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덮친 ‘극한기후’… 상추 값 3배로 폭등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9일 01시 40분


[극한기후 물가 비상]
잇단 폭우로 농산물 가격 치솟아
시금치 등 채소 한달새 2배로 껑충
전세계 폭염 이어져 밥상물가 비상

폭염과 장마로 인해 상추를 비롯한 채소류 값이 급등하고 있다. 2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 달 새 상추 가격이 두 배 넘게 올라서 금값이 됐습니다. 상추 더 달라는 손님들에겐 미리 사둔 배추를 대신 드리고 있어요.”

서울 중구에서 삼겹살을 파는 배모 씨(71)는 28일 식당을 찾은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지난달만 해도 대파 1㎏ 가격이 1500원 정도였는데 그새 3000원이 됐다”며 “식자재값이 너무 많이 들어 반찬 개수를 줄여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장마철 집중호우에 이어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상추 가격이 한 달 새 3.2배로 급등했고 밥상에 단골로 오르는 시금치와 미나리 등 채소류 가격도 2배 수준으로 뛰었다. 8월의 불볕더위와 9월 태풍 시즌이 여름 휴가철과 추석 연휴와 겹치면서 당분간 농산물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서민들의 물가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적상추 4㎏ 평균 도매가격은 7만2220원으로 한 달 전(2만2432원)보다 222.0% 치솟았다. 시금치(4㎏)와 미나리(7.5㎏) 가격도 각각 161.1%, 119.4% 뛰었다.

일부 농산물 가격이 치솟은 건 이달 초부터 잇따른 폭우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시설채소가 침수되는 등 농작물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여기에 휴가철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중도매인들이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밥상 물가가 오르면서 서민과 중소상인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서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54)도 “양파, 청양고추 등을 반찬으로 내놓고 있는데 장마 이후 소매 가격이 1.5배로 올라 이윤이 크게 줄었다”라고 했다.

당분간 기록적인 폭염과 태풍 피해 가능성이 있는 데다 휴가철과 추석 연휴 등 농산물 가격 인상 요인이 남아 있어 물가 부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원태 농촌경제연구원 원예실장은 “상추 같은 농작물은 생육 기간이 짧아 비교적 빨리 수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태풍 등으로 피해가 생기면 다시 가격이 급등할 수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깻잎-시금치 값도 2배로… “공짜로 주던 채소 리필 3000원 받아”


밥상 덮친 ‘극한기후’에 채소값 급등
김치는 배추보다 덜 비싼 깍두기로
흑해협정 중단에 곡물가격도 비상
당정 “비축물량 방출 등 공급 확대”
‘상추 리필 3000원.’

장마철 폭우로 쌈채소 값이 크게 오르자 자영업자들도 비용 절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보쌈집은 공짜로 제공하던 상추 리필에 3000원을 받기로 했다. 가게 주인 박모 씨는 “채소 가격이 급등해 손님 불만이 나오더라도 상추 리필 비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밥상에 오르는 반찬도 바뀌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주부 오모 씨(64)는 최근 밥상에 올리는 김치를 배추김치에서 깍두기로 바꿨다. 배추 가격이 한 달 새 두 배 가까이로 오르면서 그나마 덜 비싼 무를 선택했다는 오 씨는 “가격이 가장 싸다는 로컬 푸드 마켓을 포함해 근방 모든 마트의 채소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장 보는 게 부담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 극한기후에 밥상물가 비상


28일 기준 대형마트 A사의 상추 200g 가격은 4980원으로 지난달 30일 1980원에서 151.5% 올랐다. 같은 기간 쌈배추 100g은 1980원에서 3480원으로 75.6%, 시금치 200g은 5980원으로 2980원에서 100.7% 올랐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상추 가격이 오르면서 대체재로 로메인, 버터헤드, 바타비아 등 양상추류를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 청상추 4㎏의 평균 도매가격은 6만7820원으로 한 달 전(2만1172원)보다 220.3%, 1년 전(3만6016원)보다 88.3% 올랐다. 깻잎 2㎏ 도매가격도 4만1160원으로 1개월 전(1만8848원)보다 무려 118.4%나 급등했다.

치솟은 농산물 가격에 오름세를 보이는 국제 곡물 가격이 겹쳐 전체 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가 흑해 곡물수출협정을 일방적으로 종료하고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 도시인 오데사를 포격하며 국제 밀 가격이 들썩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서 밀 선물가격은 27일(현지 시간) 기준 712.75달러로 협정이 종료된 17일보다 9.0% 올랐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해로 채소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 대외적으로는 흑해곡물협정이 중단됐다”며 “대내외 변수를 고려하면 하반기(7∼12월) 물가가 정부가 원하는 수준까지 안정화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 물가 인상 차단 나선 정부

정부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추석 민심을 고려해 최대한 물가 인상을 차단하겠다는 목표다.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11차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수해 농가에 대한 지원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당정은 수해로 수급 불안이 우려되는 닭고기, 상추, 배추, 무의 가격 안정을 위해 육계 종란 수입 및 배추·무 비축물량 방출 등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또 내달까지 100억 원을 투입해 양파, 상추, 닭고기 등 5개 품목에 대해 최대 30%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모두발언에서 “홍수 피해에 따른 농축산물 수급 동향을 점검하고 농경지 복구 및 농축산품 가격 안정 방안을 논의하겠다”며 “수해가 물가 인상 등 또 다른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공급확대 방안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상 정책들이 3개월 정도 시행되는 편인데, 일회성에 그쳐서는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며 “하반기 내내 물가 안정 정책 기조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밥상#극한기후#상추 값#3배 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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