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가 밀려드는 자원 부국이자 젊은이들로 가득한 인구 대국. 어디인지 아시겠나요.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이면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2억7000만명) 인도네시아입니다.
요즘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원자재 관련 기업의 기업공개(IPO)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동시에 ‘튀긴 주식(주가가 과도하게 뜨거워진 주식)’을 조심하라는 경고음도 나옵니다. 급부상하는 인도네시아 경제와 증시의 기회와 위험 요인을 딥다이브해보겠습니다.
전 세계 IPO 시장이 ‘빙하기’에 빠졌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1분기 글로벌 IPO 자금 규모(215억 달러)는 전년 동기보다 61%나 줄어들었다고 하죠(어니스트앤영 통계).
단, 인도네시아는 완전히 예외입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투자자들이 인도네시아 IPO에 쏟아부은 금액은 21억 달러. 지난해 1년 치(22억 달러)에 육박할 뿐 아니라, 홍콩∙인도∙한국∙일본을 앞지르는 성과입니다. 전 세계 IPO 시장 중 4위(중국, 미국, 아랍에미리트 다음)에 올랐죠. “정상적이지 않다. 올해가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고가 될 것 같다”(데이터제공업체 딜로직 관계자의 CNN 인터뷰)는 평가가 나올 정도.
인도네시아 니켈 생산업체 ‘하리타 니켈(Harita Nickel)’과 ‘메르데카 배터리 머티리얼즈(Merdeka battery materials)’는 지난 4월 증시에 잇따라 성공적으로 데뷔했는데요. IPO에서 이들 기업이 모은 자금이 각각 6억7300만 달러와 6억2000만 달러에 달합니다. 인도네시아 IPO 사상 역대 1위와 2위의 기록을 새로 쓴 거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눈치채셨겠지만 답은 ‘니켈’에 있습니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이자, 특히 고성능 배터리(니켈 함량 80% 이상인 하이니켈 배터리)에 꼭 필요한 광물이죠.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니켈 생산량의 37%를 차지하는 1위 국가인데요(2021년 기준).2020년 1월 니켈 원광(가공 전 단계) 수출을 전격 금지해버렸습니다. 니켈 원광을 사가지 말고, 인도네시아 안에 니켈 제련 공장을 만들라는 거였죠. 채굴부터 가공까지 인도네시아에서 한 번에 이뤄지는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원민족주의이자 자원갑질이라 하겠습니다. WTO(세계무역기구) 역시 니켈 수출 금지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위반이라고 이미 판단했죠.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인도네시아가 아닙니다(현재 항소 진행 중). 왜냐, 그 효과가 꽤 극적이거든요.
2022년 인도네시아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는 전년보다 44% 증가한 44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참고로 한국의 FDI 규모는 지난해 305억 달러). 물론 대부분은 니켈을 포함한 금속 관련 부문이었고요. 인도네시아 니켈협회에 따르면 2018년 15곳이던 니켈 제련소가 올 4월 기준 62곳으로 늘어났습니다. 건설 중인 제련소도 30곳 정도 되고요. 얼마 전에도 포스코홀딩스가 인도네시아에 니켈 제련공장을, 폭스바겐은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죠. 외국인 투자가 계속 밀려들고 있습니다.
자연히 니켈제품 수출도 급증했습니다. 2020년 8억 달러였던 니켈제품 수출 금액이 2022년엔 59억7800만 달러로 껑충 뛰었는데요. 덕분에 오랫동안(2012~2020년)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렸던 인도네시아가 2021년부터 경상수지 흑자로 돌아서기까지. 이를 두고 블랙록 펀드매니저 에밀리 플레처는 CNN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는 수출의 가치사슬에서 위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것이 경상수지 적자 마감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니켈만 많은 게 아니죠. 알루미늄 원료인 보크사이트 수출량도 세계 2위인데요. 올해 6월 10일부터 보크사이트 수출도 금지해버렸습니다. 원래 철광석∙구리∙아연∙납도 수출을 금지하려다가 일단 2024년 5월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한 상태라는데요.
한마디로 금속을 캐서 파는 ‘광업’ 말고 관련한 ‘제조업’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수출 금지’라는 초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산시설을 갖추려면 기업들은 돈이 필요하겠죠. 이런 시설투자금 마련을 위한 광물 관련 기업의 IPO는 계속 이어질 거고, 또 주목받을 겁니다. 일단 올해 안에 금과 구리 채굴업체 암만 미네랄(Amman Mineral)이 역대 최대 규모(10억 달러) IPO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인도네시아의 IPO 열풍은 계속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대통령도 언급한 ‘튀긴 주식’ 주의보
그럼 이런 뜨거운 IPO 시장의 열기가 지수 상승으로 이어졌을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IDX지수는 상승세를 탔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들어서는 소폭(2.3%) 하락했는데요. 한국과 미국 증시가 올해 예상과 달리 랠리를 펼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하리타 니켈 역시 주가가 공모가보다 20% 가까이 하락했고요. 메르데카 배터리 주가는 공모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광물 가격이죠. 지난해 상반기 최고점을 찍었던 니켈 가격은 이후 하락해 올해 들어 28%가량 하락했습니다. 전기차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전기차 판매가 부진한 탓인데요(전기차 보조금 폐지 여파). 인도네시아가 니켈 공급은 크게 늘렸는데,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반영된 겁니다. 골드만삭스 역시 지난달 “올해 니켈 가격이 인도네시아의 공급 과잉으로 급락할 수 있다”면서 톤(t)당 1만6000달러를 목표가로 제시했죠(현재는 약 2만3000달러).
하지만 좀 더 길게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데요. BNP파리바의 아시아 주식리서치 책임자인 마니시 레이차우두리는 “충분히 긴 시야를 가진다면 이러한 (전기차 관련) 소재는 슈퍼 사이클에 있다”고 평가합니다. 전기차 배터리 관련 시장의 장기 성장성 자체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보다는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이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인도네시아 증시는 동남아시아에선 최대규모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시가총액이 한국의 35%에 그치는데요. 집중된 소유(유동성 부족)와 낮은 거래량, 부족한 애널리스트 보고서, 그리고 동종 업계 대비 높은 밸류에이션 등. 신흥시장 특유의 취약점이 인도네시아 증시의 특징이라는 게 블룸버그 분석입니다. 그 결과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종목들도 많죠. 전체 상장 주식의 약 10%인 83개 기업 주가가 지난 3년 동안 최고점과 최저점 차이가 1000%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도 지나치다는데요.
이렇게 요동치는 주식시장 덕분에 인도네시아에선 ‘억만장자’들이 여럿 탄생했습니다. 지난해 주가가 800% 뛴 석탄회사 바얀리소스의 로우 턱 퀑 회장은 단숨에 인도네시아 최고 부자에 이름을 올렸고요(포브스 세계 부자 순위 기준 56위, 중국 마윈(63위)이나 일본 손정의(69위) 회장보다 부자). 2021년 초 상장 뒤 5개월 동안 주가가 14배 가까이 오른 데이터센터 기업 DCI인도네시아의 대주주들(오토 토토 스기리, 마리나 부디만) 역시 벼락부자가 됐죠.
동시에 현실과 동떨어진 채 주가가 끓어오르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만큼 빠르게 식어버릴 위험도 큽니다. 유동성이 매우 적어서 주가조작의 가능성도 큰데요. 이런 주식을 일컫는 ‘사함 고렝안(사함=주식, 고렝안=인도네시아 길거리 튀김 음식)’이란 용어까지 통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튀긴 주식’인데요. 맛있지만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는 뜻이 포함돼있죠. 오죽하면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 “매크로(거시경제) 상태가 좋지만 이것(사함 고렝안)을 조심하라. 튀기면 맛있지만, 미끄러지면 인도의 아다니(공매도 보고서가 나오면서 주가가 급락한 인도 대기업)처럼 된다”고 경고했을 정도.
2024년 대선과 남은 변수
인도네시아 경제는 원자재가격 하락으로 수출이 줄고는 있지만 올해 1분기에도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갔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인도네시아 GDP 성장률이 5.0%로 지난해(5.3%)보다는 낮지만 꽤 탄탄할 걸로 내다보았고요. “내수 회복과 견조한 수출 실적에 힘입어 강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란 분석인데요.
그런데 인도네시아 경제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변수가 있습니다. 바로 내년 2월 대선인데요. 2014년 취임한 조코위 대통령의 2기 임기가 끝나고, 대통령이 바뀔 예정입니다(3연임은 불가). 조코위 대통령은 압도적인 지지율(올해 초 76% 기록)로 유명한데요. 인프라 확충과 해외 투자 유치 같은 친시장적 경제정책(이른바 ‘조코노믹스’)이 실제 인도네시아 경제에 활력을 가져온 게 인기 비결이죠.
그래서 ‘2024년 선거가 인도네시아 경제와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가 국내외 관심사입니다. 자칫 정권이 바뀌고 경제정책이 뒤바뀌면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가는 거 아닌가라는 우려도 있죠. 특히 조코위 대통령이 추진해온 ‘수도 이전(자카르타에서 신수도 ‘누산타라’로의 이전)’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현재까진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뚜렷이 보이진 않습니다. 다만 ‘누구든 조코위 현 대통령이 미는 사람’이 당선될 확률이 커보입니다. 현지 언론에서 조코위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 그 지지율이 4%포인트 올라갈 거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인데요.
조코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되는 새 대통령이라면 기존 경제정책을 확 뒤집지는 않을 가능성이 더 크긴 하겠죠. 오히려 “대선 직전엔 소비 지원책이 시행될 수도 있어서 연말 쯤부터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KB증권 ‘인도네시아 출장기’ 보고서)는 분석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By.딥다이브
‘동남아시아의 전기차 허브’. 인도네시아가 니켈 수출 금지를 발표하며 내건 목표인데요. 사실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목표가 거창하다 싶었는데, 지금 보니 실제 손에 잡히는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원은 효과적인 경제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씁쓸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인도네시아 IPO 시장이 최대 호황입니다. 올해 역대급 IPO가 줄이으면서 홍콩을 추월하는 깜짝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자원, 그 중에서도 니켈 관련 기업에 대한 관심 덕분인데요. 2020년 니켈 원광 수출 금지 이후 이와 관련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증하고 니켈제품 수출이 늘면서 관련 산업이 호황입니다.
-요즘은 니켈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면서 인도네시아 증시가 주춤한데요. 그래도 장기 성장성은 의심할 바 없다는 평가입니다. 다만 증시의 심한 변동성과 내년 대선이란 정치적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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