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이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일본 주식과 엔화에 투자하는 개인이 늘고 있다. 일본 주식과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엔화 예금 등으로 국내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저로 일본 수출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당분간 일본 증시가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3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8월 1∼30일 국내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 1억427만 달러(약 1379억 원)를 순매수했다. 이는 1년 전(946만 달러)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해 2412만 달러어치의 일본 주식을 순매도했지만, 올 들어선 3억9017만 달러어치를 순매수했다. 2020년(1억6209만 달러), 2021년(3억3385만 달러)의 연간 순매수 규모를 넘어섰다.
최근 일본 주식 투자가 급증한 것은 엔저로 일본 주식 값이 싸진 데 따른 것이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 기업 실적이 개선돼 주가 상승 요인이 된다. 또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투자금 유입도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엔저는 올 5월부터 본격화됐다. 앞서 2월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일본은행 신임 총재로 내정되자 시장에선 통화정책 전환 기대감에 엔화 값이 올랐다. 4월 6일에는 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3.6원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시장 기대와 달리 우에다 총재가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엔화 가치는 5월부터 빠르게 하락했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은 7월 5일 897.3원까지 떨어져 2015년 6월(880원) 이후 처음으로 800원대에 진입했다. 원-엔 환율은 8월 월평균 914.1원으로 1년 전에 비해 6.4% 하락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이른바 ‘일학 개미’를 위한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를 추종하는 ‘ACE 일본Nikkei225(H)’ ETF 시가총액은 올 1월 2일 120억 원에서 31일 356억 원으로 3배 가까이로 뛰었다. 한화자산운용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종목으로만 구성된 ‘ARIRANG 일본반도체소부장Solative’ ETF를 31일 내놓았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과 엔저로 인해 관련 소부장 기업들의 주가가 최근 오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엔화 투자가 늘면서 엔화 예금 규모도 7월 역대 최대로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엔화 예금 규모는 83억1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6월 말(74억8000만 달러)보다 11.1% 증가한 수치로, 엔화 예금이 8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엔저 기조가 한동안 이어지면서 일본 주식시장이 내년까지 활황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채윤 NH투자증권 일본 전문 애널리스트는 “엔화 약세가 일본 수출기업의 실적 개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증시는 다음 해 가을까지 긴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엔저 전망에 대해 “일본의 물가 상승 속도를 고려하면 엔저 기조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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