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단순한 ‘올드머니 룩’… ‘상류층 패션’에 Z세대 관심 커져
무늬-상표 없이 고급 소재 사용
유행 따라가기 지친 심리도 반영
제냐, 고급 캐시미어 쓴 니트 카디건… 보테가베네타, 실용성 높인 옷 선보여
‘옷 잘 입는 남자’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참 어렵다. 하지만 단정하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클래식한 패션을 잘 소화하는 남자를 ‘옷 잘 입는다’는 표현에서 배제하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은은한 고급스러움과 단순한 디자인을 강조하는 ‘올드머니 룩’이 패션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올드머니 룩은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상류층의 고상한 스타일을 가리킨다. 재산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적 배경, 전통 등 라이프스타일도 포함된다.
Z세대도 올드머니 룩에 열광하고 있다. Z세대의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틱톡에선 ‘#oldMoney’를 태그한 영상의 총 조회 수가 12일 기준 84억 회 이상을 기록했고, 인스타그램에선 1990년대 상류층 패션으로 주목받는 인공지능(AI) 모델 ‘펠리’의 계정 팔로어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올드머니 스타일의 지침서로는 누가 있을까.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사 피아트의 회장이었던 잔니 아녤리, ‘윈저 노트’라는 넥타이 매듭법의 주인공인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 등이 거론된다. 성공한 사업가인 아녤리는 자동차 업계에서의 영향력만큼이나 기품 있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클래식한 모노 톤 슈트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묶고, 소매 커프스 위에 시계를 차는 등 개인적인 취향과 자유로운 정신을 드러낸 스타일링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사랑받고 있다. 에드워드 8세는 보다 정통한 스타일에 가깝다. 각 잡힌 맞춤형 슈트에 넥타이와 모자, 코트가 세트처럼 따라다닌다. 글렌 체크, 스트라이프, 윈도페인 체크 등 다양한 컬러와 패턴에 넥타이, 스카프, 양말 등의 액세서리를 감각적으로 매치해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고유한 스타일을 정립했다.
미디어 재벌가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HBO의 드라마 ‘석세션’의 인기도 올드머니 패션 트렌드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큼직한 로고 대신 깔끔한 폴로 셔츠, 리넨 드레스, 캐시미어 스웨터 등을 입고 고급 자동차를 몰며 광활한 저택에서 샴페인을 홀짝인다. 이들의 패션은 부를 과시하는 유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목가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다가왔다.
사실 올드머니 트렌드가 하루아침에 나타난 건 아니다. 올드머니 트렌드는 콰이어트 럭셔리(조용한 사치), 스텔스 럭셔리(드러나지 않는 사치)라 불리며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명성 높은 패션 하우스에서 잘 드러난다. 우아하고 정제된 스타일로 세대를 아우르는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대표적. 제냐의 독보적인 기술력과 장인정신이 담긴 오아시 캐시미어 소재는 올해 가을겨울 시즌 컬렉션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크루넥 니트 톱, 스웨터, 카디건, 테일러링 재킷 등 최고급 캐시미어에서 오는 풍부한 질감과 여유 있는 실루엣의 제품들은 제냐의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토프(회갈색), 멜란지 그레이 등 창백하고 중성적인 색감으로 컬러 팔레트를 채워 고급스러운 매력을 부각했다.
가죽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보테가 베네타는 일상에서 활용하기 쉬운 실용적인 옷으로 런웨이를 구성했다. 평범해 보이나 절대 평범하지 않은 소재의 혁신과 재단 방식은 고급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진가를 빛나게 한다. 다채로운 패턴과 화려한 로고가 매력적인 디올은 지난 시즌과 상반되는 로고마저 없앤 간결한 디자인으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줬고, 질 샌더는 엄격하고 절제된 디자인으로 슈트의 품격을 격상시키고 나섰다.
올드머니 룩의 다른 이름을 클래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매력의 패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랫동안 세계를 괴롭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기상이변과 환경오염, 경기 불황까지 끊임없는 이슈의 홍수에 피로해진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는 옷보다 실용적이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소재와 디자인의 옷에 눈을 돌리고 있다.
다만 올드머니 룩이 티셔츠 한 장에 5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고가의 명품으로 옷장을 채우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반짝하는 트렌드에 구애 받지 않고 질 좋은 소재의 옷을 구입해 오래도록 입고 싶다는, 합리적인 소비 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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