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런 공포 휩싸였던 채권 시장
국내 금융사 건전성 부각돼 안정
정부 자기자본 확충규제 압박에
금융지주사 연일 판매목표 채워
금융당국의 자기자본 확충 규제에 따라 금융사들이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3월 크레디트스위스(CS)의 신종자본증권(AT1·코코본드) 상각 조치 이후 시장을 덮쳤던 ‘본드런(연쇄 채권매도)’ 공포가 완전히 걷히면서 금융사들이 후순위채와 영구채 수요예측서 연일 목표액을 채우고 있다. 한 달 만에 다시 후순위채를 발행한 푸본현대생명은 수요예측서 좋은 결과를 거뒀고, 흥국생명까지 후순위채 발행에 나선 상황이다.
사실 3월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올해 3월 ABL생명은 5년 콜옵션(조기상환권)을 기준으로 후순위채 700억 원 모집에 나섰으나 매수 주문을 전혀 받지 못했다. 게다가 UBS가 CS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50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AT1·코코본드)이 모두 상각 처리되면서 가치가 ‘0’이 되자 채권시장에선 우려가 적지 않았다.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지는 채권이 상각 처리되면서 채권 투자심리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국내 금융사들의 건전성이 부각되는 한편 후순위채와 영구채 등에 대한 우려가 진화되면서 시장에서의 관련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하는 금융사들로서도 이들 채권은 매력적이다. 후순위채는 다른 채권들에 비해 변제순위가 밀려 금리 부담은 크지만, 일정 부분은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영구채 또한 명목상 만기는 정해져 있으나 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CS 사태 이후 국내 신종자본증권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교보생명과 농협금융지주 등 보험사 및 은행지주의 대표주자들이 발행에 성공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신종자본증권의 차이점과 위험요소들을 명확히 파악하고 투자하는 경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12일 IB에 따르면 DG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각각 이달과 다음 달 영구채 수요예측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후순위채 수요예측을 끝낸 푸본현대생명은 올해 4월 700억 원 모집에 당초 미매각됐으나 추가 청약으로 800억 원의 증액 발행을 완료한 바 있다. 이후 추가 발행에서 푸본현대생명은 500억 원 모집에 1160억 원을 받아내 980억 원의 증액 발행을 마무리했다. 지난달 교보생명 또한 영구채 수요예측서 3000억 원 모집에 4260억 원의 매수 주문을 받아낸 이후 추가 청약으로 자금을 더 받아 5000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같은 달 농협금융지주도 영구채 수요예측서 2700억 원을 목표로 수요예측을 한 이후 4000억 원으로 발행 규모를 늘렸다. 이어 이달 신한라이프생명보험도 20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 수요예측서 5020억 원을 받아내 3000억 원으로 증액 발행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내년 5월부터 은행과 은행지주에 대해 경기대응완충자본(CCyB)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1%포인트 추가로 쌓으라 주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후순위채와 영구채를 이용한 금융사들의 자기자본 확충은 이어질 전망이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양 채권 모두 금융사들의 자기자본 확충에 적극적으로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