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TSMC와도 첫 생산라인 협의
佛, 美-스위스 합작 공장에 보조금
EU, 반도체 R&D 30조원 지원 승인
삼성 등 국내 기업도 파트너십 모색
“유럽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 한다.”
유럽연합(EU)의 산업 정책통으로 꼽히는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이달 8일(현지 시간) “최첨단 반도체를 장악함으로써 미래 시장에서 산업 강국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선언했다. 이날 EU 집행위원회는 유럽 내 반도체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위해 총 220억 유로(약 30조8200억 원)의 지원을 승인했다.
최근 유럽판 ‘반도체 굴기’를 집약한 장면이다. 유럽 주요국이 반도체 생산라인 유치전에 속속 뛰어들면서 글로벌 반도체 경쟁의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대만 TSMC와 미국 인텔, 글로벌파운드리 등 반도체 동맹국 주요 기업들이 유럽에 둥지를 틀면서 글로벌 공급망 지도에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18일(현지 시간) 로이터는 인텔이 이스라엘에 250억 달러(약 32조 원)를 투입해 남부 키르야트가트에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새 공장 설립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이틀 전인 16일에도 인텔은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 46억 달러 규모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밝혔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폴란드는 인텔의 유럽 내 거점인 독일, 아일랜드와 합작하기에 이상적”이라며 “전 세계 다른 제조 입지와 비교했을 때 비용이 적게 들기도 한다”고 했다. 인텔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도 170억 유로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기 위해 독일 정부와 보조금 수준을 협의 중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후발 주자인 인텔의 공격적인 유럽 투자는 지난해 발의돼 올해 4월 통과된 ‘유럽판 칩스법’과 맞물린 행보다. 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총 430억 유로를 투입하겠다는 이 법안이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을 유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도 유럽 거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인텔과 글로벌파운드리, 인피니언 등 반도체 업체들이 자리 잡은 독일 드레스덴에 유럽 첫 생산라인을 두기 위해 정부와 막판 협상 중이다. 장샤오창 TSMC 비즈니스 개발 선임부사장은 지난달 2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연례 기술포럼에서 “유럽 공장 설립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추정되는 투자 규모만 100억 유로에 이른다.
앞서 이달 5일 프랑스 정부는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와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75억 유로 규모 합작 생산라인에 보조금 29억 유로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장관은 “2017년 이후 프랑스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 중 가장 큰 금액”이라고 했다.
EU는 지난해 유럽판 칩스법을 발의하며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의 20%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유럽은 전 세계 반도체의 20%를 소비하며 미국, 중국에 이어 3대 시장으로 꼽히지만 생산능력은 10%대에 불과해 대외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영국 ARM,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반도체 설계 부문 강자들과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이 자리하고 있다. 독일 완성차 3사 고객사가 있는 만큼 인피니언과 NXP 등 차량 반도체 생산 기반도 일찍부터 탄탄하게 구축돼 있었다.
숨 가쁘게 흘러가는 반도체 공급망 판도 재편에서 유럽의 행보는 올해를 기점으로 점차 빨라질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도 유럽 내 생산라인을 둔 곳은 없지만 현지 기업들과의 차량용 반도체와 설계 관련 파트너십 확대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장(사장)은 최근 이스라엘과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 4개국 출장을 마친 뒤 “국내외 고객사·협력사 등과 반도체 기술 혁신과 고도화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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