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안모 씨(45)는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해오다가 단골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어서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안 씨는 “기름 넣기가 겁난다. 기름값이 더 싼 주유소를 찾아서 20∼30분을 헤맬 때도 있다”고 했다.
국제 유가가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추석을 앞둔 국내 생활물가도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중국 부동산발 위기 등으로 하반기 경기 반등 기대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물가마저 고공 행진을 하면 서민경제에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 휘발유 L당 2000원 넘는 주유소 속출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의 감산 정책으로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국내 휘발유, 경유 가격도 덩달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6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에서 중구(2126원), 종로구(2053원), 용산구(2221원) 등 3개 구의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2000원이 넘는다. 강남구 역시 평균 1996원으로 2000원에 육박한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두 달째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고 있다. 6일 오후 5시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1750.77원으로 두 달 전보다 182원 가까이 상승했다. 경유 가격은 1642.36원으로 260원 넘게 뛰었다. 지난달 정부는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올 10월 말까지 두 달 연장했다.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되면 휘발유 가격은 지금보다 L당 200원가량씩 더 오르게 된다.
이미 큰 폭으로 오른 택시 요금, 시내·시외버스 요금 등 교통비 상승 압력도 다시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공공서비스 물가 중 택시료 지수는 1년 전보다 19.1%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1월(21.0%) 이후 가장 큰 오름 폭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전국의 택시 요금 인상 효과가 누적된 결과로 풀이된다. 8월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요금 역시 1년 전보다 각각 8.1%, 10.2% 급등했다. 시내버스 요금은 2016년 6월(9.3%), 시외버스 요금은 2020년 2월(11.4%)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 치솟는 유가에 무역흑자 기조도 흔들
지난달 10% 넘게 뛴 과일 가격은 이달에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달 홍로 품종 사과의 평균 도매가격이 10kg에 7만∼7만4000원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1년 전보다 146.5∼160.6% 오른 수준이다. 배 도매 가격도 15kg에 5만1000∼5만5000원으로 지난해보다 55.5∼67.7%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사과를 비롯한 과일 물가는 전년보다 13.1% 올랐다.
정부는 올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85∼90달러 안팎에 머물 것으로 보고 연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내놨다. 국제 유가가 90달러를 넘어서면 정부의 전망치 3.3%를 웃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당초 전망을 벗어나지 않고 있어 기존 전망치를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향후 유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가 고공 행진을 하면서 3개월 연속 이어진 무역흑자가 다시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줄면서 무역수지는 8억7000만 달러 흑자를 보였다. 수입이 줄어든 건 국제 유가 등의 안정세로 원유,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이 47% 감소한 영향이 컸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유가의 가장 큰 변수는 사우디의 감산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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