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핵연료 45년간 1만8600t 쌓여
저장시설 없으면 원전 멈춰야 하는 상황
여야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이견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 위기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고물가에 여행 대신 시원한 대형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몰캉스족’이 늘고 있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값싼 전기 요금으로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이라는 효율적인 에너지원의 혜택이다. 그런데 1978년 첫 원전 가동 이후 45년간 원전 부지 내에 쌓여 있는 1만8600t의 ‘사용 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 관리 특별법이 국회에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2021년 9월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을 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이인선·김영식 의원(이상 국민의힘)이 지난해 8월 유사 법안을 발의했다. 여야가 고준위 방폐물의 처리를 놓고 공감대는 형성된 상태다. 하지만 원전 확대에 대한 여야 입장 차이로 인해 국회 법안소위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중위) 9차 법안소위 논의 결과 야당은 신규 원전 건설과 연계해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의 건설 여부 및 규모 확정 전에는 특별법안에 대한 논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신규 원전 논의와 연계 시 특별법 논의 지연에 대한 불안 장기화가 우려되기 때문에 신속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건식 저장법으로 지어진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 건식 저장 시설은 전원 공급과는 무관하게 냉각 기능을 유지할 수 있고, 용기별
격납 방식으로 설계돼 자연재해 등 중대 사고에도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원자력환경공단 제공
핵심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로 부지 내 저장시설 규모는 여당은 운영 허가 기간 중 발생량, 야당은 설계 수명 기간 중 발생량으로 맞서고 있다. 또 고준위 방폐장 확보 시점에 대해 여당과 원전 지역은 중간저장시설 50년, 처분시설 60년, 김성환 의원은 최종처분시설 목표 시점만 명시하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의 지위에 관해서는 야당은 중앙행정기관, 여당은 일반행정기관 신설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핀란드에 건설 중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 운영을 앞두고 있다. 원자력환경공단 제공고준위 방폐장이 없는 상황에서 현재 원전 내 저장시설이 빠르게 포화되고 있는 상태다. 2030년 한빛원전부터 원전 내 저장시설 포화가 시작된다. 원전 내 저장시설이 건설되지 않으면 원전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야당이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탈원전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원전에 쌓여 있는 고준위 방폐물 1만8600t은 현실이며, 고준위 방폐장 건설이 기존 방폐물을 안전하게 처분하기 위한 것이지 신규 원전 확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고준위 방폐장은 친원전 또는 탈원전의 미래 문제가 아니라 지난 45년간 우리가 편리하게 전기를 사용한 결과에 대한 현 세대 책임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는 8월을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입법의 사실상의 ‘골든 타임’으로 보고 있다. 10월 국회 국정감사가 열리기 전 입법 통과가 되지 못하면 3개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고준위 방폐장은 부지 선정 절차에만 13년이 걸리고 최종 완공까지 37년이 걸리는 국가적 사업이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이 지연될수록 기존 원전 지역 주민의 희생은 불가피해 보인다. 6월 원전 소재 지자체 행정협의회에서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제정 촉구 공동건의문을 낸 데 이어 16일 경주, 울진, 영광, 기장, 울주 등 원전 소재 5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고준위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 촉구를 위한 상경 토론회를 개최했다. 많은 전문가들도 ‘탈원전과 친원전은 선택의 문제지만 고준위 방폐장은 이념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원전 내 ‘사용 후 핵연료’ 장기 보관에 대한 원전지역 주민의 불안감을 덜어주지 않으면 원전 내 건식 저장시설 건설이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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