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연체율이 치솟으며 대출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다시 불어나기 시작했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가계대출이 6000억 원 이상 늘어나며 두 달 연속 오름세인 데다 증가 폭도 더 커졌다. 빚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금융시스템 불안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22일 현재 678조2162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677조6122억 원)보다 6000억 원 넘게 불어난 규모다. 지난달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4월(677조4691억 원)보다 1400억 원가량 늘며 1년 5개월 만에 다시 고개를 든 바 있다. 이달 들어서도 증가세가 이어진 데다 영업일이 6일 남아있는데도 증가 폭이 크게 뛴 것이다.
대출별로는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지난달 말 509조6762억 원에서 22일 510조1596억 원으로 약 4800억 원 증가했다. 이 기간 신용대출 잔액도 109조6731억 원에서 109조7766억 원으로 1000억 원가량 불었다. 쪼그라들던 5대 은행 신용대출 잔액이 늘어난 건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올 들어 하락세를 보이던 대출금리가 최근 다시 소폭 올랐지만 가계 빚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에서 더 우려를 키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이달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혼합형)는 0.3%포인트 안팎 높아졌다. 한때 연 3%대까지 떨어졌던 주담대 변동금리 하단도 다시 연 4%대로 올라왔다.
가계대출 잔액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은 한국은행의 3연속 기준금리 동결로 금리 인상 레이스가 사실상 종결됐다고 확신하는 분위기가 시장에 팽배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이에 고금리 공포는 가라앉고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자산시장이 점차 기지개를 켜며 자금 수요가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국내에서는 연체율 증가세가 심상치 않아 때 이른 가계 빚 오름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83%로 1년 전 같은 기간(0.56%)보다 0.27%포인트 뛰었다. 이 기간 주담대 연체율은 0.20%에서 0.31%로 1.5배 넘게 급증했다.
한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금융시스템의 중장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금융취약성지수(FVI)는 올해 1분기 48.1로 직전 분기(46.0)보다 올랐다. 2021년 2분기(4∼6월) 이후 7개 분기 만에 다시 상승세로 접어든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올 4월 이후 가계대출이 다시 늘면서 금융 불균형 축소가 제약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출을 포함한 기업대출도 올 1월 이후 6개월째 증가하고 있다.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22일 현재 731조5866억 원으로 5월 말(726조9887억 원)보다 4조6000억 원가량 늘었다. 이 중 중소기업 대출은 1조2073억 원, 대기업 대출은 3조3906억 원 각각 뛰었다. 한은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현재의 기업대출 건전성 지표는 신용 리스크를 과소 반영할 수 있다”며 “은행은 경기 회복 지연 가능성과 잠재 신용손실 현실화 등에 대비해 대손충당금과 자본금 적립을 늘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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