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NOW]
“시간 아까워” 좋아하는 것도 ‘빠르게’… 조리시간 없는 냉동식품 매출 20% 증가
딴짓 하며 책 읽을 수 있는 ‘청서’ 인기, 장보기 대행도 성황… 외주 일상화
시간 효율 따지는 심리 읽어야
“10분 넘어가는 영상은 무조건 2배속으로 시청해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시간은 없지만 넘쳐나는 콘텐츠를 시청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2시간짜리 영화를 요약 영상으로 즐긴다. 줄거리와 상관없는 풍경, 일상 장면은 건너뛴다. 영화를 보기 전 다른 사람들이 분석해놓은 해석을 읽거나 결말을 미리 봐둬 내용의 이해도를 높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현상을 일컫는 ‘타이파(タイパ)’란 신조어도 생겼다. 일본의 한 출판사가 선정한 2022년 10대 신조어 중 1위를 차지한 이 단어는 ‘타임 퍼포먼스’란 뜻이다. 한국어로는 ‘시간 대비 성능’을 따진다는 의미에서 ‘시성비’로 옮길 수 있겠다. 중국에도 유사한 신조어가 있다.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경제’란 뜻의 ‘란런(懶人)경제’다.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울 수 있도록 시간을 아껴주는 편의 증진 서비스의 성장을 뜻한다. 한국에도 유사한 단어가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발표한 ‘편리미엄’이란 단어인데, ‘편리한 것에 프리미엄(추가 요금)을 기꺼이 지불하는 트렌드’를 의미한다.
한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시간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행동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불필요하게 소요되는 시간을 축소한다. 영상을 즐길 때 도입부는 건너뛴다. 가요를 들을 때에도 전주 부분은 듣지 않는다. 인터넷 강의처럼 정보 전달이 목적인 영상은 무조건 배속으로 시청한다. 식품 시장에서는 손질된 재료를 간단하게 조리하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조차 번거롭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덕분에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냉동즉석식품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롯데마트의 ‘오늘좋은’, 이마트의 ‘피코크’와 같은 즉석식품 판매가 전년 대비 20%씩 증가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에서도 냉동 가정간편식(HMR)을 2023년 6월 신규 출시했다.
둘째, 한 번에 여러 행동을 하는 동시 활동을 즐긴다. 출판 시장에서는 동시 활동에 유리한 오디오북의 인기가 높다. 책을 읽는 대신 듣는다고 해서, 독서(讀書)가 아니라 청서(聽書)라 불리기도 한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애플은 2023년 1월 인공지능(AI)이 책을 읽어주는 ‘디지털 내레이션’을 출시했다.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는 2021년 오디오북 플랫폼 ‘파인드 어웨이’를 인수했다. 국내 오디오북 업체인 밀리의 서재, 웰라에서도 성우, 아나운서, 뮤지컬 배우 등과 협업해 오디오북 콘텐츠를 만든다. 최근에는 드라마, 영화, 웹툰까지도 오디오로 제작된다. 심지어 TV, 노트북, 스마트폰 같은 디스플레이에 각기 다른 영상을 틀어놓고 동시에 여러 종류의 콘텐츠를 감상하는 소비자도 등장하고 있다.
셋째, 아예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외주화를 활용해 시간을 아낀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의 ‘B마트’는 장보기를 대신 해주는 서비스다. 식재료는 물론 와인, 샴페인 같은 주류부터 스마트워치, 진공청소기 같은 전자제품까지 주문 후 20분 안팎이면 받아볼 수 있다. 미국 ‘인스타카트’ 역시 대신 장보기로 유명한 서비스다. 필요한 물건을 입력하면 집 근처에 있는 셀러가 가장 가까운 식료품점을 방문해 대신 제품을 구매해 소비자의 집까지 배송해준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시간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행동은 과거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예전에는 하기 싫은 일을 대체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콘텐츠 시청처럼 비교적 재미있는 행동에서조차 시간의 가성비를 추구한다.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시간을 더 많이 쓰는 모습도 나타난다. 2시간짜리 영화를 10분으로 요약한 쇼트폼 영상을 즐기면서도,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시청한다. 평소에는 음식을 먹고 준비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즉석식품을 애용하면서도, 가끔은 식사 한 번에 2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식당을 방문하기도 한다.
시간을 소비하는 트렌드에 담긴 시사점은 사람들이 시간을 무조건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행동이라도 소비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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