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가격 경쟁력 앞세워 韓 위협
“수출시장 韓日경합도 낮아졌지만
연말까지 지속땐 수출 리스크 커져”
日정부, 엔화약세속 투자유치 공세
8년 만의 ‘슈퍼 엔저’ 시대를 맞으면서 국내 부품·철강·화학업계가 일부 악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수출 시장에서 경합하는 정도가 낮아지면서 2010년대 중반 엔저 사태 때의 충격은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엔저 현상이 지속된다면 관련 업계의 수출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5∼2021년 한국과 일본의 품목별 수출경합도는 △석유제품 0.848→0.739 △자동차 및 부품 0.704→0.653 △전기·전자제품 0.704→0.653 △철강·비철금속제품 0.535→0.526 등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수출경합도가 1에 가까울수록 수출 시장에서 경쟁하는 품목 비중이 높다는 의미이고, 0에 가까울수록 그 반대다. 과거 일본 기업들의 주력이었던 전자·반도체 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며 겹치는 항목이 꾸준히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10여 년 전 엔저 시기에 비해 주력 산업 분야 전반에서의 타격은 줄었지만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우리 대기업들과의 경쟁 구도는 남아 있다. 부품업계의 경우 전장용으로 쓰이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반도체 기판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등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에서 무라타, 이비덴, 신코 등 일본 기업들이 국내 기업과 경쟁하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경쟁 시장인 중국 등에서 수요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엔저 흐름이 지속될 경우 일본 경쟁사들이 엔저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울 수 있어 고전이 예상된다.
중국 철강업계의 저가 공세와 고품질을 내세운 일본 철강업계 사이에 낀 국내 철강사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세청 등에 따르면 올해 1∼5월 한국에 수입된 일본의 열간압연제품(열연 코일 등)은 총 136만 t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113만8300t)보다 약 19.5%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일본산 철강 제품 가격이 10∼20% 가까이 싸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값싼 철강이 동남아와 국내 시장에 유입되면서 골치가 아팠는데 이번에는 일본 제품이 싸게 풀리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화학사들이 앞서고 있는 정밀화학 분야와 반도체 소재,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를 비롯한 신성장 수출 시장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배터리 분리막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23%, 일본이 19%로 주도권 다툼이 팽팽하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신규 진입도 많은 시장”이라며 “추가 수주하는 데 있어 일본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다면 그만큼 위협이 되지 않겠나”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슈퍼 엔저가 장기화할 경우 결국 국내 업계 수출에 리스크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의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엔화 약세 폭이 지금보다 커지거나 장기화될 경우 철강, 화학공업 제품, 전기·전자제품 등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다수 업종에서 한일 수출경합도가 지속 하락하는 등 상황이 달라진 측면이 있어 부정적 여파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를 무기로 한 일본 정부의 투자 유치 공세도 이어지고 있다. 본격적인 엔저 흐름이 시작되던 지난해 10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엔화 약세를 최대한 활용해 반도체와 배터리 공장 건설을 장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일본은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로부터 86억 달러(약 11조 원) 규모의 신규 공장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는 등 반도체 굴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