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규제에 무너지는 중기 생태계]
부설연구소 설립 요건 맞추기 어려워
석박사급 인력 확보 ‘그림의 떡’
서울 강남구에서 커뮤니티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B사. 인력의 질이 곧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병역특례로 들어오는 개발자 한 명 한 명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마땅한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병역특례로 채용하려면 ‘기업부설연구소’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사무실 특성상 별도의 공간이 없어서 파티션을 설치해 연구소 공간을 마련했다. 하지만 파티션이 천장과 완전히 붙지 않았고, 출입문과 현판이 없다는 이유로 연구소로 인정받지 못했다. B사 관계자는 “재택근무와 자율좌석제 등이 확산되면서 신생 기업이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는데, 제조업 중심의 낡은 규제가 인력 확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기업에 병역특례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자 규정된 ‘기업부설연구소’가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인재들에게 병역특례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이들의 중소기업·스타트업 기피를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1일 중소기업중앙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현행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상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된 기업의 부설연구소에 소속된 전문연구요원은 3년 근무 시 병역을 대체할 수 있다. 중견기업은 석사 이상 연구전담 요원 5인, 중소·벤처기업은 2인 이상을 확보하면 연구소를 세울 수 있다.
문제는 소규모 기업 입장에서는 부설연구소 설립 요건을 맞추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1일 창업진흥원이 지난해 내놓은 창업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업 7년차 이하 기업의 평균 고용인원은 평균 13명. 이는 현실적으로 고급 인재 2명이 경영 등 기타 업무는 하지 않고 연구만을 전담하기는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연구소를 세우려면 석사급 인재를 2명 이상 이미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고급 인재를 붙잡을 수 있는 작은 회사가 몇이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부설연구소 재직자들의 연구와 학위 획득을 위한 계약학과 설치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계약을 맺고 특정 분야 전공을 개설해 인력을 양성하는 학과. 하지만 현행법은 중소기업 소재지와의 거리가 50km 이내인 대학에만 계약학과를 설치 및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본사는 지방에, 연구소는 수도권에 있는 기업은 연구소 직원들을 수도권 대학 계약학과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직원들의 연구와 학위 획득을 위해 본사가 아닌 연구소 소재지를 기준으로 계약학과 입학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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