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재무장관 회의서 협정 재개
원-엔 아닌 전량 달러화로 결정
‘환율 불안정’ 대비 안전장치 마련
세제 실무협의체도 운영하기로
한국과 일본 양국이 비상시 100억 달러를 서로 빌려주는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상황에서 자금 유출과 환율 불안정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은 경제 협력을 강조하면서 내년에는 한국에서 한일 재무장관회의를 열기로 했다.
● 전량 달러로 빌려줘 달러화 확보에 용이
2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일본 재무상은 일본 도쿄에서 한일 재무장관회의를 열고 2026년 6월까지 3년간 1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통화 스와프는 외환위기 등 비상시에 자국 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사전에 정해진 환율로 상대국 통화나 달러를 빌려오는 것으로 ‘마이너스 통장’의 성격을 지닌다. 현재 한국은 캐나다, 중국 등과 총 9건, 약 1382억 달러 상당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추 부총리는 “한일 통화 스와프는 3월 한일 정상회담 이후 빠르게 회복되어 온 한일 관계가 금융 협력 분야에서도 복원되었음을 보여주는 성과”라고 말했다. 스즈키 재무상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은 엔화 및 원화 신뢰도에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정은 2015년 종료 당시 한일 통화 스와프가 달러화 스와프였던 점을 감안해 전량 달러화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한국이 원화를 맡기면 일본이 최대 100억 달러를, 일본이 엔화를 제공하면 한국도 최대 같은 규모의 달러를 빌려주게 됐다. 엔화가 아닌 달러로 스와프가 체결되면서 달러 확보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일 통화 스와프는 양국 관계 개선에 맞춰 경제 협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일본 정부 당국자는 “한일 관계 개선에 있어 통화 스와프는 일종의 필요한 기계 부품 같은 것이라 없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 재무성은 한일 통화 스와프 재개를 검토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에 반대하는 한국 야당의 움직임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에 처한 걸 중점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주요 20개국(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국제조세 논의가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한일 세제 당국 간 실무협의체도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또 2016년 이후 중단된 관세청장 회의도 올 하반기(7∼12월) 한국에서 개최하고, 내년에는 한국에서 제9차 한일 재무장관회의를 열기로 했다.
● 전문가들 “환율 안정 효과 있어”
한국은행은 이번 한일 통화 스와프로 인한 경제적 효과보다는 그간 소원했던 양국 간 경제 관계를 복원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서 19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한일 통화 스와프는 환율 안정 등 경제적 요인보다는 한국과 일본 간 경제 교류, 기업 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양국 경제 관계가 회복됐다는 측면에서 상징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이 한일 통화 스와프의 경제적 효과보다 상징성에 더 주목하는 건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수준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210억 달러다. 4월 말 기준(약 4267억 달러)으로는 세계 9위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지난달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고 있고, 단기부채의 2.5배를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다. GDP 대외투자비가 45%인 점을 감안하면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당장 외환시장에 외화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외화 부족에 대한 불안이 줄고 환율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며 “특히 환차손에 따른 손익을 최소화하는 측면에서 이번 통화 스와프가 달러로 체결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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