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규제에 무너지는 중기 생태계]〈5〉 ‘틈새 규제’에 묶인 외국인 고용
6개월째 기사 못 구한 재활용업체
외국인 채용 고민하다 대표가 작업
지난달 25일 찾은 경기 남양주시의 한 폐지 전문 재활용업체. 직원 20명 규모로 폐지를 수거하고 압축해서 재생용지나 화장지 등을 만든다. 폐지를 수거할 때 약 10m 길이의 ‘기계팔’을 매단 5t짜리 집게차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1종 보통 운전면허만 있으면 별도 자격증 없이도 혼자 운전도 하고 조작도 할 수 있다. 단, 이는 내국인에 한해서다.
이 회사 대표 A 씨(65)는 집게차 운전기사를 찾지 못해 6개월째 한 대당 2억 원에 이르는 집게차를 놀리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재활용업체도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어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집게차가 특수차로 분류돼 집게차의 집게를 조작할 수는 있지만 도로뿐만 아니라 작업장 내에서의 운전도 아예 불가능하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지역 신문에 월급 400만 원을 내걸고 구인 공고를 내봤지만 선뜻 나서는 내국인이 없었다. 결국 그는 외부 영업을 대폭 줄이고 집게차를 직접 몰기로 했다. A 씨는 “보통 집게차 작업은 기사 1명만 하는데 규정대로라면 내국인을 더 뽑아야 해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효과가 사실상 없어진다”며 “폐기물을 다루는 직업 특성상 젊은층은 아예 오질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최근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고용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각종 ‘틈새 규제’가 여전해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업종별, 업무별로 세세하게 고용 여부를 규제하거나, 외국인 고용을 위한 행정 절차에 시간이 오래 걸려 외국인 고용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종별, 업체별로 상황이 다른 만큼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각종 인력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고용, 건강 확인에만 한달반… 현장 투입 급한데 발 동동
[킬러규제에 무너지는 중기 생태계]〈5〉 ‘틈새 규제’에 묶인 외국인 근로자 외국인등록증 받아야 건강검진… 시간 너무 걸려 되레 골치만 썩어 까다로운 장기체류 절차도 걸림돌… “현장 맞춤형 규제 완화 병행해야”
경기도에 있는 김치류 제조업체는 올해 외국인 인력을 새로 뽑지 않았다. 지난해 외국인을 뽑으려다가 ‘외국인등록증’ 때문에 겪은 행정적인 불편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 외국인을 투입하려면 장티푸스 같은 병이 없는지 확인하는 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아야만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등록증 발급까지 한 달 반(약 6주)가량 걸린다는 것. 입국 때 건강에 이상 없어도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없어 골치만 썩었다고 했다. 이 업체 대표 B 씨(69)는 “건강진단을 안 받고 근로자를 현장에 투입하는 건 있을 수 없지만 절차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더라도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등록증 받는 데 6주…‘틈새 규제’가 발목
외국인 고용 규제는 엔데믹 등을 계기로 완화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외국인 고용이 여전히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고용노동부는 내년에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규모를 12만 명으로 늘리고 숙련 근로자는 최장 10년가량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외국인 고용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재활용업체 등 ‘폐기물 수집·운반·처리 및 원료 재생업’도 올해 1월부터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폐기물을 차에서 내리거나 분류하는 업무 정도만 할 수 있다.
정부는 내국인 근로자 보호를 위해 외국인이 운송업에 진입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집게차 같은 특수차는 외국인이 운전할 수 없도록 막아 놓은 상태다. 외국인은 적재나 하역 분류 작업만 할 수 있어서 면허가 있어도 운전은 못 한다. 먼 거리를 운전해서 가는 것은 물론이고 업체 인근을 오가며 폐기물을 실어 나르는 것도 원천적으로 할 수 없다. 경기도에서 재활용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C 씨(72)는 “워낙에 내국인을 뽑기 어렵다 보니 외국인의 집게차 운전이 허용된다면 별도의 교육비를 들여서라도 채용할 의사가 있다”며 “외국인이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옮기는 일이 우려된다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고려해 업종이나 차종, 지역 등에 제한을 두고 규제를 풀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인력난이 지속되면서 외국인을 고용한 뒤에도 인력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적지 않다. 충남의 한 콘크리트 제품 제조업체 대표는 “성실하게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회통합 시스템 교육을 이수해 장기 체류하고 싶어 하는데, 교육 받을 강의 자체가 적고 이수 요건이 까다로워 일하면서 교육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경남의 한 선박용 구성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하는 만큼 근무할 수 있도록 영주권을 주고 가족도 데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본만 해도 가족을 데려올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고용주) 측에 문제가 있거나 근무처 변경이 불가피할 때 5차례까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가 오히려 장기 근무를 통해 숙련 근로자가 되는 것을 막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올해 5월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 외국인 근로자(E-9 비자)에게 계약 해지를 요구받은 기업 중 약 34.7%가 입사 3개월 이내에 계약 해지를 요구받았다고 답변했다. 직무 숙련도를 높여 놨는데 외국인이 중도 퇴사하면서 적응 교육을 시킨 게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충북에 있는 한 합성수지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D 씨는 “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건 알지만 단순히 수도권으로 가서 일하고 싶다거나, 주변에 같은 국적 근로자가 많이 없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며 “입국 후 일정 기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는 식으로 제한을 둘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 특별 쿼터 허용 확대해 인력난 풀어야
올해부터 2025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조선업에 적용되는 전용 고용허가제(E-9 비자)를 다른 업종으로 확대해 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조선업 사업장은 전체 제조업 쿼터 내에서 E-9 인력을 배정받았지만 앞으로는 매년 5000명 규모를 별도로 채용하게 된다. 인력 모집 단계부터 조선업 관련 직업 능력 등을 고려해 선발할 수 있게 돼 효율성이 높아진 셈.
E-9 비자가 비전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숙련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자인 E-7 비자에 대한 규제도 함께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가 근무를 하며 숙련 근로자가 되는 경우 E-7 비자로 전환해 계속 고용하고 싶어도 전환 쿼터가 부족하다는 것. 경기에 있는 한 식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E-9 비자는 100인 이상 사업자이고 기피 업종으로 분류될 때 가산점을 받아 고용허가제 쿼터가 배정되는데, E-7 전환 쿼터는 이런 특례가 없다”며 “전환하려 해도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고 출입국관리사무소나 담당자마다 기준이 다른 경우도 많다”고 호소했다. 영세 사업장이 오히려 신규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사업장 규모가 작으면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뽑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외국인 근로자 고용에 행정 절차가 복잡한 근본적인 이유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 고용노동부 등 외국인 고용 규제가 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어 이 같은 ‘부처 간 칸막이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두 부처가 함께 산재돼 있는 외국인 관련 현안을 묶어 종합대책을 마련해 준다면 좀 더 예측 가능하고 종합적인 외국인 인력 관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정부가 최근 E-9 비자 근로자 수를 늘리는 등 규제 완화에 나서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지만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불필요한 규제를 푸는 맞춤형 규제 완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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