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차이나 엑소더스(대탈출)’에 나서고 있다. 중화권(중국·홍콩)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이른바 중학개미들은 최근 7개월 새 보유액을 30% 가까이 줄였다. 외국인투자가들도 지난달 중국 주식을 16조 원 넘게 팔아치웠다. 중국 정부가 주식 거래 인지세를 절반으로 깎아주는 등 증시 부양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긴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의 중화권 주식 보관액은 지난달 31억2197만 달러(약 4조1163억 원)로 집계됐다. 올해 1월(44억2278만 달러) 대비 29.4% 감소했다. 중화권 주식 보관액이 사상 최대였던 2021년 2월(73억296만 달러)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외국인투자가도 중국 증시에서 발을 빼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국인투자가들이 8월 한 달간 900억 위안(약 16조3251억 원) 규모의 중국 주식을 팔았다고 보도했다. 2014년 11월 ‘후강퉁’(중국-홍콩 증시 간 교차 거래) 실시 이후 월간 기준 최대 순매도액이다.
국내외 투자자는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으로 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 증시 비중을 늘려왔다. 하지만 중국의 내수 소비가 예상보다 부진한 데다 중국 1위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까지 불거지면서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중국의 각종 경제지표 역시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투자자 이탈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7로 5개월 연속 50을 밑돌아 경기 위축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7월 수출은 전년 대비 14.5% 줄었고, 7월 소비자·생산자 물가도 1년 전보다 각각 0.3%, 4.4% 줄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국면에 진입했다.
해외 투자자 이탈이 계속되자 중국 정부는 지난달 28일 주식거래 인지세를 0.1%에서 0.05%로 인하했다. 중국이 주식거래 인지세를 내린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할 뿐 전반적인 침체 기조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화권에서 이탈한 자금이 한국 등 인접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한국 증시는 중국에 비해 개방성이나 투명성이 높기 때문에 단기적인 대안처로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지난달 21일 이후 외국인들의 순매수 금액만 1조567억 원에 달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발 부동산 위기 등으로 인해 주식시장도 큰 폭으로 조정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라며 “중국 정부가 제대로 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하면 한국이나 일본 등 인접국으로의 자금 이탈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