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에 투자 소외된 한국]〈下〉 韓 전기차 생태계 위축 우려
美, 북미 생산 배터리에만 稅혜택… 배터리 3사, 현지에 공장 신설 붐
국내선 전기차 기반 흔들릴수도… 車관련 대미투자 매년 倍로 증가
국내 투자는 5년새 40% 감소 예상
《미중 경제 갈등과 자국 우선주의 흐름 속에서 자동차는 빼놓을 수 없는 산업이다. 미국이 자국 내 공급망 강화에 사활을 걸면서 한국 완성차업체는 물론 전기차 배터리업체, 부품기업들까지 일제히 ‘북미 러시’에 가세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내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동차는 전후방 산업 효과가 커 국가경제 기여도가 가장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국내 자동차 생태계가 지금처럼 약화되다 보면 전기차는 물론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이 자동차 강국의 위상을 갖기는 힘들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요즘은 배터리 회사들이 갑이죠.”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 A 씨의 말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돈을 싸 짊어지고 가도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로부터 물량을 풍족하게 공급받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절대 강자인 현대자동차그룹조차도 이런 이유로 신형 코나 전기차에 이례적으로 중국 CATL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A 씨는 “북미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세제 혜택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이후 공급자 우위 시장이 더 심화됐다”며 “배터리 3사가 북미에서 생산 능력 키우는 데 몰두하는 사이 정작 국내에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 간 첨단산업 주도권 다툼의 핵심 영역으로 떠오른 전기차 부문에서도 한국은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다. 중국산 배터리와 전기차를 사실상 배제하려는 IRA가 지난해 8월 시행되면서 자동차 및 배터리 업체들이 일제히 북미로 달려가고 있어서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북미 러시’로 국내 전기차 생태계가 점차 경쟁력을 잃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북미에 집중 투자하는 배터리 3사
8일 자동차 및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주와 오하이오주에 단독 공장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 공장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애리조나주 단독 공장에다 GM과의 테네시주·미시간주 합작 공장, 일본 혼다와의 오하이오주 합작 공장, 현대차와의 조지아주 합작 공장, 스텔란티스와의 캐나다 온타리오주 합작 공장 등이 모두 완성되면 북미에만 공장이 8곳으로 늘어난다.
삼성SDI의 경우 미국 인디애나주에 스텔란티스 합작 공장과 GM 합작 공장이 앞으로 생긴다. 미국 조지아주 단독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 중인 SK온은 캔터키주와 테네시주에 포드와의 합작 공장 3곳,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과의 합작 공장을 추가하기로 했다.
국내 배터리셀 공장 투자 관련 주요 발표는 LG에너지솔루션의 충북 오창공장 증설(6000억 원 규모)뿐이었던 걸 감안하면 대부분의 투자가 북미 지역에 집중된 것이다.
SK증권 분석에 따르면 SK온의 올해 말 기준 지역별 생산능력 비중은 중국 50%, 미국 25%, 유럽 20%, 한국 5% 순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역별 생산능력 비중도 중국 45%, 유럽 30%, 미국 17%, 한국 8% 등으로 예측됐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2분기(4∼6월) 영업이익 4606억 원 중 IRA로 인한 세액공제 금액 1109억 원(24.1%)이 반영됐다. 두 회사 모두 최근 북미 지역 합작 공장 발표가 잇달아 2, 3년 후부터는 미국 비중이 급격히 오를 것으로 보인다. 유안타증권은 2030년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내 셀 생산능력이 706GWh(기가와트시)로 미국 내 배터리 수요(918GWh)의 77%를 책임질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 국내에선 오히려 배터리 수급 걱정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하는 시기인데 ‘배터리 강국’의 안방에서 정작 배터리 수급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KG모빌리티는 올 9월 출시하는 전기차 토레스EVX에 중국 BYD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한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주력인 니켈·코발트·망간(NCM) 삼원계 배터리에 비해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다는 장점 때문이라고 회사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3사로부터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중국 업체로 눈을 돌린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국GM은 북미 수출 기지 역할을 하던 인천 부평과 경남 창원 공장의 생산 전략 변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을 맞았다. 현재는 내연기관차 신형 트레이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주력으로 생산 중이지만, 향후 전기차 설비로 전환할지 여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서 생산된 전기차는 북미 수출 시 IRA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르노코리아는 2026년 부산 공장에서 전기차인 오로라3 생산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국내 배터리 3사와의 협력이 쉽지만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실증산업실 실장은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IRA 때문에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내 생산기지들이 생존전략을 새로 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 자동차 산업 자체도 북미로, 북미로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의 전기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본래 2025년 가동이 목표였으나 이를 2024년 하반기(7∼12월)로 앞당기려 애쓰고 있다. IRA 시행 후 현재까지 현대차나 기아의 전기차 중 보조금(대당 최대 7500달러)을 받는 모델은 없기에 딜러 인센티브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지 전용 공장을 하루라도 빨리 가동해 ‘보조금 울타리’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 자체로도 북미 러시가 거세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이 지난해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 자동차·부품 생산 및 판매를 위해 투자한 금액은 총 8억6476만 달러(약 1조1174억 원)에 이른다. 2020년 2억6123만 달러, 2021년 4억8917만 달러 등으로 매년 두 배 가까이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1분기(1∼3월)에만 3억8929만 달러를 투자해 연간으로는 10억 달러를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국내 투자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KDB미래전략연구소 설비투자계획조사에 따르면 2018년에는 9조3057억 원이었던 자동차 및 부품 생산 업체들의 국내 설비투자액이 올해는 5조7151억 원(계획)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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