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베네치아는 유리 공예품으로 유명하다. 베네치아는 중세 시대 유리 세공 기술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동서양의 유리 세공 기술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지리적 입지가 주효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했던 비결은 세공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취했던 특단의 조치였다.
1291년 베네치아는 유리 생산에 사용되는 모든 용광로를 무라노라는 섬으로 옮겨 유리를 생산하도록 했다. 유리 장인들은 정부의 허가 없이 베네치아를 떠날 수 없었고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면 극형에 처해졌다. 대신 이들에겐 높은 사회적 지위, 면책 특권을 부여하는 등으로 예우했고 1474년 특허법의 시초라 불리는 베네치아 특허법을 제정해 기술 개발을 장려했다. 무라노섬에 모인 유리 장인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기술 혁신이 이뤄졌고 16세기경 유리 거울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됐다. 이는 베네치아가 부를 쌓는 데 큰 공헌을 했는데 유리 거울을 특히 사랑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베네치아의 장인들을 빼돌리기에 이르렀다. 베네치아는 빠져나간 장인들을 독살할 정도로 기술 보호에 철저했다.
500년이 흐른 지금도 특허, 영업 비밀은 기술 보호의 핵심이자 기업의 중요 자산이다. 국가 간 첨단 기술 경쟁이 격화되며 경쟁국의 핵심 기술이 담긴 영업 비밀을 유출하려는 시도가 빈번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반도체, 이차전지 등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도 수십조 원에 이른다. 기술 유출의 특성상 이미 유출된 후에는 검거나 회수가 어렵다. 처벌도 솜방망이에 그쳐 경각심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술 유출을 효과적으로 예방하려면 범죄에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기술자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충분한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특허청도 힘을 쏟고 있다. 출범 2주년을 맞은 특허청 기술 경찰은 검찰, 국정원과 협력해 반도체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사범을 구속 기소하는 등 성과를 거두며 우리나라 전체 기술 침해 사건의 20%를 처리하고 있다. 지난 6월엔 지식재산범죄수사지원센터를 설립해 과학수사 기능을 보강했다. 앞으로도 인력 증원, 수사 범위 확대, 인터폴 등 해외 수사기관과 공조를 확대해 해외 기술 유출 수사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지난 3월에는 국내의 반도체 등 퇴직 인력들을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해 인력의 해외 이직에 따른 해외 기술 유출을 방지하는 효과를 얻고 있어 기업들도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한국정책학회의 우수 정책으로 선정되는 등 좋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베네치아는 늪지대 위에 세워져 자원이라곤 소금과 물고기뿐이었다. 유럽 최고의 부국이 된 원동력은 기술 개발과 보호에 대한 국가적 노력이었다. 자원 빈국인 우리도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철저한 기술 보호를 더해 기술 선진국으로 거듭날 때다. 앞으로 특허청은 기술 경찰의 활동을 강화하고, 유관 기관들과 협업 체계를 공고히 해 우리나라 기술 보호의 반석을 다져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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