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양극화로 저출산 등 사회문제 심화… 연공형 임금 개선 시급”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0일 03시 00분


정부 노동정책 관련 전문가 간담회
특권 타파해 노사 법치 기반 확립
노동시장 약자 보호-이중구조 개선
글로벌 경쟁력 향상 위한 상생협력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고용노동 전문가 4명이 모여 노동 개혁 현안과 정부 정책을 점검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겸 회계사,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동수 법무법인 
김앤장 ESG 경영연구소장.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고용노동 전문가 4명이 모여 노동 개혁 현안과 정부 정책을 점검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겸 회계사,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동수 법무법인 김앤장 ESG 경영연구소장.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정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 대형 노동조합에 한해 회계 정보를 공시해야만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노동조합법, 소득세법 개정안을 15일 내놨다.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노동 개혁의 일환이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도 다음 달 내놓을 예정이다. 3월에는 연장근로시간 선택 범위를 넓히는 내용의 근로시간제 개편안도 공개했다. 모두 정부, 노동계, 기업 등 고용시장 주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쟁점들이다.

동아일보는 9일 서울 중구에서 전문가 좌담회를 열어 현재 진행 중인 노동 개혁과 정부의 각종 노동 정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좌담회에는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고용부 상생임금위원회 공동위원장),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겸 회계사(불합리한 노동 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 자문단장), 김동수 법무법인 김앤장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연구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방법론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노동시장의 전반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 회계 투명화 “노조에 기회일 수도”
권 차관은 “정부의 개혁 목표는 노동 현장의 특권·반칙 타파를 통한 노사법치 기반 확립, 노동시장 약자 보호와 이중구조 개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노동 규범 현대화 등 크게 3가지”라고 강조했다.

특히 노조 회계 투명성 방안은 첫 번째 목표와 연관됐다. 정부는 올 초 일정 규모 이상 노조에 회계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명령했고, 최근에는 대형 노조가 회계 정보를 공시해야만 조합원들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노조법·세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현재 노조 조합비는 ‘지정기부금’에 포함돼 연말정산 시 조합원들이 1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개정안은 내년 1월 시행 예정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개정안이 ‘노조 망신 주기’, ‘노조 탄압’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정기부금(조합비)에 세제 혜택을 주는 이유는 ‘남을 위해 쓴 공익적인 돈’이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요구하는 회계 자료는 이를 확인하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정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부금 세액공제를 받는 다른 단체·법인은 모두 회계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데, 오히려 노조가 그동안 특권을 누렸던 셈”이라며 “개정안은 ‘비상식의 상식화’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노조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권 차관은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노조가 등장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직에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조합원이 늘고 있다”며 “떳떳하게 공개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노조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최근 이슈인 ESG 경영도 기업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 요구되는 것”이라며 “‘힘이 세질수록 책임감도 커진다’는 말처럼 큰 조직이라면 더욱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게 국제적인 분위기다. 노조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 3만7783원 vs 1만6520원… “연공형 임금 개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개혁 과제 중 가장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이는 원청-하청, 정규직-비정규직처럼 근로자 간 임금이나 근무 환경의 격차가 커져 양극화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지난해 6월 기준 통계청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같은 시간을 일하고 받는 임금(시간당 임금 총액)이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정규직은 3만7783원, 비정규직은 2만4672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정규직이 2만1758원, 비정규직이 1만6520원이었다. 이런 양극화는 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동시에 저출산, 결혼 포기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중구조가 고착된 배경을 “노동시장이 경직된 상태에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세계화 등을 거치며 영미(英美)형 경쟁 시스템을 급격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 등 안정된 위치의 근로자들의 기득권은 공고해지고, 그 반대에 선 근로자들의 처우는 나빠졌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어느 하나의 정책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큰 틀에서 많은 것을 바꿔 나가야 한다”며 임금 체계 개편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연차가 쌓이면 자동으로 월급이 오르는 ‘연공형 임금체계’가 가장 문제”라며 “늘어난 고령 정규직들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면 청년 채용이 줄어들고 장기근속자와 신입,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산성이나 능력, 업무 성과와 연동이 되는 임금 체계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며 “최근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시도는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시도”라고 말했다.

● “원-하청 상생, 글로벌 경쟁력 높여”
권 차관은 “정부는 원·하청 간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원청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과 자율적인 상생 관계를 구축하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업을 대상으로 업계 관계자, 전문가, 정부가 모여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만들고 협력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덧붙였다.

기업 간 상생협력이라는 말이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지적에 대해 이 교수는 “하청이 임금, 복지, 안전 측면에서 열악해지면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제품 품질이 떨어진다”며 “그만큼 원청도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실제 기업의 생산성도 끌어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소장은 “ESG 경영을 하는 기업과 거래하면 첫째, 각종 사건·사고 발생으로 인한 리스크(위험)를 줄일 수 있고 둘째, 더 좋은 협력업체들과 함께 신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며 “안타깝게도 아직 해외에서 한국 기업을 볼 때 원-하청 상생을 통한 신사업 기회 창출이라는 측면은 거의 기대하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 곳곳에서는 이미 ESG 관련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며 “우리도 상생협력에 앞장선 기업은 대출과 정책자금 이용 시 혜택을 더 주는 연성 규제를 활용하는 식으로 규제와 지원을 강화해 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개혁 시급… “건강한 토론 필요”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서는 참석자 대부분 “본질을 벗어난 논쟁으로 개정안의 주요 취지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올 3월 고용부는 현재 주 12시간(총근로시간은 주 52시간)으로 묶여 있는 연장근로시간 제한을 월, 분기(3개월), 반기(6개월), 연으로 확대해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산업 현장의 사정에 따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용해 ‘몰아서 쉴 수 있는’ 시간도 늘린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주 최대 69시간(주6일 기준)까지 허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만 관심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과로조장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개편안 추진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이 교수는 “문제 인식과 해결 방안에 관한 생각 차이는 사실 ‘6시 5분 전과 5분 후 정도의 차이’일 텐데, 논쟁을 하다 보면 ‘3시와 9시의 차이’처럼 벌어져 버린다”며 “방향성에 공감한다면 극단의 사례를 내놓지 말고 해결을 위해 건강한 토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탄소중립도 그렇고 인권 존중, 상생협력, 투명성 강화와 같은 ESG 경영은 피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며 “한국처럼 무역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는 나라는 모든 조직에서 이들을 지금 당장 도입하고 적용해야 늦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권 차관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함으로 정부도 개혁의 성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시장 양극화#사회 문제#노사 법치 기반 확립#상생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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