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금융 안정성 ‘흔들’… 국가경쟁력 2년째 하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1일 03시 00분


[재정건전성-금융 경고등]
IMD, 64개국 국가경쟁력 평가
재정 32→40위, 금융 23→36위 ‘뚝’
“국가경제 기초체력 빨간불 켜져”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2년 연속 뒷걸음치며 28위로 떨어졌다. 재정적자가 늘어난 데다 국가채무가 증가하면서 재정 부문에서 8계단 하락했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비롯한 자금시장 불안으로 금융 부문도 13계단 급락했다.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인 재정 건전성과 금융 안정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20일(현지 시간) 발표한 올해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서 한국은 64개국 중 28위로 집계됐다. 2022년 평가에서 27위로 전년보다 4계단 하락한 데 이어 올해도 한 계단 내려앉았다. IMD는 1989년부터 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 등 4대 분야의 20개 부문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있다.

국가경쟁력이 하락한 데는 재정 건전성 악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재정 부문 순위는 지난해 32위에서 40위로 떨어졌다. 특히 정부 씀씀이가 커지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부문의 순위가 24위로 15계단 미끄러졌다. 지난해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3%(2차 추가경정예산 기준)로 전년(1.5%)보다 크게 악화됐다. 재정이 포함되는 정부 효율성 순위는 38위로 2계단 하락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재정 등 정부 효율성의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국가경쟁력 순위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역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렸다. 지난해 23위였던 금융 부문 순위는 올해 36위로 하락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에 나타났던 자금시장 불안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국내 주가도 25%(코스피 기준) 떨어지며 주요국보다 더 큰 변동 폭을 보였다. 다만 해당 국가의 1년간 경제 성적을 평가하는 경제성과 부문에선 14위에 이름을 올렸다. 1년 전보다 8계단 상승하며 역대 최고 순위를 다시 썼다.

종합순위에선 덴마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에 올랐다. 아일랜드가 9계단 뛰어올라 2위를 차지했고, 스위스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이 뒤를 이었다.

나랏빚 급증, 부동산PF 등 자금시장 불안… 기업환경도 악화

한국 국가경쟁력 2년째 하락
정부부채 증가율 64개국 중 56위… 투자매력 등 기업여건 48위→53위
4대분야 중 정부효율성 유일 하락
고용-물가 등 경제성과 8계단 상승

눈덩이처럼 불어난 나랏빚 등 낮은 정부효율성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끌어내리고 있다. 국가채무 규모는 지난해 이미 1000조 원을 넘어섰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수 부족은 심화되는 형국이다. 여기에 지난해 주요 선진국보다 더 크게 떨어진 주가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위험 등 불안한 금융시장도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정준칙 입법화와 금융시장 안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중 4대 분야별 항목에서 지난해보다 순위가 떨어진 건 정부효율성(36위→38위)이 유일했다. 정부효율성을 구성하는 5가지 세부 항목 중에선 재정(32위→40위) 순위가 가장 많이 하락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와 정부 부채 증가율 등이 크게 뒷걸음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정부 부채 증가율 순위는 전체 64개국 중 56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정부 부채가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늘면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 원인이 된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 4월 말 기준 국가채무는 1072조7000억 원이다. 기재부가 추산한 연말 국가채무 전망치(1100조3000억 원)를 불과 약 30조 원만 남겨두고 있는 것. 나라의 실질적인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45조4000억 원 적자다. 연말 적자 전망치(58조2000억 원)의 78%를 4개월 만에 쌓은 셈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 분야에서 8계단이나 하락한 것은 재정준칙 입법화가 지연된 영향이 클 것”이라며 “한국처럼 중앙정부가 국가예산 대부분을 결정하는 나라에서 재정준칙이 입법화돼 있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얼마나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인지를 보여주는 기업 여건(48위→53위)도 악화됐다. 하위 설문을 보면 ‘외국인 투자가 인센티브 매력도’(28위→40위), ‘보조금의 경쟁 저해 정도’(35위→45위)가 크게 하락했다.

4대 분야별 항목 중 경제성과 순위는 지난해 22위에서 올해 14위로 8계단 수직 상승했다. 고용(6위→4위)과 물가(49위→41위) 등 세부 평가항목의 순위가 작년보다 오른 결과다.

기업효율성은 작년과 올해 모두 33위였지만 그 하위의 금융 순위(23위→36위)는 크게 떨어졌다. 특히 금융을 평가하는 세부 항목 중 주가지수 변화율은 10위에서 60위로 추락했다. 고금리, 고물가, 경기 둔화 여파로 지난해 한국의 주가 하락세(―25%)는 주요국 가운데서도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미국(―8.8%), 유로스톡스(―11.7%), 독일(―12.3%), 일본(―9.4%), 중국(―15.1%) 등에 비해 하락 폭이 컸다.

레고랜드 채권 부도로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어려움도 커졌다. 정부는 20조 원 규모의 채권안정펀드(채안펀드)를 조성해 유동성 지원에 나섰지만 부동산 PF 대출 부실 등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시중은행을 포함한 전 금융권에서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3.41%에서 올해 3월 말 5.07%로 높아졌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세계적인 고금리 국면에는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높은 가계부채와 관치 성향이 강한 금융 규제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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