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정지→재개→다시 정지… 혼란 키운 거래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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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그룹 3사 거래정지 번복 등
‘우왕좌왕’ 결정에 투자자들 분통
“거래소 믿고 투자했다 큰 손해”
거래재개 이유-시점 명확히 해야

“거의 전 재산을 투자했는데 갑자기 다시 거래정지가 돼서 매일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면서 살고 있어요.”

최근 한국거래소에서 거래가 정지된 이화그룹 3사(이화전기, 이아이디, 이트론) 중 이아이디에 2500만 원을 투자한 A 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올 3월 지인 추천으로 이아이디 주식에 1500만 원을 투자했지만 5월 10일 이아이디 주식 거래가 갑자기 정지됐다. 바로 다음 날 거래가 재개되자 A 씨는 문제가 해결된 줄 알고 이아이디 주식 1000만 원어치를 추가로 샀다. A 씨는 “거래소의 거래재개 결정을 믿고 추가로 투자했는데 전 재산을 날릴까 봐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화그룹 계열 3사는 두 달 넘게 주식 매매가 정지된 상태다. 앞서 거래소는 5월 10일 장 마감 후 이화그룹 전·현직 임원의 횡령, 배임 혐의에 대해 조회 공시를 요구하며 거래를 정지시켰다. 이에 이화그룹이 김성규 대표의 횡령액이 거래정지 기준인 10억 원에 못 미치는 8억 원가량이라고 공시하자 거래소는 거래정지를 풀었다. 하지만 검찰로부터 횡령액이 10억 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통보받고선 12일부터 2차로 거래를 정지시켰다. 기업의 잘못된 공시를 믿고 재개 결정을 내렸다가 투자자들의 혼란만 키운 것이다. 4월 말 종가 기준 1995원까지 치솟았던 이화전기 주가는 다음 달 거래정지까지 770원으로 폭락했다가 하루 잠깐 장이 열린 사이 16.75% 급등했다. 결국 거래소는 3개 종목을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올렸다. 심사 결과에 따라 해당 종목들은 상장폐지가 될 수도 있다.

하루 만에 다시 투자금이 묶인 투자자들은 거래소의 거래정지 번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아이디 투자자 B 씨는 “거래정지가 잠시 풀린 날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3200만 원을 투자했다. 거래소가 밝힌 정지 사유가 너무 모호해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거래가 정지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화그룹 주주연대는 거래소가 시장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지난달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거래소의 모호한 거래정지 기준에 대한 불만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달 14일 거래소는 동반 하한가를 맞은 동일산업, 동일금속, 만호제강, 대한방직, 방림 등 5개 종목에 대해 하루 만에 거래정지를 내렸다. 하지만 올 4월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 때는 이처럼 신속한 거래정지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거래소에 따르면 거래정지 조건은 크게 4가지다. △상장사가 조회 공시 요구에 대해 신고 시한까지 응하지 않거나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된 경우 △풍문 또는 보도로 주가나 거래량이 급변할 때 △기업의 공시 사항이 주가와 거래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될 때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이 조건들로는 거래가 정지된 이유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게다가 거래재개 원인도 불분명해 투자자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SG 사태 때도 동일한 거래정지 규정이 있었지만 시장 충격이 이렇게 커질지 몰라 대처가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처럼 기업 정보를 일반 주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거래정지와 재개 기준을 더 명확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거래정지 사유에 대해 상세한 원인과 배경, 재발 방지 계획까지 공시하는 기업에 한해 거래를 풀어준다”며 “반면 한국은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거래정지#한국거래소#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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