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005930)에 ‘갑질’을 한 혐의를 받는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자진시정 방안을 기각했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마련한 동의의결안이 삼성전자의 피해를 매꾸기에는 부족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한 뒤 의결안의 내용을 문제 삼아 기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해당 사건은 정식 심사로 전환되고, 과징금 등 제재 의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 7일 전원회의를 열고 브로드컴 인코퍼레이티드 등 4개사가 마련한 동의의결안을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대해 스마트기기 부품공급에 관한 장기계약(LTA) 체결을 강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계약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1년 1월1일부터 2023년 12월31일까지 브로드컴의 스마트기기 부품을 매년 7억6000만달러 이상 구매하고, 실제 구매 금액이 7억6000만달러에 미달하는 경우 그 차액만큼을 브로드컴에 배상해야 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계약 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쟁업체의 진입을 막은 것이다.
브로드컴은 공정위가 해당 사안을 심사하던 중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브로드컴이 제출한 시정방안에 대한 개선·보완 의지를 확인하고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동의의결이란 사업자가 제안한 시정방안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조사 중인 사안이라도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하지만 공정위 위원들은 지난 7일 전원회의 심의 결과, 브로드컴의 최종 동의의결안이 거래질서 회복이나 다른 사업자 보호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이를 기각했다.
위원들은 최종 동의의결안에 담긴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기술지원 확대 등이 그 내용·정도 등에 있어 피해보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또 삼성전자 역시 시정방안에 대해 수긍하지 않는 점도 고려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백브리핑을 통해 “삼성전자의 구매 부품에 대한 품질보증 기간을 3년으로 확대 적용하고, 3년 동안 기술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동의의결안에 있었는데 브로드컴은 이를 무상이 아닌 유상으로 받겠다고 했다”며 “기술지원도 ‘합리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공된다’고 돼 있다. 이 말은 기술 제공 여부도 본인들이 가능하면 하고, 아니면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또 동의의결안에는 ‘2020년 3월 이전 출시된 스마트기기에 탑재된 부품에 대해서만 기술지원하겠다’고 돼 있다”며 “삼성전자가 당시 사놓았던 부품에 대해 전체적으로 기술지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 기술지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들은 또 동의의결안에 ‘삼성전자의 부품 주문 및 기술지원 요청에 대해 브로드컴이 유사한 상황의 거래상대방 수준으로 부품 공급 및 기술지원을 제공한다’는 문구도 문제 삼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것도 굉장히 허언인 것이, 지금 브로드컴의 거래 대상은 애플이 80% 되고 삼성전자가 20%, 다른 곳은 1% 미만”이라며 “애플 수준까지 (요청 수준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브로드컴은) 그런 부분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브로드컴은 자신들이 장기계약 체결 자체를 강제한 바가 없기 때문에 법을 위반한 것이 없고, 따라서 삼성전자의 피해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에 따라 삼성전자에 대한 피해보상 등은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전원회의에서 삼성전자 측은 이번 동의의결안을 반대했다. 동의의결안에 금전 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 방안이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이번 사건의 신고인인 미국 퀄컴도 브로드컴이 삼성전자를 위협해 경쟁을 제한했다며 동의의결안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개시 신청 자체를 기각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으나, 개시 결정 이후 협의가 끝난 동의의결안을 전원회의에서 기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의의결안 기각에 따라 공정위는 조만간 전원회의를 개최해 브로드컴의 법 위반 여부, 제재 수준 등을 결정하기 위한 본안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추후 전원회의를 개최해 브로드컴의 법위반 여부, 제재 수준을 결정하는 본안 심의가 진행될 될 예정”이라며 “늦어도 연말 전에는 심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의 이익을 보고 동의의결 기각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인용 요건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다만, 만약 공정위가 정식 심사에서 거래상 지위남용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삼성전자가) 좀 더 손쉽게 민사소송 등을 통한 피해구제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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