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5000만원’인 세액공제 한도
1억~1억5000만원으로 증액 거론
세무사에 증여세 상담 크게 늘어
일부 박탈감… “자녀에 미안한 마음”
“아들딸이 결혼할 때는 세금 안 내고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다는데 얼마까지 줄 수 있는 건가요? 당장 5000만 원 넘게 주려는데 세금을 덜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서울 강남에서 증여 전문 세무사로 일하는 A 씨에게는 최근 이 같은 문의가 크게 늘었다. 정부가 결혼자금에 한해 증여세 공제 한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관심이 커진 것이다. A 씨는 “일주일 새 비슷한 문의 전화가 10건 이상 왔다”고 말했다.
● 세무사들에 증여세 관련 문의 빗발
기획재정부는 이달 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결혼자금에 한해 증여세 공제 한도를 더 높이기로 했다. 현재는 성인 자녀 기준으로 ‘10년간 5000만 원’이다. 10년 동안 자녀에게 증여하는 재산은 5000만 원까진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를 결혼자금에 한해 1억∼1억5000만 원으로 높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구체적인 한도 금액 등을 포함한 세부 내용은 이달 말 발표하는 세법 개정안에 포함될 예정이다.
정부의 발표 이후 일선 세무사 사무실에는 증여세 관련 상담이 크게 늘었다. 증여세 감면 한도가 어디까지일지, 결혼자금의 구체적 기준은 어떻게 될지 등이 관심거리다. A 씨는 “증여 관련 문의의 90% 이상은 결혼을 앞둔 자녀에게 전세자금 등을 지원해 주고 싶다는 내용”이라며 “그중에서도 5000만 원을 넘겨 증여하려는데 세금을 줄일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는 문의가 대다수”라고 했다.
세무사들은 증여세 관련 문의가 집값이 많이 뛴 2020∼2021년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자녀들이 살 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면서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유가증권 등을 포함한 총 증여 재산은 전셋값이 고점을 찍은 2021년 53조8099억 원까지 늘었다. 공제 한도가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늘어난 2014년(15조2249억 원)과 비교하면 3.5배 더 많은 규모다. 증여 건당 평균 금액도 같은 기간 1억4400만 원에서 1억9500만 원으로 35% 증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증여액 1억∼2억 원 정도는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확인되지 않은 글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세무사 B 씨는 “5000만 원 이상 증여 시 증여세를 피하려면 차용증을 쓰고 이자도 줘야 한다고 안내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차용증을 썼더라도 자녀가 이자를 꼬박꼬박 안 줘서 결국 ‘세금 폭탄’을 맞고 뒤늦게 상담하러 오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했다.
● “물가 감안해 한도 올려야” vs “서민들은 박탈감 느껴”
정부는 9년 동안 오른 물가 등을 반영해 공제 한도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탈세도 많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5000만 원 이상 증여를 하면서 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가 다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의 증여세 공제 한도 확대 검토는 그간 암암리에 이뤄지던 증여를 양성화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 대책에 박탈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나온다. 곧 결혼할 자녀를 둔 직장인 이모 씨(62)는 “공제 한도가 1억∼1억5000만 원 수준으로 정해지면 ‘이 정도는 다들 지원을 해준다’는 기준처럼 여겨질 것 같다”며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이 그 정도가 되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실효성을 두고도 의문이 제기된다. 직장인 황모 씨(30)는 “결혼자금으로 1억 원 이상 줄 수 있는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인데 증여세를 깎아준다고 해서 안 하려던 결혼을 할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저출산 대응의 일환으로 이번 대책을 내놓으며 “결혼과 출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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