가속화로 해외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의 기술 유출 리스크가 더 커졌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더 늦기 전 법원도 변화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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