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계부채가 이슈가 되는 것은 한국은행이 1년 6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0.5%에서 3.5%까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인상했음에도 3분기 만에 다시 증가세로 전환되고 증가폭도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 같은 고금리 환경에서 가계부채가 늘어난 상황을 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가계부채 증가 주범은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감”이라며 “고금리만으로 가계부채를 줄일 수 없다”고 진단했다. 고금리에도 다시 증가 추세인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05%로, 조사 대상 43개국 중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이와 관련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부채를 중장기적으로 GDP 대비 80% 수준으로 축소해나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주담대, 전분기 대비 14조1000억 원 증가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8월 22일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2분기 말 가계신용(가계가 은행, 보험사 등 금융권에서 받은 ‘가계대출’에 신용카드 이용액 등 ‘판매신용’을 더한 것으로 대표적인 가계부채 지표) 잔액은 1862조8000억 원으로, 1분기 말(1853조3000억 원)과 비교해 9조5000억 원 증가했다. 또한 가계신용에서 비중이 가장 큰 가계대출은 전분기보다 10조1000억 원이 늘어난 1747조9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이 늘어난 가장 큰 원인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증가다. 주담대 잔액은 2분기 말 기준 1031조20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14조1000억 원 증가했다. 이는 역대 최대다.
이에 주간동아는 8월 23일 석 교수에게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 및 증가 원인, 해결책 등을 물었다. 석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경제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조교수로 근무했다. 전공 분야는 거시경제학, 부동산경제학, 국제경제학으로 부동산시장과 노동시장에 관한 논문 다수를 발표했다.
통계를 발표하는 기관에 따라 가계부채 규모가 다르다.
“가계부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은행은 가계대출과 신용대출만 포함해 1862조8000억 원이라고 발표한 것이고, 국제결제은행은 여기에 소규모 개인사업자와 파생금융상품 같은 다양한 대출을 추가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2년 말 기준 가계부채를 2925조 원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전세보증금까지 포함한 것이다. 사실 전세보증금은 임대인이 임차인으로부터 받은 사적 대출금이기에 가계부채에 포함하는 것이 맞기는 하다. 다만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정책을 펼치고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차주의 부채를 관리하기 때문에 가계신용을 기준으로 삼는다.”
고금리에도 주담대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2분기 가계부채가 증가한 결정적 계기는 주담대가 전분기 대비 14조 원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금리가 상승하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6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발표했는데, 나는 4월부터 부동산 가격이 저점을 찍고 상승 추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한국 ‘실질금리와 실질주택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을 보면 금리인상기에도 실질주택매매가격지수가 0보다 높은 경우가 많았다. 경제학 이론에서 선행 연구에 따르면 주택 가격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가계대출 규제 정도(대출 제약), 가계들이 예측하는 주택 가격 전망, 금리, 신규 주택 공급 등 총 4가지다. 지금 한국에서는 금리를 제외한 3가지 요인이 가계부채를 증가시키고 있다.”
각 요인이 어떻게 주담대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
“먼저 대출 제약이 느슨해졌다. 올해 들어 시행된 특례보금자리론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예외가 적용되면서 가계부채가 31조 원이나 늘었다. 또 최근에는 전세보증금 반환목적 대출에도 DSR 규제 예외가 적용돼 7월에만 5300억 원이나 증가했다. 신규 주택 공급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수도권에 더는 빈 땅이 없는데도 규제 때문에 재건축·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집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주택 가격 전망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주택가격전망CSI(소비자동향)지수는 100보다 높으면 1년 후 주택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응답한 가구수가 하락할 것이라고 응답한 가구수보다 많음을 나타내는데, 8월 107까지 상승했다. 결국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감과 함께 실제 부동산 가격 상승이 나타나니, 대출이자가 높더라도 집값이 빠르게 상승해 되팔았을 때 이자를 내고도 손에 쥐는 돈이 더 많다고 판단해 소위 ‘영끌’로 집을 사는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시킨 대표 정부 정책
정부는 올해 초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을 막고자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이후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왜 부동산시장 침체와 가계부채 사이에서 부동산시장 부양을 선택한 것인가.
“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당시만 해도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과정에서 부동산시장이 빠르게 하락세로 전환하며 고점 대비 30~40% 떨어졌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대부분 기준금리가 부동산 하락의 원인으로 작동했다고 봤는데, 내가 최신 모형을 이용해 분석해보니 기준금리가 상승해도 부동한 가격은 크게 하락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앞서 얘기한 대로 한국 가계부채가 GDP 대비 105%가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금융자산을 많이 소유한 자산가가 많다는 의미다. 은행은 대출자금을 예적금 유치나 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하는데, 이는 곧 저축하는 사람도 많고 채권 투자에 나서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그런 자산가에게는 영끌로 무리하게 집을 산 이들이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아파트를 던지는 상황이 집을 싸게 살 기회가 되기 때문에 입자가 좋은 곳일수록 주택 가격 하락폭이 크지 않아야 맞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집값이 30~40%씩 떨어진 데는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취득세와 종합부동산세 중과 영향이 컸다. 따라서 정부 당국이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정부는 왜 부동산시장에 개입해 집값 하락 혹은 폭락을 막으려 하나.
“부동산 가격 하락에 대한 기대로 신축 아파트 미분양 가능성이 커지면 부동산 호황기에 건설 수주를 받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일으킨 건설사와 지급보증을 한 증권사, 금융기관 등이 줄줄이 부실해진다. 그로 인해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인 건설업계가 무너지면 실업률이 높아진다. 금융기관이 부실화할 경우 은행에 맡긴 돈을 찾을 수 없어 금융위기가 촉발된다. 또한 주택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 대출 차주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담보 아파트를 처분해도 원리금 회수가 불가능해 금융기관이 도산할 수 있고 이 역시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특례보금자리론과 전세보증금 반환목적 대출이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정부는 ‘50년 주담대’를 가계부채 주범으로 보고 있다.
“지금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데는 정부의 엇박자 정책의 영향이 크다. 가장 먼저 잘못한 부분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인상 자제, 예금금리 인상 자제를 요청한 것이다.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통화정책 메커니즘에 따라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상승해야 소비 지출이 줄고, 예금이나 대출 상환이 늘어나며, 상품과 서비스 수요가 줄어 물가가 잡히게 된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나서서 대출금리를 깎아주니 누가 대출금을 서둘러 상환하겠나. 특례보금자리론과 전세보증금 반환목적 대출도 상황을 악화하는 정책들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 원 이하 집을 사면 소득에 상관없이 시중보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는 것인데, 이는 곧 ‘빚내서 집을 사라’는 얘기다. 전세보증금 반환목적 대출도 무리하게 갭투자를 했다가 집값 하락으로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게 된 이들을 보호하는 정책이다. 그들이 대출을 통해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도록 돕고 부동산 시세가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집값 하락을 기다리며 임차인으로 남아 있던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더 나아가 버티면 결국 정부가 다 해결해준다는 ‘부동산 불패’ 시그널을 주는 완전히 잘못된 정책이다. 50년 주담대를 가계부채 주범으로 보고 나이 제한을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서 역차별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으며, 나이 제한을 둔다 해도 증가 속도만 줄일 뿐 증가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DSR, 가계부채 증가 막을 최후 보루
가계부채 증가를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보통은 금리인상을 생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선 지금 소비자물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데 이 말은 곧 기준금리 3.5%가 충분히 긴축적이고 높은 수준이라는 의미다. 또 지금보다 기준금리를 더 올리면 경기침체와 금융 불안 위험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주택 가격이 상승하리라는 기대감을 꺾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신규 주택을 빠르게 공급할 것이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 또 앞서 말한 대로 원금과 이자를 합해 연간 소득의 40%를 넘어갈 수 없는 DSR 규제 예외 적용을 최소화해 빚내는 일이 쉽지 않게 해야 한다. DSR은 가계부채 증가를 막는 최후 보루다.”
가계부채 증가를 막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은행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GDP의 80%를 넘어서고 고금리 상황이 되면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내수 소비를 줄여 경기침체가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 또 자금배분이 왜곡돼 돈이 부동산시장으로만 몰리면서 기업의 투자, 연구개발, 일자리 창출 등이 감소해 미래 경제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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