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설업의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하는 모듈러
2: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 공사기간 40% 단축
3: 공사비·환경 문제 줄이고, 생산성은 크게 올려
4: 국내시장은 걸음마…해외는 이미 121조 규모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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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건설 산업의 혁신 아이콘으로 부상할 것입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경기 용인시 영덕구에서 진행된 공공임대주택(‘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 준공식에 참석한 뒤 기념사에서 “건설 산업의 미래 먹거리임에도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만큼, 정부와 업계가 합심해서 성장 잠재력을 힘껏 끌어 올리겠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날 지어진 주택은 지하 1층, 지상 13층에 106채가 들어선 1개 동짜리 신축 아파트였습니다. 100층 높이의 건축물을 짓고, 수십 미터 깊이의 지하터널도 뚫을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시대에 이 정도 규모라면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원 장관이 큰 기대를 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답은 ‘모듈러 공법’을 적용해 지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모듈러 공법은 기본 골조와 전기배선, 현관문, 욕실 등 아파트의 70~80%를 공장에서 미리 만든 뒤 아파트 단지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짓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탈현장 건설(Off-site Construction)’ 또는 영어 단어의 앞글자만 따서 ‘OSC’라고도 부릅니다.
모듈러 공법은 수천 년 이어져온 인류의 건설공사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일반적인 건설공사는 공사현장에 각종 자재들을 가져와 수많은 인력이 달라붙어 쌓고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즉 거의 모든 작업이 사람의 손을 거쳐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반면 모듈러 공법은 전체 작업의 70~80%가 공장에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적잖은 작업은 로봇 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건설공사 기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들쑥날쑥한 공사품질도 균일화할 수 있습니다. 건설공사 품질과 생산성이 제조업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의미의 건설업은 앞으로 점점 설자리가 좁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국내 건설업은 주 52시간 노동, 강성의 건설노조 및 전문건설 인력의 노무비 상승, 폭발하는 민원 등으로 공기지연과 원가상승 등과 같은 문제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모듈러 공법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는 모듈러 공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스웨덴은 전제 주택시장에서 모듈러 공법 활용 비율이 무려 4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영국 싱가포르 미국 등에서는 이미 30층을 훌쩍 넘는 고층 건축물까지 등장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제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수준이어서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원 장관의 기대대로 모듈러 공법 활성화는 한국 건설업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을까요.
● “9개월 공사를 1개월 만에 끝냈습니다”
그 가능성을 짚어보기 위해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의 건설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진행 중인 ‘중고층 모듈러주택 실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입니다. 또 모듈러 공법으로 13층 높이의 아파트를 지은 건 전 세계에서 6번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체 아파트는 106채이며, 전용면적 기준 17㎡ 크기의 원룸(거실·방+화장실+주방) 102채와 37㎡ 크기의 신혼부부용 주택(거실+방2+화장실+주방) 4채로 이뤄져 있습니다. 준공 승인까지 마쳐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고 앞으로 청년들(80채)과 고령자(13채), 주거약자(9채), 신혼부부(4채) 등의 보금자리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13층 가운데 스포츠시설 등 주민공동시설과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지하 1층과 지상 1~2층, 건물 전체의 지지대 역할을 맡아줄 계단실과 엘리베이터실 등은 일반 아파트처럼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해 지었습니다. 건물 전체 하중을 떠안는 부분으로 안전을 고려한 조치입니다.
나머지 지상 3~13층까지 11개 층은 충북 진천에 위치한 공장에서 사전 제작됐습니다. 과정은 ‘자재절단-모듈(아파트 유니트) 조립-철근배근-아파트 바닥 콘크리트 타설-전기배관배선-외부마감-실내마감’ 등 7단계로 진행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발장, 옷장, 화장실 등과 같은 가구와 가전제품 등도 설치했습니다.
만들어진 컨테이너 박스 모양의 모듈은 모두 120개였습니다. 아파트 17㎡ 짜리 102개와 34㎡ 짜리로 연결하기 위해 제작한 17㎡ 짜리 8개, 지붕, 옥상용 모듈 등 10개입니다. 34㎡ 아파트 모듈을 굳이 17㎡ 2개로 나눠 제작한 이유는 운반할 때 적용되는 도로교통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단일 화물의 중량이 25t을 넘길 수 없는데, 이를 맞추려면 현재로서는 25㎡ 이내 규모만 가능합니다.
이후 용인 영덕 현장까지 운반한 뒤 레고 블록을 쌓듯 조립해 붙여나갔습니다. 공사기간은 터파기부터 준공까지 13개월로 일반적인 공법을 활용한 아파트 건설기간(표준공기 기준·20~21개월)보다 35~40% 정도 줄었습니다.
시공을 맡은 현대엔지니어링의 김경수 현장소장은 “3~13층까지 모듈을 쌓는 과정에 50일이 소요됐다”며 “노조 파업 등과 같은 외부변수만 없었다면 30일 이내 처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 과정을 기존 방식대로 지었다면 최소 9개월 정도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특히 이번 주택을 짓는 과정에서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 건축물이 콘크리트 건축물에 비해 부실하다는 편견을 없애는 데 주력했습니다. 지진, 화재, 운반·시공 단계에서 안전 연구와 검증을 진행했고, 층간소음 차단 기술도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지진 강도 6을 견딜 수 있고, 불이 나도 3시간 이상 버틸 수 있는 층간소음 3등급의 주택이 완성됐습니다.
실제로 외면만 봐서는 일반 공법으로 지어진 것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김 소장은 “‘힐스테이트’ 브랜드에서 사용되는 최고급 마감재와 전자제품 등을 설치했다”며 “일반적인 공공임대아파트보다 훨씬 고급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사망사고 1위 건설업의 대안으로 큰 주목
이러한 모듈러 공법의 장점은 우선 공사기간 단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모듈러 공법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일반 아파트를 지을 때 6개월 이상 걸리는 공사기간이 평균 30~40일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공사기간 단축은 공사비 감축으로 이어집니다. 공사기간이 줄어든 만큼 인건비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소음이나 분진 발생이 적기 때문에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민원 대응에도 효과적입니다. 주요 선진국에서 적극적으로 모듈러 공법을 활용하는 직접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장에서 전체 공정의 70~80%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공사비가 줄어듭니다. 자재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목재 철근 등 각종 자재를 주문해서 현장 상황에 맞춰 잘라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투리 등 건설 폐기물이 생기기 일쑤입니다. 반면 모듈은 규격이 정해져 자재를 맞춤 제작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한번 기존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건축물과 달리 만들어진 모듈을 고스란히 재활용 또는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경비를 그만큼 줄일 수 있고, 탄소 절감에도 효과적입니다. 국토부는 모듈러 공법을 활용해 주택을 지을 경우 90% 이상 재활용 가능한 철골 구조 활용을 통해 기존 건설방식 대비 탄소배출량을 44%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건설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낮은 생산성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건설업종은 전통적으로 노동집약적인 산업인데, 숙련공의 부족과 노령화가 심각합니다. 게다가 현장마다 다른 시공방식으로 인한 표준화가 어렵습니다. 그 결과 건설업은 현장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전체 공정의 57%를 넘는다는 해외 연구기관의 분석도 있습니다. 이는 제조업(12%)을 크게 웃도는 것입니다.
최근 산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중대재해처벌법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각종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근로자 사망사고 등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산업재해, 특히 사망사고 발생 1위는 건설업계가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전체 중대재해 사고는 611건이고 사망자 수는 64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건설업은 사고 328건에 사망자수는 341명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사고 건수는 7.1%(25건)가 줄고, 사망자 수도 5.0%(18명)나 감소한 것이지만 여전히 전체 사고 중 절반 이상인 53.0%을 차지했습니다. 기후변화 등 변수 발생이 많은 옥외 작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업종 특성 탓입니다. 모듈러 공법을 적극 도입한다면 외부 작업이 줄고, 사고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질 수 있습니다.
● 국내 대형 건설사, 참여 잇따라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 건설시장이 국내외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국내시장은 올해 2500억 수준으로 올라서고, 2030년에는 2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세계 모듈러 건축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2022년 기준 약 121조 원 규모로 추산되며, 2030년까지는 약 2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특히 초거대 미래형 신도시인 ‘네옴시티’ 건설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모듈러 공사가 발주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국내 건설업체들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이번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의 시공을 주도했던 현대엔지니어링은 2012년부터 모듈러 공법에 대한 연구개발 및 시공 역량 확보를 위한 노력을 펼쳐왔습니다. 또 이번 사업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 말부터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도 모듈러 주택(‘가리봉 구 시장부지 복합화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을 지을 예정입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포스코건설, 포스코A&C 등 3사도 올해 글로벌 모듈러 시장 진출을 위해 손을 잡았습니다. 3사는 업무협약을 통해 국내는 물론 중동 등 글로벌 모듈러 시장 개척에도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GS건설은 이미 2020년 영국과 폴란드의 모듈러 주택전문업체를 인수하면서 시장 참여를 선언한 상태입니다. 이밖에 DL이앤씨, 코오롱글로벌 등도 모듈러주택 사업 참여를 공식화했습니다.
하지만 활성화를 위해 넘어서야 할 걸림돌도 적잖습니다. 무엇보다 철근콘크리트 등과 같은 재료를 활용해 현장에서 대거 인력이 투입되는 건설방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각종 제도가 모듈화 활성화에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특히 건축물의 ‘내화 기준’은 시급하게 조정해야 할 요소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내화구조란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일정 시간 동안 불이 번지지 않거나 열을 견뎌야 하는 기준입니다. 해당기준은 일정 두께 이상이 됐을 때는 불에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하는 데 모듈러 건축의 경우 콘크리트 벽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만큼 실효성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조봉호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고층건물의 내화기준이 2시간 기준인데, 한국은 3시간이다”며 “이로 인해 모듈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줄이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국제 표준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듈러를 포함한 공업화 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극복해야할 과제입니다. 국내에서는 1980~1990년대에 모듈러 공법과 비슷한 PC공법(Precast concrete)을 활용한 조립식 주택이 유행했습니다.
PC공법은 기둥이나 벽 등과 같은 구조물을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해 사전에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해 짓습니다. 반면 모듈러 공법은 철골구조물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구조물 이외에 아파트 한 채에 들어가는 화장실, 가구 등을 사전에 모두 제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1988년 PC공법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아파트가 올림픽선수기자촌입니다. 그런데 당시 PC공법으로 지어진 아파트 가운데 구조와 구조를 연결하는 연결부위에서 물이 새거나 단열 부실 문제 등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발코니 등 일부 시설물이 떨어져나가는 일이 터지면서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조립식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빗발쳤고,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PC공법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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