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규제에 무너지는 중기 생태계]
회사는 납기 등 못 맞춰 지연배상금
종업원은 초과근무 못해 ‘알바’ 뛰어
“경직된 주 단위, 월-분기 확대해야”
경남에 있는 전기전자부품 제조업체. 주 52시간제 도입 후 인력이 부족해 매년 7억 원을 들여 자동화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손이 달려서 여전히 납품기한(납기) 맞추기에 허덕이고 있다. 에어컨 등 냉방기기 부품은 2∼7월에 수요가 몰리는데 주 52시간제로 직원들의 초과 근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대표(73)는 “종업원 10명 중 2명은 초과 근무를 해서 수당을 더 받고 싶어 하지만 제도에 가로막혀 못 하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며 “업체는 납기를 맞추지 못해 힘들고 종업원들은 초과 근무를 원하지만 못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주일 내 총 52시간(법정근로시간 40시간, 연장근로시간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된 근로시간 개편 없이는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결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주 52시간제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대표적인 ‘킬러 규제’로 꼽히지만 올해 3월 최대 주 69시간까지 연장 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개편안이 무산된 후 추가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는 특정 시기에 일감이 몰리거나 기한을 맞춰야 하는 업종의 경우 해당 제도를 지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에서 상가건물 증축·인테리어를 맡고 있는 한 중소건설사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노무대장에 기입하지 않고 52시간 초과 근무를 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추가 공사를 하거나 발주처의 요구사항이 바뀌는 경우 일이 갑자기 생기기도 하는 데다 형틀, 목공, 철근 작업은 10명 넘게 팀으로 움직일 때가 많아 일을 몰아서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 회사 대표는 “공사기한을 못 맞춰 지연배상금을 물어주는 것보다 수당을 챙겨주고 52시간 넘게 일하는 게 맞지 않느냐”며 “주 52시간제라고 거래처에서 사정을 봐주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주 단위로 관리하는 경직된 근로 제도를 월, 분기 단위로 확대하고 근로자·사용자가 상생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주 52시간제 개편이 어려운 이유는 불필요한 초과 근무가 늘어날 거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며 “기업이 근로시간을 정확히 기록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기술적 인프라를 마련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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