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로 큰돈을 벌고 싶은가.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투자 방법을 익히기 전 먼저 갖춰야 할 게 있다. 큰돈에 익숙해지기다. 익숙해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큰돈에 마음이 휘둘리고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주식을 샀고 오랫동안 갖고 있으면 10배 이상 올라 몇억 원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해보자.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5000만 원 수익을 보고 흥분해 팔아버리면 수익은 5000만 원에서 끝이다. 1억 원 수익이 계좌에 찍힌 것을 보고 놀라서 주식을 팔면 수익은 거기까지다. 돈은 조금 벌 수 있지만 부자가 되기는 힘들다.
투자 금액 따라 달라지는 의사결정
제대로 투자하려면 돈 액수, 수익금 액수에 따라 마음이 변해서는 안 된다. 오를 주식은 갖고 있고, 오르지 않을 주식은 갖고 있지 않는다는 투자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게 어렵다. 사람 마음은 돈 액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 1억 원을 종잣돈으로 만들어 수표로 뺐다. 이 통장에 1000만 원, 저 통장에 2000만 원, 이 주식에 3000만 원 등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한데 모아 1억 원 수표를 손에 쥐었다. 당시 한 자기계발서를 읽었는데 1억 원짜리 수표를 한번 몸에 지녀보라고 권하는 내용이 있었다. 1억 원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 돈에 대한 관념과 의식이 변화될 것이라는 권유였다.
그 말대로 한번 해보려고 1억 원짜리 수표를 끊어서 지갑 속에 넣었다. 그런데 3시간을 못 버텼다. 평생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도 1억 원 수표를 넣고 다니자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수시로 주머니를 뒤져 지갑이 제대로 있나 확인했다. 누가 지갑은 두고 수표만 빼내 갈 수도 있지 않나. 아니면 지갑을 열어보다가 1억 원 수표만 땅에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나. 시도 때도 없이 지갑을 열어 1억 수표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그래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칼을 디밀며 지갑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도 계속됐다. 강도, 소매치기 걱정에 다른 사람들 옆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버틸 수 없었다. 결국 3시간 만에 1억 원 수표를 다시 은행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1억 원이라는 돈에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면 그 이상의 큰돈은 만질 수 없다는 것을. 돈에 대한 평정심, 큰돈을 다룰 때는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보통 사람들은 돈 액수가 커지면 행동과 의식이 달라진다. 그게 정상이다.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2년 상금 액수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 능력, 판단 능력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연구를 실시했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불이 들어오는 단추가 있다. 먼저 빨간불이 들어오면 빨간 단추를 누르면 된다. 그다음에는 빨간불이 들어오고 연이어 파란불이 들어온다. 그러면 빨간 단추, 파란 단추를 누른다. 맞으면 그다음에는 빨강, 파랑, 초록 등으로 하나씩 들어오는 불이 늘어난다. 그에 따라 순서대로 눌러야 하는 단추 수도 증가한다. 처음에는 쉽지만 점점 순서대로 외우기가 어려워지면서 실수를 하게 된다.
애리얼리 교수는 이 게임 성적이 상금 액수에 따라 달라지는지 여부를 살펴봤다. 한 실험 집단에는 소액을 상금으로 제시하고, 또 다른 집단에는 좀 더 큰 금액을 상금으로 지불했다. 하지만 조금 큰 상금으로는 마음이 크게 영향받지 않을 수 있어서 최고 상금을 평균 6개월 생활비로 책정했다. 원화로 따지면 100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미국에서 6개월 생활비를 지급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연구비가 필요하기에 연구 장소를 인도로 정했다. 인도 현지인에게는 6개월 생활비가 굉장히 큰 금액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상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게임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본인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쉽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기억력, 인지능력에 따라 점수가 정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상금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평소보다 더 집중해 다른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상금 클수록 인지능력 떨어져
실험 결과 상금이 적은 경우와 보통 액수의 경우 참가자의 점수가 엇비슷했다. 평균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상금이 적을 때와 보통 액수일 때 사람들의 인지능력, 판단 능력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상금이 클 때는 결과가 달랐다. 상금이 크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성적이 나빴다. 상금이 큰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평균 인지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현저히 낮았을 리는 없다. 상금이 커지자 마음이 흔들려 제대로 게임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큰 액수는 사람 마음을 흔든다. 인지능력, 판단 능력을 더 좋은 쪽이 아닌, 더 안 좋은 쪽으로 변화시킨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죄수의 딜레마 실험을 모델로 해 만든 영국 TV 프로그램 ‘골든 볼스(Golden Balls)’가 있었다. 결승전에서 두 사람이 만나면 이 둘은 나누기나 훔치기를 선택한다. 만약 두 사람이 모두 나누기를 선택하면 두 사람은 상금을 똑같이 나눠 갖는다. 둘 다 훔치기를 선택하면 둘 다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한다. 한 사람은 나누기, 한 사람은 훔치기를 선택하면 훔치기를 선택한 사람이 상금을 다 가져가고 나누기를 선택한 사람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가장 이상적인 선택은 둘 다 나누기를 선택해 상금을 나눠 갖는 것이고, 최악의 선택은 둘 다 훔치기를 선택해 상금이 0원이 되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사람들의 선택은 상금 규모에 따라 달라졌다. 상금이 100달러 정도일 때 참가자는 70% 이상이 나누기를 선택했다. 둘이 사이좋게 상금을 나눠 갖는 비율이 높았다. 상금이 1500달러 정도면 나누기를 선택하는 비율이 60%가량 됐다. 훔치기를 선택한 사람이 10%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상금이 5000달러가 넘자 나누기를 선택하는 비율이 50% 정도로 떨어졌다. 상금이 1만5000달러를 넘어서면 나누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50%가 안 됐다. 훔치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반을 넘어섰다.
액수가 적을 때는 사람들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하는 비율이 높다. 하지만 액수가 커지면 사람들의 행동은 변한다. 자신만을 위한 결정, 다른 사람을 배반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증가한다. 돈 액수는 분명 사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액수가 큰 돈은 사람들에게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 긴장되고 불안해진다. 그리고 더 이기적이 돼 다른 사람과 협력 관계를 망친다. 제대로 된 의사판단을 하지 못하고, 올바른 투자 선택을 유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큰돈이 자기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상상으로라도 큰돈에 익숙해져라
그럼 어떻게 해야 큰돈에 익숙해질까. 실제로 그런 돈이 없는 상황에서 큰돈에 완전히 익숙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대비는 할 수 있다. 큰돈을 상상하는 것이다. 1억 원, 10억 원, 100억 원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까를 평소에 생각해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큰돈이 없는데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주식이나 코인을 해 어느 날 1억 원이 생기는 것, 복권에 당첨돼 10억 원 넘는 돈이 생기는 것, 갑자기 보상금으로 큰돈이 생기는 것 등은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럴 때 상상으로나마 미리 준비해놓은 사람은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무방비 상태에서 한순간에 큰돈이 생긴 사람은 분명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큰돈에 의식적으로라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큰돈이 생긴 시점에 제대로 된 의사 판단을 할 수 있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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