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벌이를 모두 쏟아 부어도 대출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가계 대출자가 17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금리 시대에 취약차주의 빚은 1조2000억원 늘어나며 이들의 대출 잔액은 총 94조8000억원에 달했다. 가계의 빚 부담이 금융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DSR 100% 차주만 175만…가계대출자의 8.9%
3일 한국은행이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국내 가계 대출자는 1977만명으로 이들이 빌린 돈은 1845조3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70%를 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70% 이상인 대출자는 299만명에 달했다.
최저 생계비를 제외한 연소득을 모두 빚을 갚는데 쓰는 이들로 분류되는 DSR 70% 차주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린 지난해에만 22만명이 증가했다.
특히 DSR이 100%를 넘어서는 대출자는 전체의 8.9%로 집계됐다. 연소득을 모두 대출 원리금을 갚는데만 써야하는 이들이 175만명에 달한다는 얘기다.
◆ 취약차주 대출 1Q에만 1.2조 늘어…95조 육박
문제는 갚을 능력이 부족한 취약차주의 부실이다. 취약차주는 3곳 이상 금융기관으로 부터 빚을 낸 다중채무자면서 저신용(7∼10등급) 또는 저소득(하위 30%)인 대출자를 뜻한다.
한은이 이날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 에 따르면 올 1분기 취약차주 대출잔액은 94조8000억원으로 전년동기(93조6000억원)에 비해 1조2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최근 고금리에 가계 대출과 차주 수가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올 1분기 가계 대출 잔액은 1845조3000억원으로 1년 새 7582만원 감소했다.
취약차주 수는 125만명으로 1년새 1만명 감소하면서 1인당 대출 잔액은 7582만원으로 108만원 늘었다. 취약차주들이 이자를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이른바 ‘돌려막기’ 대출이 늘었음을 짐작게한다.
◆ 상승 전환 ‘금융취약지수’…더 높아진다
취약차주의 대출 증가세가 금융불안정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에 가파르게 치솟았던 대출금리가 올 1분기만 해도 주춤했지만, 최근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5월 신규취급액 기준 대출금리는 연 5.12%로 한 달 사이 0.11%포인트(p) 올랐다. 지난해 12월 이후 줄곧 하락세였던 대출금리는 6개월 만에 반등했다. 미국이 긴축 기조를 시사하면서 금융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등의 지표 금리가 상승한 이유가 크다.
한은 역시금융불안정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 한은의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금융불균형 상황과 금융기관 복원력을 반영하는 금융취약성지수(FVI)는 올해 들어 48.1%로 소폭 상승했다.
금융취약성지수는 2021년 2분기 58.5까지 치솟은 후 3분기 57.2, 4분기 53.7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1분기에는 51.9, 2분기 47.4, 3분기 44.9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 2007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장기 평균은 39.4%다.
문제는 2분기에도 더 치솟을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김인구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4월 이후 늘어난 가계대출로 금융취약성 지수가 더 오를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도 취약차주의 늘어나는 빚 부담에 대해 우려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늘어나는 가계부채도 문제지만, 취약차주이 더 큰 위험 요소”라면서 “연체율 증가가 눈에 띄는 가운데 원리금 상환 유예 중단 이슈 등에 따라 위험 가능성이 확대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가계 부채 증가세는 소비 부진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2금융권 등 특정 금융 기관에 집중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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