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아인슈타인은 죽는 날까지 이같은 이유를 들며 ‘양자 얽힘’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지 70여년이 지난 현재, 적어도 양자역학과 관련해서는 아인슈타인이 틀린 것으로 보인다. 양자 얽힘 현상이 이론적, 실험적으로 모두 입증되며 양자 컴퓨터와 양자 통신의 실현 가능성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양자 얽힘 현상이 실재함을 입증하며 노벨물리학상을 손에 거머쥔 존 F 클라우저 박사는 26일 서울 DDP에서 열린 ‘퀀텀 코리아 2023’에서 노벨상을 선사한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한 기조 연설을 진행했다. 연설 주제는 ‘비국소적 양자 얽힘은 실재한다 - 실험적 증거’다.
◆보어 “수십억 광년 떨어진 양자도 ‘얽힘’ 상태에 있어” vs 아인슈타인 “빛보다 빠른 정보전달은 불가”
클라우저에 따르면 양자 얽힘에 대한 학계의 관심과 논쟁은 20세기 초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의 해석 차이를 두고 불이 붙었다.
양자역학은 ‘중첩’과 ‘얽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에컨대 두 양자입자가 각각 A와 B라는 특징(A와 B를 모두 지니는 건 불가)을 갖고 있을 경우 두 입자의 특징은 관측을 통해 상태를 확인돼야만 결정된다. 관측되기 전까지는 두 입자에 A와 B라는 특징이 ‘중첩’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후 한 입자가 A라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 관측을 통해 확인되면 나머지 입자는 자동으로 B 특징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한 입자의 특징이 결정됐을 때 나머지 하나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은 이 두 특징이 ‘얽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보어는 양자입자는 두 특징 중 하나의 상태만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양자입자가 관측될 때 비로소 중첩된 상태가 무너지며 상태가 결정된다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특히 양자 입자들이 얽힘 상태에 있다면 두 입자가 수십억 광년이 떨어져있다 하더라도 중첩 붕괴는 동일하게 나타나게 된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한 입자에서 A라는 특징이 결정되면 나머지 입자에 정보가 전달돼야 B라는 특징이 정해질 수 있는데, 보어의 해석에 따르면 정보 전달이 빛보다 빠르게 일어난다는 지적이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어떤 정보 전달도 빛보다 빠를 수 없기에 보어가 주장한 즉각적인 중첩 붕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통해 양자역학의 불완전을 증명하고자 한 에르빈 슈뢰딩거 또한 이같은 얽힘 현상을 보고 혼란스러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주장은 이른바 ‘EPR 역설(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역설)’을 만들어냈는데, 이 역설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것이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EPR 이론)’이다. 멀리 떨어진 두 입자를 각각 측정하는 것은 2개의 독립 사건이기에 국소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한 입자가 나머지 입자의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은 관측자가 알 수 없는 ‘숨은 변수’가 있다는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의 역설에 사망 선고 내린 벨과 클라우저…‘양자 얽힘’ 실재 실험으로 입증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은 이같은 EPR 이론에 완전한 사망 선고를 낸 이들에게 돌아갔다. 기존에도 학계에서는 EPR 이론이 잘못됐고 보어의 해석이 맞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으나 이를 실험적으로 입증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클라우저와 알랑 아스페, 안톤 자일링거 등 3명의 학자가 이를 실제로 입증해 낸 것이다.
EPR 이론의 허점을 처음으로 지적한 것은 영국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이다. 벨은 1964년 양자역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식 중 하나인 ‘벨 부등식’을 선보였다. EPR 이론이 맞다면 모든 통계적 예측이 벨 부등식에 부합해야 하고, 만약 단 하나라도 성립하지 못해 벨 부등식의 한계가 입증된다면 양자 얽힘이 존재한다는 보어의 해석이 맞다는 것이었다.
벨 부등식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를 실제로 인정받기 위해 필수적인 실험실에서의 구현을 이루지 못했다. 이같은 단점을 보완해 실험실에서 벨 부등식의 한계를 증명해내는 데 성공했다.
클라우저는 칼슘 원자의 광자 얽힘 상태가 존재함을 자체 설계한 광원(빛)을 통해 실험으로 증명해 냈다. 클라우저는 3명의 동료 물리학자들과 함께 벨 부등식을 다시 쓴 ‘CHSH 부등식’을 선보이며 현대 양자역학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처럼 양자 얽힘의 실재가 입증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이와 분리된 다른 공간에서 발생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국소성’이 적용되고 있다는 양자역학의 이론이 힘을 얻게 됐다.
클라우저의 실험 이후에는 아스페가 클라우저의 실험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 칼슘 원자가 ‘들뜬 상태’에서 ‘바닥 상태’로 떨어질 때도 얽힌 광자를 방출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자일링거가 양자 얽힘 현상을 실제 활용한 실험을 진행해 양자 상태를 한 입자에서 다른 입자로 멀리 이동시키는 ‘양자 순간이동’이라는 현상을 시연해내며 함께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학계에서는 이들이 양자 얽힘 현상이 실재함을 실험을 통해 입증해내면서 양자역학의 완전성이 증명됐고, 그 덕에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등 현대기술의 단초를 쌓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클라우저는 이날 행사 강연에서 양자 얽힘 현상의 증명을 두고 “80년 넘게 누구도 우리 방안에 있는 코끼리(누구나 알면서도 누구도 말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노력을 통해 양자역학에서 양자 얽힘을 설명할 수 없는 국소성 실체성은 죽었다는게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한편 클라우저는 이날 강연에 앞서 행사 축사를 통해 국내외 젊은 과학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자의 역할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검증하는 것”이라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나쁜 과학으로 가득 차있다. 자연에 대한 신중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잘못된 과학과 정보가 전파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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