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직접투자 역대 최고]
올 1~5월 14조원 신고, 역대 최대
對中견제 속 글로벌기업들 한국행
“日-싱가포르 등 외자유치 적극적… 한국도 공격적 전략 필요” 지적
올 들어 5월까지 외국인직접투자(FDI) 신고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40% 급증해 역대 최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탈(脫)중국’의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반사이익을 거두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각국은 자국 투자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경쟁적으로 FDI를 끌어들이고 있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신고된 FDI 투자액은 107억3000만 달러(약 13조9600억 원)로 1∼5월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정부는 미중 갈등의 부수 효과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첨단산업 분야에서 대중(對中) 견제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일본, 아세안 등으로 공급망을 확대하고 있고, 그 반사이익을 한국이 얻고 있다는 것. 특히 한국은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우수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관련 글로벌 기업들이 잇달아 ‘한국행’을 선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충남 아산시에 생산공장을 짓고 있는 영국의 반도체 공정용 진공펌프 생산기업 에드워드 측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우수한 제조업 중심 인프라와 인력을 갖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 한국을 공급기지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주요국들은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된 2021년 이후 각종 보조금과 세금 공제 등 인센티브를 통해 FDI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투자 유치에 발 벗고 나선 프랑스는 지난해 FDI 규모가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주요국들과의 경쟁을 뚫고 FDI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선 규제 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준석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 중에선 한국의 규제 현실이 국제 기준과 맞지 않는다거나 유독 외국 기업에 차별적이라고 여기는 곳이 많다”며 “일본, 싱가포르 등 경쟁국을 앞서기 위해선 규제 철폐를 통한 공격적인 투자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기업들 “반도체-배터리 매력” 한국행… “보조금-세제지원을”
생산기지 다변화로 中리스크 낮춰 한국 첨단산업 인프라-인력 장점 대외 요인 따른 일시적 현상 가능성 수도권 규제-고용 경직성 풀어야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올 들어 지난달까지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기업들의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에 따른 것이다. ‘차이나 플러스 원’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 커니의 2021년 보고서에 등장하는 용어로, 중국 진출 기업들이 대중(對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다른 아시아 국가에 추가로 생산기지를 두는 걸 말한다.
당초 글로벌 기업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당시 중국이 국경을 봉쇄한 ‘제로 코로나’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이런 전략을 택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첨단 산업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강화되면서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중국 이외의 시장을 모색하고 있다. 사실상 ‘탈(脫)중국’을 꾀하면서도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완전히 포기하기 힘든 기업들이 한국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김태형 KOTRA 인베스트코리아 대표는 “미국의 대중 견제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제조 기술을 가진 한국의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 3년간 팬데믹 위기 유연하게 대응”
한국이 ‘차이나 플러스 원’ 수혜국으로 부상하는 건 중국 시장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첨단 산업에서 우수한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이다. 2년 전 울산에 수소 충전소를 세운 미국의 산업용 가스 생산기업 에어프로덕츠 측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 있는 핵심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높은 위기 대응 능력을 갖고 있어 투자처로서 매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코로나19 확산 당시 글로벌 위기 국면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점도 신뢰를 높이는 요인이다. 반도체 공정용 진공펌프를 생산하는 영국 기업 에드워드 관계자는 “지난 3년간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닥쳤음에도 한국은 유연하게 대응해 투자처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국내 FDI는 고용 창출 등 경제 효과가 높은 시설 투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해외 기업이 생산시설 등을 직접 설립하는 ‘그린필드 투자’는 올 1∼5월 90억8500만 달러로 전체 FDI의 84.7%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1.7% 늘어난 규모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영향을 받는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들도 합작 방식으로 한국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 현지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를 벌였는데 그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IRA 세부 지침에 따르면 배터리 광물 가공 기업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40% 이상(올해 기준)의 광물을 조달해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코발트 채굴 업체인 중국의 화유코발트는 지난달 포스코퓨처엠과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총 1조2000억 원을 투자해 경북 포항시 블루밸리산단에 전구체(배터리 양극재의 기초 재료) 생산라인을 구축할 예정이다. 앞서 올 3월 중국 전구체 생산 기업 거린메이(GEM)도 SK온, 에코프로머티리얼즈와 손잡고 1조2100억 원을 투자해 전북 군산시 새만금산업단지에 전구체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 수도권 규제, 경직적 노동시장은 FDI 걸림돌
전문가들은 대외 영향에 따른 FDI 증가가 일시적 현상에 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준석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의 FDI 증가는 미중 갈등 같은 대외 요인에 의한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한다”며 “일종의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FDI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규제 개혁, 투자 지원 등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벨기에에 본사를 둔 화학기업으로 1975년부터 국내에 1조 원 넘게 투자한 솔베이는 “한국 정부가 해외 기업들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과 기준을 낮춰 강력한 FDI 투자 요인으로 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우선 과도한 ‘수도권 규제’부터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서울 등 16곳의 ‘과밀억제권역’에 법인을 설립할 경우 부동산 취득 시 중과세를 규정하는 등 제약이 적지 않다. 외국인직접투자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안병수 서울디지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첨단 산업 분야에선 수도권이 아니라면 투자 자체를 하지 않을 기업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경직적 노동시장도 풀어야 할 과제다. 오준석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인력이 상향 평준화돼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탄력적인 채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망설이는 해외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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