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수제맥주에 빠져 4년간 주말마다 국내 브루어리를 순회하고 휴가철엔 독일, 벨기에, 미국 등 맥주 강국을 여행하던 직장인이 있다. 덕력이 쌓일 무렵 취미는 본업이 됐다. 꿈의 직장이라 불리던 공기업을 퇴사한 후 맥주 칼럼니스트를 자처한 것이 그 시작. 혼자서 브루어리 투어 전문 여행사와 맥주 홍보 대행사까지 창업하기도 했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2021년 국내 최초로 논알콜 수제맥주 전문 양조장 ‘부족한녀석들’을 창업한 황지혜 대표 이야기다. 황 대표는 단순 맥주 덕후를 넘어 맥주를 ‘업(業)’으로 삼기 위해 꽤 오랜 기간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결과가 바로 국내 최초 논알콜 수제맥주 ‘어프리데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토록 맥주 덕후인데 왜 ‘취하지 않는 맥주’를 개발한 걸까? 지인들조차 의아해했지만 황 대표의 목표는 확고했다. ‘논알콜 수제맥주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겠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전국의 170여 개 수제맥주 양조장이 설립되며 국내 맥주 종류가 다양해졌음에도 논알콜 수제맥주만큼은 여전히 불모지였다. 국내 대기업들이 무알콜 맥주*를 출시했지만 그 맛이 밍밍해 대중을 사로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미 소규모 양조장들의 논알콜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던 해외 시장과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이는 황 대표가 개발한 논알콜 수제맥주 어프리데이가 단기간에 주목받은 까닭이기도 하다. 여타 국내 무알콜 맥주와 달리 일반 맥주와 동일한 공법으로 양조한 것이 핵심. 그 결과, 어프리데이는 2022~2023년 연속으로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지난 4월엔 권위 있는 대한민국 국제맥주 대회(KIBA)에서 금·은메달을 거머줬다.
여기까지만 보면 맥주에 취해 덕업일치에 성공한 황대표의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 과정은 극히 험난했다. 실제 황 대표는 부족한녀석들로 주목받기 전까지 브루어리 투어 여행사와 맥주 홍보 대행사로 2번의 창업 실패를 맛봤다. 가장 성공하고 싶은 맥주 시장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이 괴로웠지만 ‘맥주로 끝장을 보자’고 다짐한 덕에 부족한녀석들을 창업할 수 있었다. 중꺾마를 몸소 실천하며 덕업일치를 이뤄낸 맥주 덕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꿈의 직장을 박차고 나온 맥덕
전자신문과 매일경제의 기자 그리고 국민연금공단의 언론홍보 담당까지. 직장이 달라져도 황 대표의 취미는 오직 맥주였다.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맥주를 마시고 연구하는 데 투자했을 정도다. 해외 여행도 맥주가 유명한 국가들만 골라 다녔다. 미국, 독일, 아일랜드, 벨기에, 영국 등 그 국가를 방문해서 맥주를 직접 마셔봐야 직성이 풀렸다. 한 국가를 수차례 방문한 적도 다반사다. 예컨대 영토가 넓은 미국은 동부, 서부, 중부마다 맥주의 향과 풍미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로 브루어리들을 섭렵해야 했다.
황 대표가 꼽은 가장 매력적인 해외 양조장은 벨기에의 깐띠용 브루어리다. 벨기에의 수도인 브리쉘에서만 볼 수 있는 람빅(Lambic) 맥주 브루어리 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시큼한 맛 때문에 ‘사워 비어’라고도 불리는 람빅은 다른 맥주 종류들과 제조방식이 다르다. 맥주 발효용으로 가공된 효모를 투입해 만드는 라거 및 에일과 달리, 람빅에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야생 효모를 가미한다. 브리쉘이 람빅의 성지인 이유 역시 람빅용 효모를 얻기에 대기 조건이 최적화됐기 때문이다. 실제 깐띠용 브루어리에선 목욕탕처럼 평평하게 개방된 발효통에서 맥주를 발효시키는 장관이 펼쳐진다. 효모 이외에 다른 미생물이 안 들어가도록 밀폐된 발효통에 맥주를 보관하는 일반 양조장에선 즐길 수 없는 볼거리다.
그렇다고 황 대표가 맥주를 마시고 양조장을 구경하기만 한 건 아니다. 황 대표는 양조를 배우는 데도 진심이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맥주 양조 관련 도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해외 원서를 독학해야만 했다. 모르는 단어를 일일이 검색하는 과정이 번거로웠지만 맥주의 풍미를 결정짓는 요소, 발효 과정에서의 주의점 등 새로운 맥주 지식을 알게 될 때마다 뿌듯했다. 배경지식을 쌓은 후엔 맥주 덕후들에게 실습실로 쓰이던 맥주 공방으로 향했다. 자동 온도 조절 기능이 탑재된 스테인리스 발효통과 대형 숙성고 등이 마련된 이곳은 황 대표에겐 놀이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국민연금공단에 재직하던 중 국내 맥주 전문 매거진 ‘비어포스트’에 다짜고짜 이력서를 보내기도 했다. 직장인 객원 에디터로서 활약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것. 모집기간이 아니므로 얼토당토않는 요구인 걸 알았기에 기자 경력과 맥주에 대한 애정을 상세히 기재했다. 다행히 비어포스트 측으로부터 글쓰기 경력과 맥주를 향한 진심을 인정받아 객원 에디터로 채용된다. 에디터라는 명목하에 브루마스터 등 양조장 관리인들을 인터뷰할 수 있게 되자 물 만난 듯 전국을 휘젓고 다녔다. 매달 말일쯤엔 본업에 마감 작업까지 겹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새로운 맥주 지식을 다룰 때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황 대표는 비어포스트 측에 또 다시 무모한 제안을 건넨다. 객원 에디터에 누구보다 열심히 임했으니 정규직으로 채용해달라는 것. 비어포스트 측도 그간의 콘텐츠 성과를 인정하며 제안을 수락했고 그렇게 황 대표는 국민연금공단을 퇴사했다. 이런 결정을 주변에서 우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시만 해도 공기업은 안정적인 꿈의 직장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대표는 맥주를 업으로 삼지 않아 나중에 후회할 바엔 차라리 일찍 뛰어들잔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어떻게든 성공할 것이란 자신감 역시 충만했다.
미지근한 맥주처럼 씁쓸한 실패를 맛보다
비어포스트에서의 경험은 그를 국내 맥주 업계의 연쇄 창업가로 이끌었다. 브루어리 투어에 특화된 1인 여행사 ‘비플랫’이 그 시작점이다. 이는 전국의 양조장을 탐방할 때부터 꿈꿔 온 사업이었다. 이색 브루어리 투어를 여행 패키지로 설계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부족한 창업 자금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하는 여행 프로그램 공모전 수상금으로 충당했다. 지역별 브루어리들을 엮어서 현장을 둘러본 후, 해당 양조장들의 맥주와 지역 특산물을 함께 맛보는 것이 황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국내에서 브루어리 투어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라 독창적인 아이템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이후 황 대표는 평소 브루어리를 여행하며 겪었던 불편함들을 보완해 투어 패키지를 완성했다. 지역 브루어리의 상당수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대형 버스를 지원한 것이 한 예다. 참가비는 인당 7~8만 원. 승승장구할 거라 예상했지만 1년 만에 폐업 절차를 밟게 된다. 참가자 수를 늘리기가 쉽지 않아 운영할수록 영업이익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맥주 축제에서 혼자 모집 안내 포스터를 돌리고, 인스타그램용 홍보 게시글까지 발행했지만 가장 중요한 투어 프로그램의 차별점이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국내 브루어리 투어가 보편화됨에 따라 직접 운전해서 양조장을 방문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점이 결정적이었다. 게다가 지역별 특산물 또한 쉽게 구매 가능한 터라 굳이 비플랫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고민 끝에 황 대표는 비플랫을 맥주 전문 1인 홍보 대행사로 피벗한다. 소규모 양조장 또는 맥주 관련 페스티벌을 알리는 대행사였다. 맥주 업계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결과였다. 언론사와 공기업 PR팀에서 켜켜이 쌓은 홍보 역량을 십분 발휘하겠다는 포부였다. 비어포스트 에디터일 때부터 교류해 온 맥주 업계 인맥이 있다 보니 사업 초반에 고객사를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혼자서 공유 오피스와 카페를 전전하며 보도 자료 및 카드뉴스 기획안을 작성했다. 그렇게 주말 없이 꼬박 2년을 일했지만 지인들 외에 신규 계약을 따내기가 녹록지 않았다. 끝무렵엔 월급을 못 챙겨가는 달이 반복됐고 안정적인 직장 생활이 그리워서 국민연금공단 사무실이 꿈에 나타난 적도 있다. 좋아하던 일이 고민거리가 되자 스트레스는 극심해졌고 황 대표는 결국 비플렛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논알콜이어야 했던 이유
그렇다고 맥주 업계에서 발을 빼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 기회란 각오로 두 번의 창업 실패를 교훈 삼아 반드시 덕업일치하길 꿈꿨다. 기존과 다른 접근법으로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투어 설계와 PR처럼 맥주와 관련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보단 국내 수제맥주 시장에서 본질적인 분야를 파고 들길 원했다. 정답은 분명했다. 국내 수제맥주 신(Scene)의 주역인 소규모 브루어리를 창업하는 것.
하지만 170여 개 맥주 양조장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차별점 없이 후발주자로 진입했다간 폐업의 전철을 밟을 게 뻔했다. 국내 수제맥주 업계의 틈새시장을 고민하던 중 해외 브루어리 투어에서 자주 접했던 논알콜 맥주가 떠올랐다. 이미 영국과 미국에선 이색적인 논알콜 수제맥주를 판매하는 지역별 양조장이 많았고, 그중에는 대규모 제조사로 급성장한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가령 미국의 ‘에슬레틱 브루잉’은 논알콜 수제맥주 전문 브루어리로 시작했지만 2021년 연생산량 기준 약 8000개에 달하는 미국 내 브루어리 중 20위권에 속했다. 당시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들의 연생산량을 합쳐도 에슬레틱 브루잉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논알콜 수제맥주 문화가 활기를 띠던 해외 시장과 달리 한국에선 소수 대기업의 무알콜 맥주만 유통됐다. 약 50년 전부터 수제맥주 시장이 태동한 영국과 미국에 비해 2014년을 기점으로 뒤늦게 성장한 국내 수제맥주 시장의 상황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문제는 그나마 판매되던 무알콜 맥주마저도 텁텁하고 밍밍한 맛 때문에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차선책으로만 인식됐다. 황 대표가 평소 무알콜 맥주를 마시던 지인들에게 만족도를 물어본 결과 모두 맛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알콜 분해 능력이 부족한 체질이어서 무알콜 맥주를 마시지만 차라리 안 마시는 게 낫다는 후기가 있을 정도. 알콜이 생성되는 발효과정을 생략한 채 최종 단계에서 탄산만 주입하는 무알콜 맥주의 제조공법상 맛이 좋을 리 없었다. 실제 국내 무알콜 맥주는 식품유형상 주류가 아닌 탄산음료에 속한다. 황 대표가 애초에 무알콜이 아닌 논알콜 맥주를 추구했던 이유 역시 맥주와 공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 무알콜 맥주의 한계 때문이다. 알콜에 취약한 타깃층을 비롯해 맥주 마니아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기 위해선 레시피가 제한적인 무알콜 맥주보단 논알콜 맥주가 적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황 대표는 누구나 맛있게 들이킬 수 있는 논알콜 맥주를 목표 삼았다. 실제 부족한녀석들의 어프리데이는 맥주와 동일하게 생산된다. 논알콜 맥주의 제조방식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앞서 설명했듯 알콜이 생성되지 않도록 발효과정을 생략하는 것. 맥아즙(보리즙)에 효모를 섞으면 효모가 맥아즙의 당을 흡수해 알콜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발효 과정이 일어나는데 이를 생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일반 맥주와 제조과정이 상이하므로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완성된 맥주를 가열해 알콜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의 경우 맥주가 가열되면 풍미의 일부마저 날아가기 때문에 최종 공정 단계에서 향료를 추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저온 살균 처리로 효모를 없애는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식과 마찬가지로 효모가 없으니 알콜이 생성되지 않지만, 저온이라고 해도 맥주에 열이 가해지기 때문에 맥주 본래의 맛이 훼손된다.
반면 부족한녀석들은 맥주 양조 공법을 그대로 따르되 알콜이 0.5만큼만 발생되는 특수 효모를 사용한다. 특수 효모란 맥아즙에 포함된 당 중 일부하고만 반응해 알콜을 적게 배출하는 효모다. 단가가 높고 기존 맥주 양조 설비에서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어 국내에선 사용되지 않았다. 황 대표에 따르면 특수 효모를 찾은 건 시작일뿐 어프리데이의 제조법을 완성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처음엔 맥주 덕후인 친구 2명이 창립 멤버로 합류하며 실습용 맥주 공방에서 시작했다. 맛있는 논알콜 맥주를 만들겠다는 포부와 달리 주어진 건 10L용 홈브루잉 장비뿐. 굴하지 않고 첫 샘플을 완성했지만 그 맛은 맥주라기보단 보릿물에 가까웠다. 알콜이 맥주의 바디감과 향 등 여러 맛 요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한 채 효모의 알콜 배출량을 줄이는 데만 치중한 것이 원인이었다. 특수 효모와 관련된 해외 원서와 논문 등을 수차례 정독한 결과 알콜 배출량과 함께 줄어든 바디감과 탄산 등을 보완하려면 맥아즙과 홉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또한 특수 효모가 적정량의 알콜을 생성하도록 최적의 발효 기간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장비와 인력 등 연구 조건은 열악했지만 요행을 바라진 않았다. 소용량으로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는 점을 장점 삼아 일주일에 몇 십 잔에 달하는 샘플을 마시며 맥아즙과 홉의 비율, 발효기간 등을 반복 조정했다. 6개월간 데이터를 일일이 기록하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최적의 수치를 찾는 데 성공한다.
2021년 레시피를 완성한 후엔 구로구 신도림동의 10평짜리 양조 시설을 차렸다. 그간의 아껴 썼던 창업 자금으로 얻은 땀과 눈물이 젖은 공간이었다.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하기 전 이곳에서 생산 여유분을 쌓은 후 격주마다 최대 60L를 추가 생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한정된 인력과 양조장 규모를 감안하면 부족한녀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황 대표는 동일한 레시피를 활용하더라도 생산량이 급증할 경우 맛의 편차가 생길 수 있음을 고려해 맥주 공방에서 사용하던 장비들을 그대로 공수했다. 목표 생산량만큼 10L용 브루잉 장비의 대수만 늘려 기존에 구현하던 맛을 최대한 유지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맥주 공방에서 신도림 양조장에 이르기까지 약 1년간의 노력 끝에 어프리데이를 개발했다. 황 대표는 수작업으로 캔마다 라벨을 붙이는 과정이 수고로웠지만 출고를 앞두고 쌓여있는 캔을 볼 때만큼은 피로가 풀렸다고 전했다.
한편 논알콜 수제맥주는 경쟁사들이 쉽게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사업 아이템으로 적합했다. 논알콜 또는 무알콜 맥주를 제조하지 않던 양조장들 입장에선 이를 생산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주류 제조 현장과 달리 국내 주류법상 음료에 속하는 논알콜 및 무알콜 맥주의 생산 시설은 해썹(HACCEP)* 인증을 필수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양조 공법과 해썹 인증 기준에 맞추려면 브루어리를 신설하거나 기존 대규모 설비를 개선해야 하는데 이런 비용을 부담하기란 쉽지 않다. 논알콜 수제맥주의 레시피 개발이 까다롭다는 점도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인이다.
*식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위해한 물질이 식품에 섞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과정의 위해요소를 관리하는 제도
'맛' 하나로 정면돌파!
어프리데이의 첫 판매 채널로는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활용했다. 신생 브루어리의 경우 펍 또는 공식 홈페이지를 여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황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논알콜 수제맥주의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자체 유통망을 개설하기보단 외부 쇼핑몰을 활용해 많은 소비자에게 노출되길 꾀했다. ‘국내 최초 논알콜 수제맥주’라는 어프리데이의 타이틀은 대중의 이목을 끄는 데 효과적이었다. 60L씩 추가생산할 때마다 매번 판매 시작일 이틀 만에 동이 날 정도로 인기였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상에서의 재구매율 또한 50%를 넘어섰다.
어프리데이의 시장성을 확인했으니 본격적인 홍보에 나설 차례였다. 그러나 부족한 인력이 발목을 잡았다. 황 대표의 팀원이 창립 멤버 둘뿐이며 이들마저도 양조 과정을 총괄하는 탓에 제품 홍보까지 관여할 여력이 없었다. 1인 창업가로서 홀로 홍보하는 것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황 대표 역시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민 끝에 그는 국내외 맥주 대회에 어프리데이를 출품하기로 마음먹는다. 맥주 마니아들의 관심이 쏠리는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이 가장 저비용으로 빠르게 입소문 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 그동안 쌓인 긍정적인 구매 후기들도 용기를 북돋아 줬다.
실제 어프리데이는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2022년부터 2년 연속 무알콜 맥주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지난 4월에는 대한민국 국제맥주대회(KIBA)에서 어프리데이 페일에일과 스타우트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다. KIBA는 세계 4대 맥주대회 출신의 심사위원 39명이 맥주마다 거품 밀도, 아로마 향, 목넘김 등 세세한 기준들을 수기로 평가해 권위를 인정받는 행사다. 기준에 차는 맥주가 없을 때는 아예 수상을 보류하는 탓에 KIBA에서 국내 브랜드가 금메달을 수상할 확률이 약 30% 임을 감안하면 어프리데이의 성적은 실로 놀라운 결과였다.
이후 황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국내 유명 대회에서 이름을 알리자 인스타그램 DM과 양조장 대표 번호로 오프라인 납품 문의가 들어온 것. 현재 어프리데이는 홍대, 성수, 가로수길 등 서울 주요 상권을 비롯해 부산과 울산 등 전국의 20개 업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최근에도 펍, 이탈리안 레스토랑, 맥주 보틀숍 등에서 꾸준히 문의가 들어오는 추세다. 황 대표는 “부족한녀석들이란 사명답게 인력도 부족한 만큼, 애주가들이 모인 접점에서 어프리데이를 알리는 데 힘을 쏟는 중”이라고 웃어 보였다.
현재 황 대표는 경기도 남양주시로 확장이전한 양조장에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진짜 맥주 같은 논알콜 맥주’를 더 다양한 맛으로 출시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논알콜이기 전에 수제맥주의 핵심 매력인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부족한녀석들의 CEO가 아닌 맥주 덕후 황지혜의 개인적인 목표는 국내 대표 맥주 칼럼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직접 브루어리를 운영하며 얻은 맥주 관련 경험들을 글로 풀어낼 계획이다.
황 대표는 덕업일치를 꿈꾸는 이들에게 “그 일을 안하면 진심으로 후회할 것 같을 때 도전해야 한다”고 전했다. 덕질이 본업이 되면 직장인일 때보다 더 많은 위기에 맨몸으로 부딪혀야 하므로 이를 감당할 각오가 됐을 때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신 또한 앞으로 어떤 고난에 직면할지 모르지만,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고난이라면 즐겁게 맞이할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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