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과 HD현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초대형 프로젝트 수주와 공장 건설에 각각 나서 ‘제2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현대건설이 속한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사장 등 ‘범현대가(家)’ 3세대 리더들이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개척한 ‘중동 붐’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6월 24일(현지 시간) 현대건설은 사우디 다란에 위치한 아람코 본사에서 50억 달러(약 6조5700억 원) 규모의 ‘아미랄 석유화학콤플렉스 패키지 1과 패키지 4’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수주는 국내 기업이 지금까지 사우디에서 수주한 공사 중 가장 큰 규모이자,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해외 수주 500억 불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국토교통부가 ‘제2 중동 붐’ 조성을 위해 ‘원팀코리아’를 구성한 이후 수주한 첫 번째 대규모 프로젝트다.
사우디 최대 석유화학단지 수주
아미랄 프로젝트는 사우디 국영 석유·천연가스 기업 아람코가 발주한 사우디 최대 규모 석유화학단지 건설 사업이다. 사우디 유전 중심지인 담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70㎞ 떨어진 주바일에 위치하며, 기존 사토프(아람코와 프랑스 토털에너지 합작법인) 정유공장과 통합 조성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등급의 저부가가치 원료를 활용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설비와 최첨단 폴리에틸렌 생산설비, 부타디엔 추출설비, 기타 기반시설 건설이 포함된다. 현대건설은 이 초대형 프로젝트 중 패키지 1과 패키지 4를 공사한다. 패키지 1은 아미랄 프로젝트의 핵심인 MFC(Mixed Feed Cracker: 혼합크래커)를 건설하는 공사로, 공정 부산물을 활용해 에틸렌을 연간 165만t 생산하는 설비다. 패키지 4는 고부가가치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주요 인프라 및 기반설비, 탱크 등을 포함한 시설 건설공사다. 현대건설은 이번 프로젝트를 설계·구매·건설 등 공사 전 과정을 일괄 수행하는 턴키방식으로 수주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1975년 사우디 건설시장에 처음 진출한 이래 사우디 정부 및 고객사의 신뢰를 기반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아미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K-건설 입지를 더욱 확고히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는 사우디에 해외 첫 엔진 생산 공장을 세운다. HD현대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사우디아람코개발회사(SADCO), 사우디 산업투자공사 두스르와 공동 투자한 엔진 합작사 마킨(MAKEEN)이 사우디 라스알카이르에서 엔진 공장 착공식을 가졌다고 6월 25일 밝혔다. 이곳에서는 HD현대중공업의 중형 국산 엔진 ‘힘센(HIMSEN)’이 생산될 예정이다. 힘센엔진은 현재 중남미·중동·아시아 등 4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이 40%에 이른다. 합작 엔진 생산 공장은 사우디 동부 주바일 인근 라스알카이르 지역 킹살만 조선산업단지에 축구장 약 21개에 이르는 15만㎡ 규모로 건립된다. 이 공장은 2025년부터 본격 가동돼 연간 선박용 대형 엔진 30개, 중형 엔진 235개, 선박용 펌프 160개를 생산할 예정이다.
엔진 생산 공장이 들어서는 킹살만 조선산업단지에는 HD한국조선해양과 사우디아람코개발회사, 사우디 국영 해운사 바흐리 등이 합작해 건설 중인 500만㎡ 규모의 중동 지역 최대 조선소 IMI도 자리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IMI 조선소는 정기선 사장 주도로 추진하는 HD현대의 핵심 프로젝트로, 올해 말 준공이 목표다. HD현대는 사우디에 2017년 합작조선소 IMI, 2020년 엔진합작사 등을 설립한 바 있으며, 2019년 아람코는 현대오일뱅크에 약 1조3000억 원을 투자하며 2대 주주에 오르는 등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중동 붐 다시 일으키는 범현대家
현대건설의 아미랄 프로젝트와 HD현대의 엔진 생산 공장이 들어서는 주바일 지역은 1970년대 ‘중동 붐’을 이끈 ‘주바일 항만 공사’를 수주한 곳이다. 1976년 현대건설이 입찰을 따낸 주바일 항만 공사의 수주 금액은 9억6000만 달러로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25%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이후 현대건설은 ‘중동 붐’을 일으키며 고속성장을 했다.
현대그룹의 최초 중동 진출은 현대건설이 1975년 수의계약으로 따낸 이란 반다르 압바스 동원훈련조선소 건설공사였다. 이 공사는 800만 달러 규모로 계약을 체결한 후 공사가 추가돼 1976년 12월 1027만 달러 규모로 완공됐다. 이어 현대건설은 바레인 아랍수리조선회사의 조선소 건설, 두바이 발전소 공사,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만 확장 등 중동에서 다수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중동 진출 성과로 현대건설은 총자산이 1976년 1967억 원에서 1980년 9723억 원까지 불어나 대망의 자산 1조 원 시대를 바라보게 됐다. 첫 중동 진출이 이뤄진 1975년 191명에 불과하던 현대건설 해외 근무 인원은 1980년 2201명으로 6년 만에 11배 넘게 증가했는데, 이는 전 임직원의 31.6%에 해당하는 비중이었다. 1979년 두 번째 오일쇼크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국내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이 같은 성장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중동 붐으로 급성장한 현대건설은 2013년 11월 해외 수주 누계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당시 현대건설의 지역별 수주 실적은 중동 547억 달러(54%), 아시아 319억 달러(32%), 아프리카 72억 달러·중남미 38억 달러(4%)였다. 특히 사우디에서 활약이 눈에 띈다. 현대건설은 사우디 진출 이후 반세기 동안 약 232억 달러 규모, 총 170여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우디에 주요 인프라를 구축했다. 현재 현대건설은 지상 최대 프로젝트로 불리는 사우디 네옴시티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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