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빵부터 아이스크림까지… 가루쌀 무한변신에 아낌없이 지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8일 03시 00분


[쌀의 날] 농진청-농진원, 벤처기업 기술-자금 지원해 산업 생태계 활성화

《가루쌀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가루쌀 종자 및 재배 기술의 보급, 관리 체계의 고도화 등 공공 분야에서 공을 들인다 하더라도 산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간기업의 참여가 절실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수요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관련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공 영역에서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가루쌀 시장에 기업이 투자했을 때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서 민간 참여가 늘어나고 가루쌀 가공 산업의 생태계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산업인 만큼 기업 입장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관련 정보가 부족하고 초기 투자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민간기업, 특히 새로운 기회를 찾는 벤처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이 주관하고 농업기술진흥원이 시행하는 ‘기술 이전’과 ‘농업실용화기술R&D지원사업’을 통해 정보 제공 및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글루텐 프리 ‘쌀빵’


최근 식품업계는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품 첨가물로 당, 나트륨 등을 줄인 제품을 계속해서 출시하고 있다. 그중 ‘글루텐 프리’ 제품이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글루텐은 보리나 밀과 같은 곡류에 들어 있는 단백질 성분으로 쫄깃한 식감을 내거나 빵이 부풀어 오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글루텐 함량에 따라 밀가루를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글루텐 성분은 과도하게 섭취하면 장에서 서로 엉겨 붙고 변비나 소화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소화되지 않은 글루텐은 장내 염증이나 아토피와 같은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특히 글루텐에 민감성을 가진 일부 사람에게 피해야 할 성분으로 꼽힌다.

그러나 글루텐 프리 식품이라고 마냥 안전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글루텐을 제거하고 쫄깃한 식감을 대체하기 위해 첨가하는 옥수수 등의 전분이 밀가루보다 혈당을 더 높이는 성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쌀빵이 등장했다. 글루텐 성분의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빵맛을 제대로 내는 쌀빵의 등장은 우리나라 쌀 공급 과잉을 해결할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 쌀은 전분 구조가 단단해 물에 불린 후 습식 제분을 하기 때문에 가루 생산 비용이 밀보다 2배 이상 높아 빵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매우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제조상의 어려움, 원가에서의 불리함 등으로 쌀빵의 사업화에 성공한 업체는 극히 드물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극복한 업체가 홍윤베이커리(대표 홍동수)다. 홍윤베이커리는 우리 농산물인 쌀을 활용해 빵을 만들어 온 지역 업체로 유명하다. 쌀 알갱이를 미분하기 위해 습식 쌀가루를 활용하기도 하고 소형 미분기를 갖춰 놓기도 했다. 그러나 힘든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제조 과정상의 어려움을 한번에 해결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농진청에서 개발한 가루쌀을 기술 이전을 통해 빠르게 받아들여 제품 제조에 활용한 것이다. 습식 제분으로 인한 가공 과정의 복잡함과 원가의 불리함도 사라졌으며 쌀빵과 쌀케이크 등의 독특한 빵을 생산해 지역 대표 맛집으로 뽑히고 있다.

38년 전에 빵집을 시작한 홍동수 대표는 군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밀과 흰찰쌀보리, 가루쌀 등 100% 지역 농특산물을 소재로 60여 가지가 넘는 건강한 빵을 개발해 유명해지면서 지역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

농진원은 홍윤베이커리에 가루쌀 품종의 기술 이전을 지원해 고품질의 쌀빵 제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정부의 가루쌀 확대 생산 계획에 맞춰 순도 높은 가루쌀 우량종자 생산을 확대 보급하고 쌀 가공 업체 발굴과 사업 자금 지원 등을 강화해 가루쌀 사용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우선 매년 가루쌀 종자 생산량을 늘려 2026년 정부가 목표로 하는 계획 면적(4만2000㏊)이 달성되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특히 가루쌀을 이용한 쌀빵과 쌀과자, 식빵, 면류, 튀김가루와 쌀맥주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도록 식품 제조업체에 기술 이전과 정보 제공을 확대할 방침이다.

식감 개선한 호정화 쌀가루


본래 쌀가루는 글루텐이 거의 없어 끈기나 점성이 떨어지고 수분 함량이 적어 빵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반 쌀가루는 일반 분쇄 쌀가루보다 제조 원가가 두 배가량 높다는 이유로 인해 소형 제분·제빵 업체에서 활용하기 쉽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가루쌀의 보급은 쌀 가공 업체에 큰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요즘에 입맛 까다로운 소비자가 선택하는 빵의 기준은 결국 맛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루쌀로 인해 가공 과정의 어려움과 원가의 불리함을 극복했다 할지라도 넘어야 할 산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맛을 잡는 일이라 할 것이다. 특히 밀가루 빵의 식감에 익숙한 소비자들도 선택하게 할 정도 수준으로 식감의 개선이 필요하다.

쌀빵의 식감 개선에 레인보우팜(대표 류정희)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이 가진 핵심 기술은 ‘호정화 쌀가루 가공 기술’에 있다. 호정화란 전분에 물을 가하지 않고 섭씨 160∼180도 이상으로 가열하거나 효소나 산으로 가수분해했을 때 전분이 가용성 전분을 거쳐 다양한 길이의 덱스트린으로 분해되는 것을 말한다.

호정화가 되면 전분이 황갈색을 띠고 용해성이 증가하면서 점성은 약해지고 단맛이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은 빵을 구울 때, 누룽지, 미숫가루, 뻥튀기, 팝콘, 아침 대용 시리얼, 루 등에서 나타난다. 소스를 만들 때 걸쭉하면서도 엉기지 않는 소스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버터에 마른 채로 볶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빵 제조에서 쌀가루의 단점인 끈기나 점성이 없어 푸석한 식감을 호정화 기술로 개선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레인보우팜은 농진원에서 시행한 2022년도 농업실용화기술R&D지원사업에 ‘호정화 및 유산균을 발효시킨 쌀가루를 이용한 쌀빵 사업화’ 과제로 선정됐다. 호정화한 쌀에 유산균을 접종해 발효시킨 쌀가루로 밀가루 빵과 유사한 맛과 식감의 쌀빵을 개발하는 과제였다.

이후 10개월에 걸친 개발 과정을 통해 쌀반죽과 쌀크림으로 제조한 나왕빵(쌀빵)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제껏 일반 쌀을 미분해 생산했으나 가루쌀이 보급돼 향후에는 가루쌀로 제품을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가루쌀로 쌀빵, 국수 제품을 생산해 학교 급식 등으로 판로를 개척할 것이라 전했다.

류정희 대표는 “대부분 국산 농산물을 활용하다 보니 가격 측면에서 밀가루 빵과 경쟁하기 어려웠다”며 “레인보우팜의 기술을 가루쌀에 접목해 더욱 맛있는 쌀 가공 제품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비건 아이스크림 파우더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은 2015년 2조 원 규모에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감소해 왔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트렌드와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 확대, 아이스크림 할인점 등으로 일정 기간 매출 규모가 늘었으나 다수의 업계 관계자는 국내 디저트 시장의 경쟁 과다로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 아이스크림과 젤라토 같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커피 시장은 누구나 인지하듯 가파른 성장을 보여왔다. 마카롱 시장도 커지고 있다. 최근 각광받는 탕후루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제품은 디저트 시장으로 분류된다. 스틱 바와 콘류의 일반 아이스크림 시장은 축소되겠으나 젤라토와 같은 프리미엄 시장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에 도전한 벤처기업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젤요(대표 김형범)다. 젤요는 우리나라 농산물을 주원료로 활용해 젤라토를 제조하는 벤처기업이다. 젤라토는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빙과류로 우유 또는 과즙에 설탕과 맛을 내는 천연 재료를 섞어서 제조하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디저트다.

젤요는 2018년 농식품 창업 콘테스트에서 4위로 입상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 후 장수 사과를 시작으로 봉동 생강, 보성 녹차, 논산 딸기, 보은 대추, 강원 옥수수, 상주 곶감 등 국내 각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젤라토의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 국내외 스토어 판매 등으로 매출을 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농진원(원장 안호근)이 시행하는 올해 농업실용화기술R&D지원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젤요의 사업화 과제는 가루쌀을 가공해 과일 젤라토 제조용 아이스크림 파우더를 개발하는 것으로 기존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과일 젤라토 파우더를 가루쌀을 원료로 해 만드는 것이 목표다. 또한 가루쌀을 활용해 유지방을 더욱 낮춰 비건 젤라토 파우더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본 과제를 통해 성공적으로 가루쌀 아이스크림 파우더를 개발한다면 수입 대체 효과 및 디저트 시장에 작은 파문이 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우리나라 식품 시장에 가루쌀이라는 신소재가 국내 농식품 벤처기업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형범 대표는 “2019년부터 개발해 온 우리 농산물 가공 기술과 가루쌀의 특징을 접목한 제품 개발로 우리 농산물인 가루쌀의 소비 촉진과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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