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통산업부터 첨단산업까지 골고루 발달했다. 철강은 자동차를 뒷받침하고, 반도체는 전자산업의 원천으로 상호작용하며 강력한 K제조생태계를 만들면서 선진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적 강자로 우뚝 섰다. 그런데 우리 대표 산업들이 새로운 추격자를 맞고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거대한 수요시장과 정책 지원을 뒷배로 하는 중국의 성장세가 거침없다. LCD를 석권한 중국에 17년간 지켜온 디스플레이 세계 1위 타이틀을 넘겨줬다. 그나마 첨단 OLED 시장을 선점하며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통의 전자강호 대만과 소재강국 일본은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며 미래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주도권 전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디스플레이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우선 지정하고, 이어 2027년까지 세계 1위 탈환을 목표로 ‘디스플레이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투자, 기술, 공급망, 인력을 망라한 종합대책이다. 물론 단순히 세금을 깎아주고, 금융을 지원하는 방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먼저, 기술 초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디스플레이 기술의 중심에 우리가 있다. 세계 최초로 OLED 스마트폰과 투명 OLED를 출시했다. 접고 늘리고 구겼다 펴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도 개발했다. 앞으론 모든 정보기술(IT) 기기에 OLED가 사용되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무기 소재로 전환해 마이크로·나노 LED와 퀀텀 소재 개발을 조기에 완수해야 한다. 압도적이지 않으면 1등이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둘째, 고부가 융합 신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모든 정보가 디스플레이를 통해 구현된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확장현실(XR)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 역시 디스플레이다. 모빌리티, 의료, 패션, 오락 등 생활 전반에 ‘산업의 눈, 디스플레이’가 필수적이다. K제조생태계를 십분 활용해 디스플레이가 들어가는 미래 산업을 창출해야 한다.
셋째, 기업이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도록 우리의 역량을 창의적으로 결집해야 한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혁신성장’의 철학을 바탕으로 초일류 인력을 양성하고 첨단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 국내 업체의 해외 매각이나 경쟁국으로의 공장 이전은 기술 유출과 인력 이탈의 채널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디스플레이 대전은 초격차 기술과 초거대 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생존 경쟁이다. 성경에서 작고 영리한 다윗은 장신의 거구 골리앗을 때려눕혔다. 기술의 승자가 시장을 차지할 것 같다. 그러나 경제에서 혁신은 시장과 기술,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의 대응이 중요하다. 정상을 탈환하려면,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되 시장에서 통용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간디도 말하지 않았던가. “미래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에 따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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